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Feb 14. 2022

47.이수역 남성사계시장 안 골목 깊숙한 곳 이수짜장

요즘 너무 바빠서 자주 못 가니까 자리 없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을 듯하여

절대 공유하지 않으려 했던 맛집을 공유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충 가늠해 보니 내가 그 집에 들락거린 기간만 해도 거의 십 년은 된 것 같다. 너무 오래된 사진들은 빼고 올렸는데 그간 찍은 사진들을 보니 스마트폰 세 대가 스쳐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오래도록 이수짜장에 들락거렸다는 증거다.

하지만 외관 사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 식당을 소개하게 될 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꽁꽁 묶어두고 있었는데 요즘은 업무가 바빠서 삼성동에서 이수역까지 오가기가 쉽지 않아 큰맘 먹고 공유하기로 작정했다. 이수짜장은 코로나와 관계없이 오후 9시까지만 영업한다. 예전부터 쭈욱 그래 왔다. 나 같은 경우 죽치고 뭉개는 편이어서 몰랐는데 이번 방문 때 알게 된 사실이다.



이게 지난해 촬영한 사진 같은데 아무튼 착한 가격 맞다! 지금은 가격이 올랐을까? 메뉴판 보면 최근 가격을 조금 올리긴 한 듯하지만 그래도 착한 가격 맞다. 청담동, 신사동, 역삼동, 삼성동 일대의 유명하다는 중식당을 거의 다 다녀본 바, 고급진 식당은 나름의 만족도가 있고 이수짜장의 경우 서민들의 주머니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아주 착한 식당인 거다. 아주 웃기는 건 내가 지인들을 데리고 이수짜장에 가면 모두들 홀딱 반해버리고 만다. 나중엔 나를 동행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니거나 또 그들의 지인을 데리고 다니곤 한다고 들었다.

이 식당엔 오래전 중국인 아주머니가 홀을 지켰었는데 비자 때문에 중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반가움이란... ㅎㅎ



이수짜장의 애피타이저는 바로 이 얼큰한 짬뽕 국물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중국집이라 하면 짜장면과 짬뽕이 기본 아닌가? 일반 한식당의 맛의 기준이 김치라고 한다면 중국집은 뭐니 뭐니 해도 이거다. 얼큰한 짬뽕 국물! 특히 날이 쌀쌀한 요즘 이거 한 그릇이면 미리 속을 풀어내는 애피타이저로 충분하다. 나 같은 술꾼들에겐 더없이 좋은 술안주 아니던가? 안주를 시켜 놓고 짬뽕 국물 하나로 소주 한 병은 거뜬하니 말이다.




난 갈 때마다 이건 꼭 먹는다. 이게 첫 메뉴인 거다. 고추잡채 자체의 간이 딱 술꾼용이다.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맛이 이건 여느 중국집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운 수준의 절정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오죽하면 무조건적으로 주문하는 기본 요리가 됐을까? 일단 이거 하나로 식사를 대체하며 소주 각 1병 이상이다. 반쯤 먹을 때 다른 메뉴 하니를 주문한다. 둘이 가면 보통 두 가지 메뉴를 먹고 오는데 양이 어마어마해서 배가 터질 정도이다. 소식가들이라면 절대 어렵다. 하지만 손이 자꾸 가는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이수짜장이 다른 중국집과 다른 점이 있다. 야채의 신선도가 깜놀할 정도인데 이유는 다름 아닌 남성사계시장에서 그날그날 직공수하기 때문이다. 보통 식당들은 식자재 유통사에서 갖다 주는 걸 쓰지만 여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그러하니 음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여기서 안 먹어본 메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빠진 사진이 많지만 말이다. 다른 메뉴들 모두 맛있지만 양장피가 거의 3번 메뉴나 마찬가지다. 겨자소스를 독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붓고 깐새우, 건해삼 등이 가득한 양장피를 버무린다. 그런데 이 메뉴는 비벼 먹기 미안할 정도로 오색찬란하고 예뻐서 버무릴 때마다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지곤 한다.



위에서부터 잘 보면 알겠지만 얼마나 자주 갔는지 같은 사진이 없다. 삭힌 오리알도 고소하고 좋다. 이십 대 인천시 화교촌에 갔다가 오리알을 사 가지고 온 적이 있었는데 껍질을 까고 보니 죄다 시커멓게 썩어서 회를 내다 버린 적이 있었다. 모르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무튼 그 후로 이 맛을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수준인 거다.



간판이 이수짜장인 고로 당연히 짜장면은 기똥차게 맛있다. 그냥 옛날 맛이다.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시장 골목에서 먹던 그 맛이라고나 할까? 저 영롱한 짜장의 우아한 빛깔을 보라! 침이 아니 나올 수가 없지 아니한가 말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여기서 먹어볼 수 있는 짜장은 다 먹어본 것 같다.

간짜장, 쟁반짜장, 일반 짜장(곱빼기 ㅎㅎ)

이상하게 짜장면은 보통으로 먹을 수 없는 묘한 마력이 없다. 그렇게 퍼 먹고도 짜장면 들어갈 배는 있더라.



중국집 하면 바로 군만두 아니던가? 역시 비껴갈 수 없다. 난 워낙 단골이라 가끔은 짜장면도 주시곤 하는데 요즘엔 골라보라 하신다. 아무튼 뭘 주셔도 감사하기만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중국집의 진미! 바로 만인의 사랑 탕수육 아니던가? 사천 탕수육도 맛있지만 일반 탕수육도 썩 괜찮은 편이다. 대체로 여기까지 주문이 들어갔을 때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소스와 섞지 않고 찍먹 하다가 포장해서 오거나 아예 사이즈가 작은 걸로 주문한다. 탕수육은 동네 중국집에서 고급 요리 아니었던가 말이다.

정말 쉬운 요리면서 어려운 요리다. 학생 때 후배들에게 술 한잔 사준다 했다가 붙은 녀석들이 30명이 넘는 바람에 직접 탕수육을 만들어 주기로 작정하고 돼지고기 10근을 사다가 탕수육을 산더미만큼 만들어서 해결한 적이 있었다. 학교 앞에 삼겹살 한 근에 1500원 하던 시절이어서 소스까지 다 만들고도 3만 원으로 뒤돌아 서면 배가 고프던 이십 대 초반 30명의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문을 나서 10초만 걸으면 남성사계시장이다. 시장도 9시가 마감이라 빨리 나서지 않으면 거의 문을 닫고 없다. 이게 아주 묘미인데, 시간 잘 맞춰 가면 그 유명한 시장의 떨이를 만날 수 있다. 상품성은 조금 떨어질 지라도 1~2천 원으로도 야채를 한 봉지씩 구입할 수 있다. 상인들은 그렇게 마지막 떨이를 마치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다. 지난여름 수박 한 통을 15,000원에 구입했다. 동네에서 저것보다 작은 녀석을 35,000원 이상 했으니 절반도 안 되는 가격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46.육즙이 제대로 느껴지는 돼지, 송파 인생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