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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11. 2019

잠자는 땅, 시비리 13화 - 진실게임 2

동굴 탐사대가 동그란엉덩이 무리를 만난 건 비밀의 통로에서 빠져나온 후 반나절이 지나서였어요. 무리들이 밤이 되어 쉬던 중에 만나게 된 거죠. 그간의 상황을 알 리 없는 탐사대는 동물의 숫자가 줄어들고 힘이 센 동물들이 거의 다 사라진 것이 이상했어요. 덜컥 어떤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했죠. 동그란엉덩이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동굴 탐사대는 너무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늑대들과 힘을 합해 사냥꾼들에게 대항하기로 한 동물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하니까요. 동그란엉덩이를 따르던 동물들은 다음날 해가 뜰 무렵 비밀의 입구로 들어섰어요. 돌아오지않는메아리에는 초식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게 많이 있었어요. 동굴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아서 육식동물에게도 식량이 되어 주었어요. 동물들은 그다지 어려움 없이 무지개마을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고요. 그런데 노란민들레숲 동물들의 모험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멋지고 아름다운 모험이죠. 물론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을 보며 울었어요.

“안녕~ 우리의 고향아~”

그런데 저 멀리 얼어붙은 호수 위에 우리 숲 동물들의 모습이 보였어요. 호수 중간은 표면만 살짝 얼었을 뿐이라 아무리 가벼운 동물이라도 건널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맨 앞에 가던 동물들이 물에 빠지는 것이 보였어요. 얼음 위 동물들은 기겁을 하며 숲 쪽으로 되돌아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숲 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려왔어요. 사냥꾼들이 그곳까지 추적해 왔던가 봐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슬퍼서 눈물을 흘렸어요.







“아무래도 도와줘야겠어!”

동그란엉덩이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엄마를 버리고 까칠한흰수염을 따라간 저 녀석들을 왜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우리를 버리고 떠났잖아요. 사냥꾼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엄마를 겁쟁이라고 무시했잖아요.”

손이는 까칠한흰수염이 동물들을 선동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동물들 사이로 동그란엉덩이가 호수 건너편의 동물들을 돕겠다고 하는 말이 금세 퍼져 나갔다. 동물들은 모두 그건 안될 말이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동그란엉덩이는 평생을 함께 살아온 친구들이 고통 속에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동물들은 웅성거리다 말고 모두 동그란엉덩이에게 집중했다.

“누구에게나 실수해 본 경험들이 있지 않나요? 그렇잖아요. 저기 건너편 동물들은 우리 친구들이에요. 같은 숲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왔던 이웃이며 가족이에요. 버리고 갈까요?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저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줘야죠. 친구들을 구하고 싶지 않으세요? 저들은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 우리가 힘들 땐 모두에게 힘이 되어 주었어요. 보세요. 여기 무지큰발과 빠른발은 다른 숲의 동물들이에요. 특히 빠른발의 경우, 우리 숲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왔을 때 외면했던 동물들이 있었던 것 기억하세요? 지금 우리는 빠른발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잖아요. 만약 빠른발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요? 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저들을 도와주지 말자고 할 겁니까?”

동물들은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만약에 도와주지 않는 걸로 결정이 나더라도 너희들이 돌아가서 모두 데리고 와야 해! 할 수 있겠지?”

동그란엉덩이는 태니와 손이를 불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알겠어요, 저도 이제는 다른 동물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동그란엉덩이의 우려와는 달리 동물들은 도와주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동굴 탐사대로 떠났던 태니, 무지큰발, 빠른발 외에도 화들짝, 손이가 함께 구조대가 되어 떠났다. 구조대가 노란민들레숲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로 보아 사냥꾼이 꽤 많은 것 같았다. 구조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숫가 근처부터는 모두 기어가듯 바짝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접근해 갔다. 예상했던 대로 사냥꾼이 수십 명은 되어 보였다. 사냥꾼 주변에는 태니와 손이가 알고 지냈던 동물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어떤 동물은 이미 죽어 있었고 어떤 동물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또 어떤 동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기 위해서 낑낑거리고 있었지만 끝내 일어나지는 못했다. 사냥꾼이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지옥이란 게 있다면 바로 그곳이었다. 아직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동물들이 많았다. 얼음판 위에 있는 동물들은 미끄러운 얼음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나마 덩치가 큰 갈색곰은 얼음판 위에서도 제법 안정감이 있었지만 늑대 같은 동물들은 중심을 잡기도 힘들어 보였다.

“아저씨. 어떻게 할까요?”

보다 못한 손이는 무지큰발에게 물었다. 하지만 무지큰발에게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글쎄다. 막상 동물들을 돕겠다고 오긴 했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저와 손이는 사냥꾼들의 주의를 끌겠어요. 아시겠지만 사냥꾼들은 은빛여우를 좋아해요.”

태니는 손이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형. 할 수 있겠지?”

“으…… 응! 그래! 해야지!”

손이는 사실 자신이 없었지만 태니의 의견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빠른발 형은 숲 속에서 소리를 질러요. 제일 무섭고 큰 소리로 말이에요. 하지만 절대 사냥꾼에게 모습을 보이면 안 돼요. 손이 형하고 나는 몸집이 작아서 사냥꾼에게서 피하기가 쉽지만 빠른발 형은 덩치가 커서 금세 들킬 거예요. 무지큰발 아저씨도 덩치가 커서 잘 보이고 위험하니까 사냥꾼 근처로 가지 말고 통로까지 동물들을 안내해 주세요. 절대로 사냥꾼의 눈에 띄면 안 되니까 사냥꾼 냄새가 나면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해요. 화들짝 형은 사냥꾼들이 총을 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동물들에게 숲으로 뛰어가라고 소리를 질러 줘요. 나머지는 손이 형과 내가 알아서 해 볼게요.”

태니는 동물들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알렸다.





살아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구출되었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한 동물들은 어쩔 수 없었다. 동굴을 통해 섬으로 돌아온 동물들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란민들레숲을 탈출하기는 했지만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평생을 살아왔던 고향집을 두고 떠나온 것이 가슴 아팠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또한 기약이 없었다. 불과 호수 건너의 숲에 남겨둔 가족과 친구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혹시 살아 있다 하더라도 사냥꾼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건질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슬픔에 잠겨 있던 동물들 사이에 누군가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 녀석이에요. 이 녀석들이 우리 가족과 친구들을 죽게 만든 거예요.”

살아남은 동물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늑대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좀처럼 겁을 먹지 않는 늑대들이었지만 동물들의 험악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꼬리를 감아 내렸다. 눈치를 보던 늑대들은 한 마리의 늑대를 앞 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곤 소리쳤다.

“이 놈이에요. 이 놈이 우리를 몰아붙였어요. 늑대가 숲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자기가 숲의 왕이 되면 모두에게 한 자리 마련해 주겠다며 유혹했어요.

까칠한흰수염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숲을 지배하고자 한때 의기투합했던 늑대들이 위기에 놓이자 배신을 한 것이다. 까칠한흰수염은 막막하여 울면서 말했다.

“여태까지 앞장서라면서 등을 떠밀던 건 너희들이었잖아!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까칠한흰수염이 늑대들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우리가 언제 그랬어? 다 너 혼자 계획한 일이잖아. 여러분! 우리는 까칠한흰수염이 시켜서 한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잘못은 했지만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동물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동물들은 그래도 늑대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러지 마시고요. 늑대들도 우리 노란민들레숲의 주민이었잖아요. 이 일은 이제 되돌릴 수 없어요. 지난 일을 들추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까칠한흰수염을 우리 마을에서 추방하고자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잘 판단해 주세요.”

동그란엉덩이가 동물들에게 한마디 했다.

“그럴 수 없어요. 우린 저기서 죽을 뻔했어요. 늑대들 모두를 추방해야 해요.”

“저는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내 아들도 죽었소.”

“나는 가족이 모두 죽고 이제 혼자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엄마의 가죽이 벗겨지는 걸 봤어요. 흑흑흑~"

“저는 아내가 죽는 모습을 지켜봤단 말입니다. 절대 늑대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내 아들은 다리에 총을 맞아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

동물들은 대부분 소리쳤다. 모두 늑대들을 무리에서 추방하자고 아우성이었다. 동그란엉덩이는 동물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소리쳤다. 화가 난 목소리였다.

“당신들~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지난번 투표 때 당신들은 늑대들 편에 섰어요. 자발적으로 말이에요. 누가 등을 떠밀기라도 했었나요? 당신들은 힘없고 약한 동물들을 버리고 갔어요. ‘너희들은 싸울 줄도 모르니까. 겁쟁이들은 도망이나 치시지!’라고 말하던 동물도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겠죠? 당신들이 버렸던 힘없고 약한 동물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당신들이 사냥꾼에게 죽어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결국 당신들을 구하기로 했어요. 그것도 만장일치로 말이죠. 그리고 어땠나요? 당신들을 구해서 이렇게 안전한 이곳까지 데리고 왔잖아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까지 당신들을 구해 준 동물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 보셨나요? 당신들은 늑대들에게 아무 말할 자격이 없어요. 그래도 늑대들을 쫓아내자고, 책임을 지라고 할 건가요? 정말 그런 마음이 있다면 제 생각에는 모두 떠나세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물까지 이끌고 무지개마을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로서는 지금 있는 동물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리고 제 두 아들과 친구들을 더 이상 목숨을 거는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네요.”

동그란엉덩이의 말에 다들 할 말이 없었다. 동그란엉덩이의 말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까칠한흰수염은 울면서 달아났어요. 멀리 사라져 버렸죠. 아마 생각지도 못한 배신을 당하고 나서는 같은 늑대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늑대들에게 등 떠밀려 앞잡이 노릇을 하던 시절이 좋았을 거예요. 대장 노릇에 눈이 어두웠던 거죠. 늑대들은 까칠한흰수염을 허수아비로 세워 두고 노란민들레숲을 지배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들이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숲을 위해 힘을 쓸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호숫가에서 다투는 사이 사냥꾼들은 호수 건너편 숲에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말았어요. 인간들은 우리보다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망원경이라는 이상한 물건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인간들에게는 이상한 물건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퀴즈] 동굴 탐사대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길로 무지개마을 입구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지도를 잘 보고 길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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