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배운 것, 교육받은 것, 들은 것 그리고 경험

인문을 다시 생각하다

by 루파고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거다. 아는 건 아는 거지만 얼마나 아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는데 자신의 앎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소양이 있다. 바로 겸손이다. 자만하는 사람에겐 앎의 척도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아는 만큼의 수준에서 일 보 전진도 힘들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겸손한 사람에겐 발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동물은 유아기부터 배움이 시작된다. 동물적 본능은 물론이고 환경과 경험에서 습관이 생기고 관념이 성립된다. 말길을 알아들을 때가 되면 본능적 습득을 뛰어넘어 타인에게 관습이라는 걸 강요받기 시작한다. 이미 인지된 습관은 버릇이라고 폄하되며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 되는 훈련에 가담한다. 자의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비록 강요된 거라 할지라도 자의적 습득 과정을 거치면 버릇이 선을 그어버렸던 습관이 조금은 변한다. 그런 식으로 변화된 인간은 여러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선을 느끼고 방황을 거듭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각기 다른 습관에 익숙해진 나 외의 다른 구성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수시로 가중된다. 배움엔 여러 종류의 방법이 있다. 엄마 뱃속을 떠난 직후부터 경험에서 배운 것들은 하나둘 무너져 간다. 알던 건 모르는 것으로, 모르는 건 새로운 지식으로. 경험으로 깨달은 건 배움으로 솎아내고, 교육받은 것조차도 책을 통해 버무려 가는데... 간혹 들은 것들로 인한 혼선도, 배운 것과 책 속 내용의 착시도, 직접 경험과 간접경험의 불합치도 정체성 혼란에 한몫한다.

인간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고집이 세진다. 지식의 탄탄함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시점이다. 새로운 혼란의 시작이다. 모르는 게 모르는 것이라는 걸 얼마나 빨리 깨우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지, 자존심, 욕심 등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 그것을 파악하는 순간 도를 깨우칠지도 모를 일이다.

아는 게 제일 좋다. 아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 '알면 보이나니!' 같은 말도 있는 걸 보면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인간은 항시 알고자 하지만 그 앎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알면 보인다는 말도 조금 따지고 보면 아는 만큼만 보이는 거다. 앎의 척도란 있을 수 없지만 모든 게 상대적인 거라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척도는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그 상황에 처한 척도에 맞춰 잘 살면 그만인 거다.

아는 만큼만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반면, 아는 만큼만 살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새삼스럽게 인문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인문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인류의 질서'라고 한다. 인륜이라고 하면 될까? 인간은 나름의 척도를 두고 나의 앎과 상대의 앎 사이에서 부대끼고, 거스르고, 까칠 거리며 사는 거다.


인문의 정석! 우리는 정석을 알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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