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제주스러운 명물 복어요리 그리고
꽤 늦은 시간에 찾은 만부정. 지난 초여름 무렵이었는데 해가 지고 도착했으니 아마 7시는 넘었을 것 같다. 간판에 since 1982라고 당당히 박혀 있다. 건물 인테리어를 돌로 마감해서 제주스러움이 느껴지는 게 입구부터 만족도가 있었던 기억이다.
웰컴 푸드라고나 할까? 쫄깃한 복어껍질 무침이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큼하고 톡톡 튀는 맛이 식전부터 내 속의 모든 장기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곧 기가 막힌 음식이 들어갈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시를 준 것이다.
고사리를 받아보는 순간 역시 제주답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제주도 하면 고사리 아니겠는가? 나 역시 제주도에 집이 있어 수시로 드나들지만 제주도의 그 흔한 고사리가 상 위에 올려지는 식당은 의외로 많지 않다. 제주도 여행 가서 고사리밭 한번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만 고사리 꺾는 게 얼마나 힘들고도 재미있는 일인지 모를 것이다. 게다가 제주 고사리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중산간 지역에서 꺾은 고사리는 길고 두껍고 통통하지만 질기지 않다. 그건 직접 채취해 보면 절감할 수 있다.
별 양념 없이 무친 고사리 무침은 고사리의 맛 자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하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고사리를 꺾어 말린 후 고사리밥을 다 털어내야 하는데 고사리밥을 털어내면 무게가 확 줄어들기 때문에 채취하는 사람이나 말려 판매하는 사람이나 무게 때문에 그대로 유통하기 때문에 고사리밥이 그대로 달려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복어튀김도 나오고 제주스러운 반찬 몇 가지가 제공되는데 그중 복어튀김이 맛깔스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차려진 복 지리탕에 정신을 놓게 된다.
자연산 송이버섯이 위에 올려지는데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토핑이다. 미나리도 넉넉히 올려 복어 국물에 깊이를 더하게 했다. 송이 향이 솔솔 올라오는 복어탕을 맛본 적은 처음이라 열심히 음미하려 했는데 시원한 복어탕 때문에 음미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였다. 말 그대로 말없이 열심히 퍼묵퍼묵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복어와 야채가 가진 자체의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에서 낚시할 때마다 줄기차게 올라오는 복어는 먹을 수 없어 바다에 놓아주는데, 복어를 요리할 수만 있다면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겠다는 깜찍한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튼 복어는 어디서 먹어도 맛이 없었던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긴 한데 만부족 복집에서 맛보는 복어 요리는 제주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복어 요리여서 제주에서 그렇게 사랑받으며 오랜 세월 지켜온 게 아닌가 싶다.
복어와 갖은 야채를 거의 퍼먹었을 무렵,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아주머니가 돌아와 남은 것들을 걷어낸 후 밀가루가 담긴 그릇 하나를 들고 왔다. 수제비인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처 사진을 촬영할 생각을 하지 못 했었는데 결과물만 봐도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수의 손놀림이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쇼가 됐다.
복어 지리탕이 메인이었지만 이게 너무 강렬해서 원 주제를 잊고 말았다. 복어 요리들을 열심히 먹었기 때문에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뱃속으로 다 들어간 것이 신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