맷돌로 갈아 만든 콩비지
포스코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삼성동, 역삼동 일대에 근무하는 많은 직장들이 즐겨 찾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맛집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동네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청난 임대료 때문에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버텨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피양콩할마니 식당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 구루망에 선정된 곳이다. 입구 홍보물에는 2020년까지 4년 연속 선정된 기록을 자랑스럽게 걸어 두었는데 막상 입구로 들어서면 2021년에도 선정되어 무려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나도 본 적이 있는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도 소개됐다고 하니 반가움이 더했다.
최불암 아저씨의 '한국인의 먹거리'에 이은 중장년 이상의 공감을 이끌어낸 방송이 아닌가 싶다.
워낙 줄 서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줄 서는 식당엔 피하는 편인데 이곳 역시 선배님의 추억 속 맛집이라 사람이 없는 날짜와 시간을 기다렸다. 그래서 바로 오늘 피양콩할마니 식당을 찾아갔다. 토요일이라 직장인들이 없어 아주 한적하고 좋았다. 예상을 적중한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국이지만 요즘에도 길게 줄을 서는 식당이니 평일에 갈 계획이라면 시간대를 잘 조절해야 할 것 같다. 메뉴판은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듯 보여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가격은 계속 수정되어 현재 8천 원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6천 원, 7천 원 정도였던 걸 보면 물가 올라가는 속도가 장난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 놓은 반찬들 위엔 작은 집게들이 하나씩 얹어져 있다. 자꾸 눈에 거슬려서 다 치워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세심한 배려일 것이니......
양념꽃게장도 맛있지만 두부 부침에도 정성이 들어있다. 김치는 딱 우리 집 김치와 비슷한 것이 역시 북한 음식인 것이다.
아침에 뭘 잘못 먹었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상 위에 차려진 비지찌개 역시 내 속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위에 탈이 있어 몸에 열이 나지 않아 걱정스러웠는데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까끌까끌한 식감이 맛깔스러워 음식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맷돌로 갈아서 만든다더니 믹서기나 그 외의 다른 기계로 갈아 만든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월을 수십 년 되돌려 옛 맛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소함이란 표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윽한 구수함이 있다. 토핑 된 김치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일반 콩비지를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건 피양접시만두이다. 우리 집 만두와 비슷한 비주얼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 속은 북한 음식이 확실하다. 서초동의 북한 음식점 두 곳에서 파는 만두와는 또 다른 맛인데 요즘 만두로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만두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만두 전문점의 만두가 맛이 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들 각기의 개성이 있지만 여긴 좀 더 고전스럽다는 이야기다. 특히 어릴 때부터 북한 음식을 먹으며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겐 와 닿는 느낌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다.
<피양콩할마니> 간판을 잘 봐야 한다. 할머니 아니고 할마니다. 피양할머니라는 간판으로 현혹하는 소위 복제판 식당도 있다. 물론 간판이 비슷하다 하여 맛도 비슷할 순 없으니 먹어보면 바로 알겠지만, 창의적인 발상 없이 누군가의 성취를 따라 하려면 아마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6년이란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맷돌로 콩을 갈아 음식을 만드는 그 정성은 기껏 미쉐린 가이드 같은 인증서 같은 걸로 갈음할 수는 없는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