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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우리말로 어떻게 설명할까?

제목은 가져가도 내용은 가져갈 수 없다

by 루파고

"Contents를 우리말로 설명해 봐!"


언젠가 선배님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기획자인 그는 의미심장한 숙제를 안겨준 것이다.

마치 선문답과 다를 바 없었다.

당장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삐쭉거렸다.

그러기를 한 달여.

인터넷에서 우연히 내가 쓴 글을 발견했다.


<사업가와 장사꾼의 차이>


얼마 전 브런치북으로 옮긴 <실패 전문가>에도 올린 글이기도 하다.

내 글이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것이 반갑긴 했는데 출처도 밝히지 않았고 그 역시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퍼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물론 출처 블로그 역시 명시되지 않았다.

왠지 이상하다 싶어 제목으로 검색을 시작했는데 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마케팅과 관련된 수많은 게시물에 내 글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파고들다 보니 모 작가가 자기 글인 양 퍼다 쓰기도 했다.

그것도 원문에 '그러나'라는 접속부사를 붙여 글을 수정까지 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외 다른 사람들이 옮겨다 놓은 글은 내가 쓴 원문으로 게시해 두고 그 작가가 쓴 글이라고 명기한 것이다.


글을 쓴 후 SNS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보낸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까지 퍼져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글이 언제 쓰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니 2011년 겨울이었다.

하필이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정확히 기억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당시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냈던 모 대학 홍 모 교수님과 술자리에서 사업가와 장사꾼이라는 단어를 두고 심각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난 사업가나 장사꾼이나 뭐가 다르냐는 취지였고 홍 교수님은 사업가와 장사꾼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말싸움으로는 어떻게 교수님을 이길 수 있겠나 싶지만 억지를 부리다 못해 둘 다 얼굴이 상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나는 사업가와 장사꾼이 대체 무슨 차이일까 고심하다가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메모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인 게 그 글이었다.

글 중 몇 가지 또렷한 기억이 남아있다.

'파이'라는 대목을 쓸 때 사업가의 '파이'는 규모를 말하면서도 장사꾼의 '파이'는 장난 삼아 음식 '파이'를 연상하며 썼다.

'1억이 10억'이 되는 구조, '무늬만 장사꾼' 같은 표현도 어제 쓴 것처럼 기억한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Title은 가져갈 수 있어도 Contents는 가져갈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누가 만든 건 아닐 거다.

그저 내 생각이었으니까.

혹시라도 어디서 주워듣고 쓰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번외로 '접시물처럼 얕고 태평양처럼 넓은 지식'이라는 표현도 십수 년간 써 왔는데 비슷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아무튼 나 같은 경우가 한둘도 아니고, 글 도둑도 도둑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고, 생각지도 못한 내 글의 위력을 느낀 데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당시 나는 장사와 사업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장사도 하나 하고 있었고 사업도 하나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망가져버렸지만 그걸 두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수업료를 많이 내긴 했지만 덕분에 나이만 먹는다 하여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료를 낸다는 표현들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원 주제로 돌아와 Contents라는 단어를 두고 생각해 본다.

내 글을 자기 글처럼 가져다 쓴 사람은 과연 내가 글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알고는 있을까?

그 글을 쓸 당시, 겨울이어서 춥기도 했지만 주머니도 가벼워서 체감하는 추위는 어마어마했다.

뼈저린 체험을 통해 사업가와 장사꾼의 차이를 비교했다.

그 한 줄 한 줄에 담긴 나의 생각들이 바로 Contents다.


Title이 신체라면 Contents는 정신이다.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살해했지만 그의 정신은 지금껏 계승되어 오니 말이다.

예를 들어, 미키마우스 자체도 하나의 Contents이지만 미키마우스로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Contents다.


Contents는 생각이며 이야기다.


그래서 Contents는 무궁무진하며 우리의 삶 자체다.

그것들을 가공하여 문자, 사진, 영상,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 가시화된 Contents 아닐까 싶다.


이렇게 정리하면 선배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한 것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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