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가면 맛도 볼 수 없는 삼각지 맛집
오늘은 삼각지에 볼 일이 있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기도 해서 이 식당에 찾아 들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늦게 들어갔으면 밥도 못 얻어먹고 나올 뻔했는데 그건 다 이유가 있었다. 타이틀에 보쌈김치 하나 달랑 올려놓았는데 별 생각 없이 돌돌 말아 놓은 보쌈김치를 풀어 헤치면서 숨은 정성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봤지만 김치는 그냥 김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삼각지는 근 이십 년 가까이 개발의 풍파를 겪고 있다.
무심코 찾은 곳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선배님의 맛집 지도 안에 들어있던 식당이었다. 누가 삼각지 아니랄까봐 간판도 삼각지왕족발이다. 그런데 점심부터 뭔 족발을 드시겠다고 이런 델 가자 하시나 싶었는데 엉뚱하게도 비지찌개를 주문하라신다. 헉!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니 비지찌개 전문이 아니었다. 보쌈정식을 주문하면 비지찌개가 기본 옵션으로 따라오는 것인데 비지찌개만 기억하고 계셨던 거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상이 차려지면서 제일 먼저 차려진 비지찌개는 대충 봐도 맛깔스럽다. 사실 비지찌개는 전국공통으로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니까. 별 거 아닌지 몰라도 중앙에 토핑된 파가 나름 인상적이었다.
반찬은 심할 정도로 단촐하다 싶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묵이야 그렇다 치고, 꺳잎 김치는 단연 식감을 살리는 데 최고의 아이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생채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맛을 보여줬다. 솔직히 다른 건 그냥 그냥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내게는 동치미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난 잠시 후 나올 주메뉴에 대한 관심은 이미 꺼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황당하지만 우리가 자리를 잡은 후 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재료가 떨어졌어요. 죄송합니다."
헉! 간발의 차이로 먹을 수 있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주인 아저씨의 한마디가 기쁨을 더하게 했다.
"밥이 뜸을 들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해서 나온 공깃밥은 보는 순간 감동의 도가니였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바로 지은 쌀밥은 군침을 돌게 했으니 말이다. 이미 보쌈 같은 건 관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밥 자체가 너무 맛있었으니~~
이미 공깃밥을 절반 정도 먹어치우고 있는데 드디어 이게 나타나고 말았다. 이것 좀 심한데 ^^ 아저씨는 식사 부족하면 말만 하라며~ 어쨌든 오늘 다들 무리했다 싶을 정도로 먹었던 것 같다. 요즘 과식하는 나를 나 스스로 알고 난 후 어지간하면 무리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터라 난 한 그릇만 먹고 나왔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아무튼 무리해서 고통스러운 것보다 그걸 참고 다음에 또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보쌈김치를 풀어헤치다 발견한 이 속 내용물의 정체. 무청 김치인지 갓김치인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밤이 함께 말려 보쌈김치의 격을 높이고 있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품격이 느껴지게 하는 녀석이었다. 오히려 수육은 보쌈김치에 곁들인 수준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육도 정말 맛난 녀석이었지만 말이다. 디테일이 필요하다 싶어 이렇게 한 장 촬영하고 말았다.
메뉴판. 보쌈정식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만 판매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간 게 12시 안 된 시간인데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는 걸 보면 경챙이 치열한 수준인 거다.
이 맛난 보쌈정식이 겨우 8,000원이라니 놀랍지 아니한가? 정말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때려 잡는 메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