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Jan 18. 2021

30년 맛집, 17탄-철마다 다른 논현동 진둔동횟집

갈 때마다 다른 메뉴 때문에 갈 때마다 새롭다

논현동에 36년 된 횟집이 있다. 웃기는 건 그렇게 다니면서도 30년 이상 된 곳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건물은 신축인 데다 어디에도 'since' 같은 단어를 찾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사람과 언제 어느 때 가도 항상 기분 좋은 곳, 진둔동횟집을 오늘 또 다녀왔다. 그것도 <빗맞아도 30년> 시리즈를 쓰게 만든 장본인과 함께 말이다. 웃음이 나왔다. 선배님도 모르는 오랜 맛집을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게 했으니까.



이건 오늘 가서 촬영한 사진이다. 다른 사진을 촬영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없었던 메뉴이고, 이 외에도 불과 십여 일 전에 방문했을 때도 주지 않았던 제철 회가 차려져 나왔던 것이다. 이거 뭐 차별대우 하나? ㅋㅋ 선배님의 출연에 이런 메뉴들이 등장하다니 말이다. 설마 하니 단골인가 싶었지만 역시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어찌 된 일인 걸까? 아무튼 오늘은 지금 딱 맛이 들기 시작한 해삼과 문어가 만족도를 올려 줬다.



논현동엔 맛집이 정말 많다. 이건 정말 딱 십여 일 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예전에 촬영한 사진들은 데스크톱 어딘가 처박혀 있을 거다. 이번엔 정말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혹시나 해서 맘먹고 촬영한 건데 술을 마시다 취해서 몇 년 되었는지 물어보긴 했는지, 답변을 듣긴 했는지조차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사진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선배님의 제안 때문에 다시 찾았다가 몇 년 되었느냐고 물어보고서야 확신이 서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다. 36년이다. ㅋ 이런 회는 짧은 역사로 나올 수 없는 거다.



이게 간접 광고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건 메뉴판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진둔동횟집엔 메뉴판이 없다. 몇 인분인가, 이것만 있다고 보면 된다. 제철 회만 나오는 곳이니 고민할 것도 없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 절대 후회란 있을 수 없다. 후회를 한다면 대한민국 어디 가도 후회할 테니까.



난 진정 몰랐다. 이 식당이 유명해진 이유가 제철에 맞게 나오는 회에만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여기 초장이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일반 횟집 초장에 길들여진 탓일 게다. 난 회보다 진둔동횟집 직원들, 아주머니들의 후한 인심과 항상 웃어주는 미소 그리고 강렬한 서비스 정신이 최고로 맘에 든다. 나도 모르게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 주게 만드는 능력인 거다.



이 한 접시 하나만으로도 사실 설명이 필요 없을 거다. 슬라이스로 썰어 예쁘게 차려진 횟집과는 다른 푸짐함에 만족하지 못할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요즘 말하는 가심비를 꽉 채울 수 있다는 건 젓가락질을 시작하면 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혹시 모르겠다. 회가 부족하다 하면 더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진둔동횟집의 여유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오늘도 식전에 갔는데 엄청 남기고 왔으니까 말이다.)



맨 위에 올려진 사진과 마찬가지다. 제철에 잡히는 회만 내어놓는 진둔동횟집엔 언제 가도 만족이다. 난 여름 빼곤 모든 계절에 다 가본 것 같다. 갈 때마다 다른 회를 맛볼 수 있는 곳. 회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곳. 그저 주는 대로 먹어도 절대 후회 없는 집이 바로 이곳이다. 36년을 지켜온 진둔동횟집은 오래된 구옥을 부수고 신축 건물에서 좀 더 정갈한 모습으로 고객을 대하고 있으니 옛사람은 설마 하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집이 바로 그 집이라는 사실은 젓가락질 한 번이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애기 조기구이도 나오고, 부침도 나온다. 하지만 회가 너무 강렬해 다른 건 별로 관심도 안 가더라는......

아무튼 인생 맛집인 건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내겐 다행이다 싶은 건 예약 없이 가도 줄 안 서고, 자리가 넉넉하다는 사실. 하지만 다시 꽉꽉 찰 시절이 오리라. 맛집은 영원히 맛집이다. 맛이 변하는 거라면 진리가 깨지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회의 맛이 변한다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둔동횟집에서 먹는 회라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2년 전 식도락에 있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관련 업계 종사자인 사촌 형에게 소개받은 모 횟집도 결코 진둔동횟집에 비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슬쩍 이실직고해 본다.



조만간 소개할 일이 있겠지만 부산의 유명한 미역국 전문점에서 맛본 미역국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약 이십오 년 전 강릉에서 처음 맛본 우럭 미역국을 떠올리게 했던 기억이 있다. 깊고 고소한 담백함. 더는 필요 없는 수준의 미역국이다.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나는 부드러운 미역을 입에 넣는 순간 바다 일미가 따로 없다.



요즘 봄동 철이라 그런지 봄동을 주더라. 집에서도 안 주는 건데... ㅎㅎ 아무튼 요즘 제철 맞은 건 회만은 아니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30년 맛집, 16탄-제주도심 만부정복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