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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23. 2019

14. 가을맞이 서울 나들이 라이딩

반포-남산 업힐-광화문-인왕산-북악 업힐-청계천-행주-반포 코스

참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던 동호회 행사였다.

요즘 들어 안 가본 코스로 자전거를 타는 게 좋아서 최대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편이다.

이번 코스 안에 포함된 곳들은 이미 다녀봤지만 그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 새로운 코스를 만들어낸 게 용하다.

자전거 코스 개발 역시 기획력이 있어야 한다.

코스를 짠 두 사람에게 다시 감사의 박수를.



청담 그라피티 동굴을 나오니 한강이 확 터져 있었다.

주말이라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라이더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8시 30분

반포 GS1호점 앞에는 동호인들이 엄청나게 모였다.

9시부터 행사 시작이지만 역시 일찍 오는 사람도 있고 늦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모임 땐 내가 지각하고 말았는데 워낙 시간 약속을 중요시하는 내게 있어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기억이다.

자전거 브랜드인 TREK 행사와 장소가 겹쳐 공원이 인산인해였다.



동호회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 팀은 서울 나들이 코스를 시작했다.

잠수교를 건너 남산으로 가는 길.

시작부터 업힐이다.

난 작년 10월 7분 22초 기록을 지금까지 깨지 못하고 있다.

업힐은 언제나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기록을 경신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게 어이없다.



남산 업힐 코스 초입인 약수터.

98년생 막내는 벌써부터 힘든 눈치다.

막내의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보험이라 생각했던 엄마 뻘 누나를 따라 올라가다 퍼져버린 것이다.

나보다 업힐을 잘 타는데 말이다.



나는 기록을 깨 보겠다고 열심히 댄싱까지 하며 올랐지만 역시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정말 열심히 올랐는데 말이다.



남산에 오르면 서울의 전망이 확 터진다.

게다가 남산의 랜드마크인 남산타워와 판다, 금돼지가 힘겹게 올라온 라이더들을 반겨준다.

생전 처음 남산 업힐에 도전한 막내의 멋진 모습.

다음날엔 태풍 타파의 영향권이라는데 아직까지는 태풍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산을 내려와 이태원을 거쳐 반포 방향으로 해서 중랑천 합수부 쪽을 향했다.

주말이고 다음날 태풍 소식 때문인지 한강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 정취가 무르익어가는 시절이라 그런지 선선함을 만끽하려 한강으로 몰려든 것 같았다.

공도를 타고 청계천길로 접어들자 잦은 신호대기로 라이딩의 리듬이 끊어졌지만 천천히 도심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평화시장이 보이고 우리의 중간 보급지인 광장시장이 멀지 않았다.



인파로 붐비는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마약김밥을 사다 한적한 길거리를 점령했다.

혼자 있으면 이런 짓 하기 어려운데 여럿이 있으면 타인의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다.

길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인도를 점령하긴 했는데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은 재밌는 표정으로 우리를 스쳤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광화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막내가 사라졌다.

남산 업힐을 마치고 북악 업힐을 걱정하더니 그 새 이탈한 거다.

라이딩 초기엔 업힐은 공포 그 자체다.

1년 전 나의 경험을 생각하니 막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자전거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멘털 싸움이다.



인왕산 업힐을 마치고 인왕산 호랑이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북악팔각정으로 향했다.

남산보다 긴 업힐 구간이지만 대개 남산보다 재밌다고들 한다.

난 작년에 한번 와본 후 1년도 넘어서야 다시 찾은 곳이다.

이상하게 북악은 내게 있어 먼 곳이다.

작년 처음 왔을 땐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멈춰 서버린 기억이 있다.

좀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의지의 부족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1분 정도 쉬었다 올라갔는데 작년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분개했다.

초반부터 댄싱으로 힘을 너무 뺀 탓이다.

업힐은 코스를 잘 알아서 힘을 분배해서 탈 수 있다.



얼마 전 낙차 하여 쇄골이 부러진 맡형과 굇수라 불리는 분이 먼발치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북악팔각정은 서울의 라이더들에게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북악 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사람도 많고, 오토바이 마니아들도 많이 모여든다.


 

차세대 업힐 여신으로 등극할 친구다.

막내는 그것도 모르고 보험으로 간주했으니.

다운힐은 자전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4km에 달하는 긴 다운힐을 따라 와인딩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랑천을 달려 청계천 쪽을 향했다.

늦게 합류하는 다른 팀원들과 북악에서 잠시 사라진 팀원 두 명은 청계천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영광스럽게도 막내 둘이 사준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다.


청계천 판잣집과 청계천 박물관이 우리 코스 중에 있었다.

근처를 지날 때도 보지 못했던 곳인데 내가 서울을 얼마나 모르고 지냈던가 싶었다.

잠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세대보다 윗 세대분들에게 공감을 자아낼 것 같다.

초등학교(우리 땐 국민학교) 다닐 때 보았던 교구나 불량식품들은 기억에 조금 남아있었다.



청계천을 빠져나와 행주로 방향을 잡았다.

행주는 워낙 자주 다녀서 그런지 사진도 찍지 않았다.

혼자 다니거나 할 때는 운동삼아 열심히 달렸지만 이번엔 단체 라이딩으로 아주 천천히 달렸기 때문에 주변을 즐기기에 좋았다.

중간중간 오픈 구간이 있어 고속주행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행주 기사식당에서 한정식 뷔페를 먹고 다시 돌아오는 길, 일행 중 몇 명을 집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6명은 반포를 향해 일몰 시간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포토제닉인가? ^^

엄청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티 내지 않고 자전거를 즐기는 분.

건강 때문에 시작한 사람이라도 자전거에 빠지고 나면 굳이 건강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건강은 저절로 찾아오니 말이다.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잠깐은 그 숫자에 연연하며 기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마시고 귀가하려는데 마침 멋진 일몰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강변 사람들 모두 셔터를 누르느라 바빠 보였다.

나도 모처럼 오래전 유행하던 포즈를 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기 사진이 별로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집에 가려는데 구리에 사는 선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까지 한잔 하러 오라는 거다.

엄청나게 고민했지만 안 가면 투덜거릴 것이 뻔하여 어쩔 수 없이 더 달리기로 했다.

집에 들렀다 가겠다는 나에게 자전거를 타고 오라는 반 협박 때문이다.

빨리 와서 놀아달라는 노총각 선배의 협박 같은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건 내가 지독한 애주가이기 때문일까?



해가 어둑어둑 지며 노을이 짙어졌다.

잠수교를 건너는 두 일행과 함께 일몰을 즐겼다.

선배 집까지는 25km 정도를 더 달려야 한다.

항속 35~42km/h로 주행하는데 전혀 힘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몸은 이제 워밍업이 끝난 모양이다.



구리시다.

이곳은 요즘 도시계획으로 재개발이 한창이다.

수석공원으로 오라는 선배의 말에 지도만 보고 들어간 길은 자전거를 타기 애매했다.

도로 옆 인도는 공사 중이라 자전거를 끌고 가야만 하는 상황.

인도에도 위험요소들이 많았다.

언제쯤이면 완벽한 도시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을을 느끼는 건 끝나지 않았다.

구리까지 오라던 선배는 나를 주겠다며 새우와 참소라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가을 기운으로 풍족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가는 길.

태풍 타파로 인해 남쪽 지역은 물난리라던데 서울은 한산했다.

태풍 여파로 인한 피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바람도 별로 없고 더군다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주 신나게 달렸다.

좀 더 운동 삼아 달렸다면 KOM도 찍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거다.

물론 내 실력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목 보고 오해하면 안 된다.

술 마시고 달린 건 아니니.

아무튼 이틀 동안 운동 하나는 열심히 한 듯해서 만족도 높은 라이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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