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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an 20. 2021

30년 맛집, 18탄-강원 고성 김영애할머니손두부

단순함의 극치가 맛의 승부수

속초, 고성 지역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내라면 이 정도 사진이면 될까? 속초는 설악산과 동해바다의 도시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고성군은 아직도 그저 강원도의 북한과 접경한 시골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고성지역 중 속초와 접한 곳에 감히 완벽이라는 표현을 해도 아깝지 않을 식당이 있다. 김영애할머니손두부는 선배님과 강원도 출장 때 함께 간 곳인데 역시 내 인생 맛집 목록에 과감히 추가됐다.



언제 봐도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드는 사진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진은 고성김영애할머니손두부 식당 길 건너에서 촬영한 거다. 눈 덮인 울산바위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속초의 비경. 고성 구석에 있는 김영애할머니손두부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이 비경은 원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했다. 이 길은 신작로가 생기면서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래서일까 한적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강원스러움이 가득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제주에 제주스러움이 있다면 여기 강원도 고성엔 고성스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1965년부터 영업을 해온 집이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2021년 기준 56년 된 식당인 거다. 반백 년이 넘은 식당이 바로 이 곳에 있다는 거다.

난 뼛속부터 산쟁이라 일 년이면 설악산에서 50여 일은 살았다. 여름에 보름, 겨울에 보름, 다른 계절에도 며칠 씩 말이다. 그러다 보니 속초와 고성 일대의 도로는 거의 손바닥처럼 꿰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엔 이 식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지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기껏 설악산에 왔어도 뭔가 먹겠다면 속초 바다를 찾긴 했어도 내륙에서 맛집을 찾아다닐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물론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내설악 쪽에도 엄청나게 많은 황태 덕장들과 황태 전문점과 송어횟집, 미시령 고개를 넘어서면서 흔히 보이는 두부집 몇 곳 정도는 다녔었다. 특히 두부집 같은 경우엔 원래 원조 아닌 곳이 없나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식당 간판에 공통적으로 달려 있는 '원조' 표지판 때문에 기대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원조라고 써놓은 집들 중 만족도를 준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



안타깝지만 사진은 이것밖에 없다. 왜냐고?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갔다가 한 술 뜨곤 사진 촬영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못하고 퍼묵 퍼묵 했던 거다. 그나마 이 두 컷이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인데 기껏 이렇게 대충 막 찍은 사진으로 현장감이 전해지려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텍스트로 전달하는 수밖에.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오이김치 - 아삭 거리는 식감에 매콤함으로 버무려진 오이는 오이덩굴에서 바로 따서 고추장에 벅벅 찍어 먹는 느낌이다. 그만큼 싱싱하단 이야기이고, 한번 먹기 시작하면 리필을 외치게 된다.

2. 황태 무침 - 강원도니까, 이건 어딜 가도 기본은 한다. 난 이미 오이김치 홀릭에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3. 나물 - 강원스럽다. 전라도식 무침과는 전혀 다른 강원도판 무침은 진짜 끼깔난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4. 손두부 - 간이 안 된 손두부를 그냥 먹어보면 안다. 고소함과 구수함이 그대로 전해온다. 설명 불가하니 직접 가보시는 걸로.

5. 된장찌개 - 이것 역시 강원도식 된장이라 다른 지역과는 다름이 느껴진다. 강원도를 탐닉하기에 충분한 깊음이 있다.



정말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흡입했다. 해장용으로도 좋고 어떻게든 좋다. 어쨌거나 난 설악산에 갈 때마다 지나치지 않게 되었으니...

사실 지난번 다시 갔을 때 촬영한 사진들이 있었는데 스마트폰 용량 문제로 홀라당 날려먹은 게 이렇게 한이 맺힐 줄은 몰랐다. 나의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의 20여 편이 아예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으니.

그나저나 안성의 100년 된 식당 사진은 어디다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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