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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28. 2023

맛집의 비장의 조미료는 '초심'과 '진심'

 30년 맛집 시리즈 100개를 쓰면서...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식당을 운영해 왔다는 건 그야말로 엄지를 치켜들게 만드는 일이다.

노포식당들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선배님이 '내가 다니는 식당들은 빗맞아도 30년은 넘는다'라고 했고 난 그 표현을 타이틀로 잡고 맛집투어의 기록을 시작했다.

뭔가를 목표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빗맞아도 30년' 시리즈를 100탄까지 쓰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아마 내가 맛집 투어를 다니기 시작한 것도 30년 정도는 된 것 같다.

76탄을 썼을 때 달린 댓글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었다.

그 짧은 글에서 오래된 맛집은 그곳을 찾은 손님들 개개인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빠와 가본 식당인데 아직도 있네요... 와... 추억 돋는..
- 넌들낸들 님




얼마 전 맛집백과사전이란 별명 아닌 별명을 붙인 설 모씨가 한 말이 기억난다.

랜차이즈 식당은 가맹점 어딜 가도 비슷해하기에 무엇보다 매뉴얼이 중요하지만 개인이 하는 식당은 언제 가도 변치 않는 맛이 중요하다는 거다.

뻔한 얘기지만 프랜차이즈를 시도했다가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그 안에 있다.

맛있는 음식을 대중적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야 하고, 재료와 양념 공급에 장애가 없어야 하고, 가격 변동의 요인이 생겨도 영업의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야 모든 게 본인 책임이지만 프랜차이즈로 갈 경우엔 본사에서 온갖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어찌 됐건, 워낙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는 탓에 나름 전국을 유랑하며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식당을 다닌 것 같다.

그동안 각기 다양한 이유로 폐업한 식당도 있고 코로나 같은 피치 못할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업한 식당도 있다.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식당도 있고 프랜차이즈를 시도하다 간신히 본점만 운영하는 곳도 있고 안타깝지만 프랜차이즈 사기를 맞아 도산한 분도 있다.

심지어는 미처 상표등록을 하지 않은 채 영업을 하다 상호를 도용한 비도덕적인 업자와 소송을 하는 식당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제들끼리 따로 분점을 내서 각기 성공한 식당도 있는 반면에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형제끼리 다툼이 생겨 분쟁까지 가는 사례도 더러 있다.


어떤 이유가 됐건 손님이 식당을 다시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 없다면 절대 다시 찾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시 찾은 손님을 만족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쉽지만 어려운 '초심'과 '진심'이 필요하다.

'진심'이 있다면 '초심'은 당연하게 따라가겠지만 '초심'엔 가격이라는 저항도 한몫한다.

가격이 올라도 만족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가격은 터무니없이 오르고 양은 줄고 직원들의 불친절까지 이어진다면 손님은 다시 찾지 않을 거다.

우린 진짜 맛집은 좀 불친절하고 불편해도 좋고 줄을 서도 좋다는 나름의 자기만족을 한다.

욕쟁이할머니의 욕지거리도 구수하게 느끼며 기름때 끼고 곰팡이 핀 비위생적인 주방도 노포식당이라며 자위하는 게 맛집을 찾은 손님의 생각이다.

그런 게 싫다면 안 가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맛집을 다시 찾는 손님의 입장에선 식당에 대해 너무나도 자애로운 관대함과 나름의 배려인 것이다.

그에 반해 식당이 다시 찾은 손님을 진심으로 맞이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맛집은 종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짜 맛집은 사실 젠트리피케이션도 피해 간다지만 지난 코로나 때문에 좌절한 식당도 많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떤 장소를 지날 때 마침 식사시간이면 머릿속에 있는 근처 맛집을 찾거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으면 그 지역에 사는 지인들의 로컬식당을 수소문해 찾아가곤 한다.

그런데 막상 기억 속의 맛집을 찾았을 때 폐업했거나 음식에 진심이 사라진 식당들을 만나면 머릿속 리스트에서 강제 삭제하고 싶어지곤 한다.


오래됐다고 해서 무조건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전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줄을 서는 유명 맛집이 된 곳도 있고 여전히 소박하게 장사하는 식당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30년 이상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은 있어도 뭐가 있긴 하더라.




여담이지만 속초 설악산 설악동에 정말 최애 하는 벼락바위라는 막국수집이 있었다.

바락바위골 주택가 안에서 주민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이었는데 어릴 때 기어 다니던 두 아이들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을 정도로 매년 몇 번씩 다녔던 곳이다.

그러다 십오 년 전쯤 갑자기 식당은 문을 닫았고 몇 번이나 그 집을 기웃거렸지만 아주머니는 영업을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흘러 그 어린아이들이 자라 큰 딸은 벌써 중학생이 됐고 당시 내 싸이월드에 올려진 벼락바위 사진에 댓글을 달았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식당을 못 하세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나 같이 편하게 드나들던 산쟁이들이 삼촌이나 이모같이 느껴졌을 아이의 추억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그 추운 겨울 동계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 따신 아랫목에 앉아 수육과 막국수에 동동주를 마시던... 이젠 다시 갈 수 없으니 내겐 정말 그립고도 그리운 식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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