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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07. 2021

30년 맛집, 32탄-정릉 청수장 양념갈비

since 1982 성북구 정릉의 옛 맛

부산에서 지인이 올라왔다. 마침 정릉에 일이 있어 갔는데 알고 보니 이미 몇 번이나 다녀온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요즘 정릉은 의도치 않게 인연이 닿고 있는 묘한 동네다. 정릉은 서울에서도 정말 오래된 지역 중 하나도 재개발이 시급한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6.25 전쟁 전에 지었을 오랜 한옥도 많이 볼 수 있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곧 부서질 듯한 구옥도 흔히 보인다.

몇 달 전 정릉의 골목을 잠시 후비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약 이삼십 년 전에 성장을 멈춘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작은 창에 방범용으로 막은 쇠창살만 해도 기억 구석에 구겨져 있던 추억을 살짝 들어 올리게 했다. 기우뚱한 시멘트 블록 벽이 위태롭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도 겨운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가느다란 지팡이에 간신히 의지한 채 느릿하게 걷는 모습도 보였다. 머지않아 가로정비사업 등의 이유로 사라질 모습들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도시의 개발과 정비의 이면엔 추억의 매몰이라는 또 다른 주제가 달려 있다.



1982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청수장, 꼭 목욕탕 이름 같기도 하다. 간판으로 보아 면옥과 돼지갈비가 유명한 식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식당을 찾아가게 된 건 매우 우연적이었다는 것이다. 정릉에 사는 지인에게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려다 마침 눈에 띄는 간판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인데 운이 좋아 적중하게 된 경우다. 웃긴 건 부산의 지인의 직감에 의해 '저 집이다' 싶었던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건 이 곳이 나의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에 들어가도 될 만한 식당이라는 것이었다. 오래된 신문기사 등을 붙여둔 걸 보니 벌써부터 맛을 기대하게 했다. 역시 정릉이라는 동네는 오래된 만큼 오래된 식당도 많을 거라는 새로운 기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지체 없이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니 면 종류를 제외하고 술안주가 될 만한 건 달랑 돼지갈비뿐이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돼지갈비 전문점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아닌가? 우연찮게 진짜 맛집을 찾을 것 같은 대박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독특한 양념이 수북한 돼지 양념갈비는 굽기도 전에 맛을 가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차림은 별 거 없지만 죄다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오로지 돼지갈비에 꽂혀 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같이 대파 대란의 시절에 파절임을 아낌없이 내어 준 것만 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양념장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모르긴 해도 양념갈비의 양념 베이스가 바로 그것 아닌가 싶었고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독특한 맛이 아주 기똥차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숯불이 아닌 게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그러한들 어떠하랴. 아무튼 스테인리스 석쇠에 양념갈비를 올려 신나게 굽기 시작했다. 고기 굽는 게 귀찮아진 요즘 다시 집게질을 하게 만든 묘한 녀석이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돼지갈비를 보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절대 배가 고프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돼지 육즙이 배어 나오면 양념과 섞여 불에 타며 나오는 훈증기는 돼지갈비의 맛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기대는 점점 증폭되고 있었다.



드디어 돼지갈비를 해체하기 시작하자 모두들 젓가락질에 분주해졌다. 몇 분간 대화를 잊었을 만큼?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양념이 된 돼지갈비를 통 못 먹긴 했지만 오랜만에 맛본 청수장의 돼지갈비는 만족도를 극대화시켰다.



바로 이게 하이라이트다! 청수장만의 독특한 양념장에 푹 찍어 별 양념 없이 무친 파절이를 함께 곁들이는 순간 이게 바로 양념갈비구나 싶게 만든다.



양념갈비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비켜 갈 수 없는 면옥. 냉면을 주문하고 말았다. 안 먹으려 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이 녀석. 돼지갈비와 면옥 전문점이라는 걸 실감하게 만든 건 비빔냉면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말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대식가는 아닌데 아무튼 묘한 일이었다.



돼지갈비가 아니라도 양념을 절대 아까지 않는 청수장의 비빔냉면을 꼭 다시 먹으러 가리라는 다짐과 함께 이 날의 술자리를 마감했다... 는 아니고 2차를 가고 말았다는.



식당을 나오는 길에 청수장의 옛 사진들이 걸린 벽면에서 달랑 한 컷 촬영해 남겨 봤다. 아무튼 복권에 맞은 기분이랄까? 다음에 또 정릉에 가게 된다면 또 이런 맛집을 찾아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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