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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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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15. 2021

추억 소환 7, 엄마는 손이 크다

엄마는 손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뭘 해도 항상 엄청난 양을 만들곤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요즘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어린 시절엔 뭘 해도 이웃과 나눠 먹던 정이 있었다.

누구네 집은 뭘 잘해! 누구네 집은 뭐가 맛이 없어!

이웃들의 음식 솜씨를 서로 꿰뚫고 살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만두와 김치로 나름 소문이 나 있었다.

만두는 김치를 주재료로 한 국만두와 부추를 주재료로 한 물만두 두 가지가 주력이었는데 두 가지 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각기 다른 매력이 만두피 안에 가득했다.

엄마가 만두를 빚는 날이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이웃 아주머니들은 당연한 듯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고, 아버지 친구들도 미리 약속이 된 회식자리 마냥 선물 한가득 들고 찾아왔다.

스마트폰 같은 통신수단도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순식간에 소식이 전해진 걸 보면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미리 예고를 했던 걸까?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버렸지만 십 대 중반에 체력이 철철 넘쳐흐르던 엄마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엄청난 양의 만두를 빚었다.

누가 도와주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만두집에서 사 온 게 아닐까 의심을 했을 만큼 거실을 만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후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 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아버지와 친구들이 술자리까지 이어 나갔다.

어릴 땐 우리 집 만두가 얼마나 맛있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그 만두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된 노력이 필요했는지 몰랐다.

거의 기계처럼 보일 정도로 신랄한 손놀림에 의해 빚어지던 쫄깃한 만두피는 아무리 흉내를 내도 되지 않았다.

십 년 넘게 써왔던 무거운 나무 밀대는 동생이 특수 제작한 스테인리스 밀대로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 손목이 아파 만두피 빚는 게 힘들다 하여 주문 제작된 거다.

그렇게 탄생한 스테인리스 밀대가 활약한 시간도 벌써 십 년이 넘었으니 엄마의 만두는 거의 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긴 세월이 흐르고 보니 엄마 주변에 사람이 들끓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엄마는 손이 커서 어떤 음식을 해도 양이 엄청났다.

계절마다 의례히 만들던 딸기잼이나 포도잼도 언제나 한 솥이었다.

우리 식구가 먹으려면 몇 년을 먹어도 못 먹을 정도였는데 애초에 엄마는 우리 식구만 염두에 두고 요리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이 음식은 어느 집 아무개가 좋아하니 그 집에 나눠줘야겠다는 공식이 미리 세워져 있었던 거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다고 했다.

오는 게 먼저인지 가는 게 먼저인지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뭐라도 오가는 게 생기면 대화가 터지고 마음이 열리는 거다.

그렇게 이웃이 늘고 친구가 많았던 엄마는 어쩌다 보니 혈혈단신 제주도로 내려가셨는데 , 역시 거기서도 평생 살아왔던 방식으로 육지 사람들에게 폐쇄적인 제주도 이웃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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