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하루에 한 편 쓰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
단편소설이 왜 나를 시험하는 장이 됐을까?
지금은 이상하게 선뜻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한다.
아마 빠져드는 것에 살짝 두려움을 느낀 탓일 게다.
글을 쓰는 중에는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데다, 글을 마무리 짓고도 며칠씩 공허함 속에 산다.
목표는 하루에 단편 한 편 쓰기였다.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퇴고 과정은 없다.
한 편을 쓴다는 표현은 그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며칠을 두고 구상한 것을 포함하면 하루를 넘겼다고 볼 수 있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을 쓰다 지치면 잠시 쉬는 중에 썼다.
장편소설은 한 달을 넘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썼다.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손가락이 안타까웠다.
속도가 뭐가 중요할까 싶지만 그건 나 자신과의 계약이었다.
나를 테스트하기로 했던 것이니까.
그래서인지 작품성엔 한계가 있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우지 못해서라고 하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거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퇴고에 퇴고의 과정을 거쳐도 고쳐야 할 게 많은 글이라는 놈을 두고 그저 시간의 압박에 머리를 조으며 글을 썼다는 게 그다지 바람직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든 나 자신과의 계약에 있어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에 자족하기로 했다.
단편소설이 나를 테스트하기 좋았던 이유는 몇 가지 된다.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들이 추구하는 성향을 따라가 보기에 적합했다.
하루키의 소설들처럼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일상에서 그려낸 <척척박사들> 같은 소설이 그 예다.
물론 전문 작가라면 좀 더 재미있고 알찬 구성, 재치 있고 살이 통통한 문체로 작품을 완성했을 거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주로 쓰던 나는 단편소설에 다른 성향의 글을 깨작거려 볼 수 있었다.
다 쓰고 나니 만족도가 생겼지만 처음 의도는 글쓰기 공부 수준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써댄 글들은 나를 아주 조금씩 성장하게 만들었다.
우습지만 학창 시절에 배웠던 인칭과 시점을 다양한 구성으로 접목한 것이다.
글쓰기 스승이 없다 보니 스스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내 단편소설 9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0편을 채우고 싶었지만 요즘은 집중할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새로운 글의 시작에 발목을 잡는다.
지난 장편소설 <로드바이크 시즌2-침묵의 봄>을 마무리 짓고 거의 6개월이나 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단편소설을 씀으로써 글쓰기 공부를 했다.
글쓰기에도 의지와 체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족할 만한 글쓰기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은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공유한 현실일 것이다.
글쓰기도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의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소재 몇 개를 두고 있지만 벌써 몇 달째 고민만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쓰기 시작하면 모닥불에 불붙듯 활활 타오를 텐데 말이다.
지금 하는 업무에 지장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