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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29. 2019

소설로 배우는 제주도 부동산

소설 <여기는 제주> 도입부 소개, 현재 오디오북 준비 중

대략 아래와 같은 구성의 소설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관심이 가는 분야라도 공부를 하라면 흥미가 뚝 떨어지고 말죠. 부족한 실력이지만 나름 12편의 장편소설을 쓴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이런 책을 내고 말았습니다. 제주도 부동산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4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후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스팟으로 그때그때 적절한 부동산 이슈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인터넷 등으로 찾아서 공부하기 어렵고 육지와는 상이한 제주도 부동산에 관한 정보를 이 책 안에서 잘 버무려 보았습니다. 지금은 마음뿐이지만 어쨌거나 <여기는 제주> 2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급회의


만 평은 되어 보이는 누런 평야. 빽빽하게 자리 잡은 보리들은 인사성이 좋다. 고개를 푹 숙인 것이 누군가에게 혼쭐이라도 난 것 같다. 사형선고를 앞둔 보리밭 둔덕 위에는 지은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주택이 한 채 서 있다. 신축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고급스럽지는 않다. 이층 주택인데 일층은 각종 농기구와 비료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다. 창고 앞에는 바퀴가 커다란 파란색 트랙터 한 대가 바스켓을 번쩍 들고 있다.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다.

고씨 농부의 가족회의다. 명절이나 가족들의 생일을 제외하고 비공식적인 모임으로는 오랜만에 맞은 것이다. 무려 열댓 명이나 되는 가족들 중에는 고씨 농부의 사촌동생 내외도 껴 있다.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집안 행사에 그들이 참석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들에게는 고씨 농부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가 그다지 편해 보이지는 않다. 고씨 농부의 표정 역시 밝지 않다. 붉으락푸르락. 심각한 상황이 분명하다.


“형님. 어차피 땅을 팔아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도장 좀 찍어 주세요.”


고씨 농부의 사촌인 고도리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고씨 농부의 입은 열릴 기색이 없어 보인다. 다른 가족들 역시 말이 없다. 고씨 농부와 그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고도리와 같은 표정이다.


“절대 안 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어른들이 일제 때, 4.3 때, 전쟁 때도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땅이다.”


한참만에 고씨 농부의 입이 열렸다. 고도리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형님. 그 땅이 어떻게 형님만의 땅입니까? 분명히 유서에도 쓰여 있고 말입니다. 제가 절반 가져가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고씨 농부의 눈이 작아졌다. 레이저라도 쏠 듯한 눈빛으로 고도리를 쏘아보는 것이다. 한참 동안 부동자세를 유지하던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작은아버지 하고 작은어머니 산소는 어찌할 건데?”


“허락하시는 겁니까? 형님!”


고도리는 헐레벌떡, 신명 나는 듯한 목소리로 달려들었다.


“아니! 절반만 허락하는 거야. 그리고 네 형 산소도 있고 말이다. 산소는 건드리지 않고 그 땅을 어떤 식으로 절반을 나눌 건지 답을 내봐!”


“그래도 형님. 제 가족이고 제 가족사인데 왜 그걸 형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고도리의 표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해답 없는 문제를 받은 학생의 표정이나 같았다.


“나는 관심 없다. 내 조건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어. 네가 그걸 해결하면 즉시 인정 하마.”


“안 됩니다. 형님. 내년에는 영숙이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형님이야 재산도 많지만 저는 가진 거라곤 그 땅 밖에 없단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팔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게 이 자슥아. 평소에 농사나 열심히 짓지, 왜 노름질을 해서 그 많은 땅을 다 잡혀 가지고 이제 와서 내 탓을 하는 거야?”


고씨 농부의 핀잔에 고도리는 지난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후회한들 무엇할까? 그의 소유였던 토지들은 이미 사채업자가 몽땅 처분해 버린 것을. 그중 한 필지는 벌써 기획부동산들의 손을 타서 조각조각 났다. 개중에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것도 있다. 고도리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고씨 농부에게서 조건부라도 허락을 받은 셈이니 한결 힘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고도리는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사장과는 평소에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얼마 전 사채업자에게 땅을 헐값에 뜯기는 상황이 되자 해결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가 연락이 된 것이다. 고사장에게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다. 고도리 역시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대부분 예전부터 고사장 같은 사람에게 토지거래를 의뢰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촌 형인 고씨 농부와 마찬가지로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토지를 매도하는 것이 소문이 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고사장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비밀스럽게 일을 도와주었다. 고도리는 언젠가 육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서 제주사람의 절반이 똠방이더라, 하는 듣기에 좋지 않은 표현을 들은 적도 있었다. 고도리에게 있어 부동산은 지번과 평수 그리고 그 땅에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정도의 지식이 전부다. 고사장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 해도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았는데 전화기 건너 반가운 음성이 들려온다.


“어이~ 고도리~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반가운 전화를 주셨는가?”


고사장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역시 최근에 부동산으로 돈을 좀 벌었다더니 인생 자체가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고사장. 내가 긴히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고도리는 어제 있었던 가족회의 내용과 토지 매각을 위한 고민을 토로했다. 고사장은 고도리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었다.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는 고사장의 말에 고도리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고사장의 부연설명 덕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제주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토지 문제로 집안싸움도 잦고 심지어는 이혼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고도리는 그제야 금슬 좋던 초등학교 동창 부부가 얼마 전 급하게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고사장.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절반을 자를지가 문제야. 부모님하고 형 묘는 삿갓오름에 모시기로 이야기는 되어있는데 말이야. 오늘 아침에 땅을 좀 보고 왔거든. 진입로에 묘가 하나 있더라고. 여태까지 그 땅에 그런 큰 묘가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지 뭔가? 우리가 모시는 묘가 아니라서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인 게야. 그래서 아들 시켜서 지적도를 출력해서 봤는데 말이지. 묘가 있는 자리가 묘적지더군. 등기도 떼어 봤는데 그 땅 주인은 일본인으로 되어 있었네. 이거 참~”



<제주신화와 오름>

제주의 오름 중 공동묘지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오름이 제법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위성지도를 열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우연하게 제주신화에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오름에 공동묘지가 형성된 데는 제주도의 신화가 한몫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드리면 삿갓오름(입산봉), 널개오름, 모슬봉 정도 보면 좋겠다. 하지만 금장지(禁葬地)라 하여 묘를 쓰지 못하게 하는 오름도 있다.

참고서적 : 저자 김유정, 서귀포문화원 출판 <제주산담> / 저자 김순이, 여름언덕 출판 <제주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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