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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삼대

가난을 물려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까지

by 루파고
“오늘은 이슬에 젖어 처음처럼 살고 싶어요!”


남대문시장에서 만식으로 일하다 노점상을 시작한 경철은 소주 한 잔으로 한숨을 달래고 싶었다. 만식이는 남대문시장에서 가죽 및 잡화 가게, 가방 가게, 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을 말한다. 경철은 남대문에서 일 년 넘게 만식이로 일했다. 그러다가 삼 개월 전에 깔세 오십만 원과 월세 오십만 원에 노점상 하나를 인수한 것이다. 물론, 자리 값만으로 인수했다. 경철은 남대문시장에서 돈이 될 만한 아이템들을 눈여겨보았다. 제일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은 여성용 액세서리라는 것을 파악한 경철은 깔세 오십만 원을 포함하고 노점에서 판매할 물건까지 장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일 년간 알뜰살뜰 모아 왔던 돈을 모두 투자했다. 아내는 위험하지 않겠냐며 만류했지만 경철은 자신 있었다. 일 년간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며 보고 배운 것들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경철의 의지를 막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하루 최소 이십만 원에서 삼십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경철의 자신감을 믿은 것이다. 네 달 후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경철은 넉넉한 수입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단칸방 오피스텔을 벗어나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그의 아내에게도, 경철에게도 꿈이자 희망이었다. 달랑 보증금 오백만 원짜리 오피스텔에서 조그만 월세 집으로라도 이사하려면 적어도 수천만 원은 필요했다. 경철이 만식이 생활을 그만두고 노점상을 시작한 후 매일 삼십만 원에서 사십오만 원 정도 되는 현금을 들고 들어왔다. 게다가 주말이 되면 무려 오백오십만 원에서 삼백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고 왔다. 경철의 아내는 행복했다. 처음에는 모자란 물건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재투자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래 봐야 기껏 이주 정도에 그쳤다. 매출에 대한 마진율은 칠십 프로 정도인 액세서리 노점상은 월평균 천오백 만원이나 되는 큰 수익이었다. 경철과 아내는 평생 처음 만져보는 거금 덕분에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남대문시장의 노점상은 비가 오는 날에도 장사가 잘 되었다. 노점상들에게는 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각 상가들에 설치된 어닝을 서로 연결해서 비가 오더라도 손님들이 지나다니면서 비 한 방울 맞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되었다. 그 덕에 노점상을 운영하는 경철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은 서로 상생하는 구조였다. 상점을 경영하는 상점주들은 노점상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부분 노점으로 시작하여 상점까지 운영하게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점상이 그들의 수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노점상은 남대문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아이콘 같은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경철의 노점상은 깔세 오십만 원이었지만 그것도 정말 비싼 축에 끼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노점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철이 남대문시장에서 일 년간 성실함과 의리 있음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은 아무나 그들의 품으로 끌어당기지 않았다. 남대문시장의 어닝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남대문시장의 식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철은 그동안 결혼과 신혼생활을 하면서 생긴 빚을 모두 갚아 버렸다. 그러고도 천만 원이 넘게 남아 있었다. 경철 부부는 핑크 빛 희망에 부풀었다. 원래 정상적이었다면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지난달 한일 간 문제 때문에 일본인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던 게 문제였다. 매출이 줄어든 게 이상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만식이 시절에 비하면 다섯 배가 넘는 수익을 가져올 수 있었고 경철은 장사에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상인들에게 인정받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남대문시장 안에서는 어떠한 것이라도 팔지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경철은 이 참에 장사를 좀 더 키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미 액세서리 장사 이후에 더 큰 장사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 두기도 했다. 적어도 액세서리에 비하면 두 배에서 세 배 정도는 더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그것이 불법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기껏해야 벌금 조금 내면 해결이 된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해 두었다. 크게 문제 되어 봐야 백만 원 정도이고 적게는 십만 원에서 오십만 원 수준의 벌금이 나올 것이었다. 그 정도는 경철에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경철의 배포는 어느새 너무 커져버렸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장사꾼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런 경철을 바른 길로 안내해줄 길잡이가 없다는 것이다. 경철은 고민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알고는 있지만 험난한 길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철은 아내와 그것을 상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달이면 출산을 앞두고 있는 데다 괜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경철은 아내와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축복받은 삶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서울엔 경철이 그런 문제를 두고 상의할 사람이라고는 남대문시장의 상인들뿐이었다



*



경철은 독자다. 그것도 칠 대째 독자다. 지금은 아버지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산다. 경철네 집안은 칠 대째 가난이 대물림되었다. 경철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불렀다. 잘 사는 집에서는 독자라고 하면 부를 물려받을 유일한 주인공으로 세상의 모든 행복을 독차지하며 살 것이었지만 경철의 집안은 그 반대였다. 대물림된 가난은 그의 곁에서 절대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철의 집안 남자들은 역대로 장수한 사람이 없다. 그나마 경철의 아버지가 오십 세를 넘기고 있어 역대 최 장수를 누리고 있다. 경철은 할아버지 제사도 거부했다. 그건 이유가 있었다. 아마 칠 대를 거친 가난 중에 경철의 가난이 최악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철의 할아버지는 육이오 전쟁 이후 가족을 남쪽에 내팽개쳐 두고는 북한으로 월북을 했다. 그 때문에 남쪽에 남은 가족들은 그에 따른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경철의 아버지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하긴, 그건 순화된 표현이었다. 경철네 집안은 어딜 가든 간첩의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경철의 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정상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장사를 해도, 그 무엇을 해도 안기부 직원들이 들락거렸고 하는 것마다 망했다. 재산이랄 것도 없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몇 푼 마저 모두 날려 버린 경철의 아버지는 도망치듯 일산으로 이사해서 살았다. 당시의 일산에는 한 집 건너 도망자와 범법자들이 살았고 나환자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던 험난한 곳이었다. 경철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먹고 살 수기 위해 일이란 일은 닥치지 않고 해야 했다. 역시 인간의 강한 집념은 가난도 떨쳐낼 수 있었다. 경철의 집안은 육 대에 걸친 가난을 드디어 벗어나게 되었다. 경철의 아버지는 조금씩 모은 돈으로 일산에 약간의 밭뙈기를 구입했고 얼마 후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거의 오십 배가 넘는 가격에 땅을 되팔았다. 경철의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십억 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 당시의 십억 원은 지금의 오십억 원은 되는 정말 큰돈이었다. 경철의 집안은 육 대에 걸친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일산의 곳곳에는 부동산이 들어섰다. 백여 미터 안에 부동산 두세 개는 기본이었다. 경철의 아버지는 부동산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아직 팔지 않은 밭뙈기를 더 좋은 가격에 팔아 더 큰 부를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경철의 집에는 처음으로 승용차가 생겼다. 그랜저라는 고급차량이었다. 비닐하우스나 다름없던 집에서 벽돌로 된 집으로 이사도 했다. 대형 텔레비전, 전화기, 냉장고, 세탁기 등 CF에서나 보던 가전제품을 구입했다. 경철은 원할 때면 아무 때나 치킨이나 피자 등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 경철네 집은 가난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했다. 언젠가부터 경철의 아버지는 명함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낮에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따로 할 일이 없으면 부동산에 나갔다. 경철의 아버지의 친구가 사장인 부동산이었다. 그곳에 가면 경철의 아버지는 김 사장님으로 불렸다. 그곳에는 죄다 사장님과 회장님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의 대형 고급차를 끌고 다녔다. 회장님은 벤츠를 탔고, 사장님은 그랜저를 탔다. 게다가 다들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산 신도시에서 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장님이 경철네 주변에는 꽤 많았다. 그런데 회장님이나 사장님이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었다. 그들의 벤츠와 그랜저 트렁크에는 곡괭이, 삽, 낫, 괭이, 호미 등 각종 농기구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부터 경운기를 어딘가에 치워버리고 경운기 자리에 벤츠와 그랜저를 대신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 무렵부터는 외지인들이 차린 중국집이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농사를 지으며 아내가 가져다주던 새참 대신 중국집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물론 독한 고량주는 기본이었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중국집에만 돈을 벌게 해 준 건 아니었다. 새로 생긴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은 강남보다 물이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덕분에 음주 단속을 나온 동네 경찰들도 용돈을 벌었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단속 나온 경찰들에게 수표도 아닌 만 원짜리 돈다발을 두둑이 찔러주었다. 경찰들은 그들에게 구십 도로 꾸벅 인사했다. 경찰들은 ‘용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으로 ‘안전 운전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의 부동산에는 언젠가부터 온천 개발업자들이 나타났다. 주식 중 개인도 나타났다. 그들은 회장님과 사장님을 찾아다니며 극진히 모시기 시작했다. 룸살롱에서는 더 이상 회장님과 사장님이 주머니를 열 필요가 없었다. 경찰들의 용돈 역시 그들이 대신 내주었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들의 직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경철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집에서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변의 회장님과 사장님 중 몇 명이 경철네 집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경철의 아버지는 육 대째 내려온 가난을 벗어난 지 불과 삼 년 만에 칠 대째 가난으로 탈바꿈시켰다. 경철의 식구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 식구는 더 이상 같이 살 집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사장님이었던 경철의 아버지는 그나마 구축했던 부조차 지키지 못했고, 경철은 그런 그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경철은 집안 조상 모두가 싫었다. 가난을 물려준 조상을 모신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경철은 그 무렵부터 아버지 대신 당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경철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칸방을 구했다. 세 가족은 다시 함께 살 수 있게는 되었지만 일용직으로 건설 현장에 나가던 아버지는 매일 소주를 마셨고 주정을 시작했다. 그들의 가난은 경철의 잘못도 어머니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경철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화풀이를 했다. 경철은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한 채 가출을 하고 말았다. 칠 대째의 가난을 집 안의 전통처럼 지켜 내려온 김 씨 집안에서 더 이상 함께 숨 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경철의 목표는 새로운 일 세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가난을 벗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진정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것이다.



*



경철은 칠 대째의 가난을 벗어버릴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지금이 최고의 적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가세했다. 경철은 마지막으로 남대문시장 상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검증받기를 원했다. 이미 경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던 상인들에게 동의도 구해야 했고 자신이 그것을 해도 괜찮을지 안정성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했으니까 말이다. 경철은 상인들에게서 원하던 대답을 들었다. 어쩌면 듣고 싶었던 것만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경철은 이삼 년 정도만 열심히 한다면 서울 시내에서 조그만 집이라도 한 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아니! 그것은 그냥 헛된 상상이 아니었다. 기대해도 좋을, 충분히 공산이 있는 사업이었다. 남대문시장 상인 중 한 명이 경철이 하고자 하는 아이템의 물주가 되어 물건도 대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자금이 꽤 필요했다. 물론 경철이 가진 돈은 기껏 천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어쩔 수 없지만 경철은 그와 당분간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계약했다. 물론 구두 계약이었다. 경철은 그저 절대적인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경철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수익은 칠 대 삼이었다. 경철의 수익이 칠이었다. 경철은 이리저리 자금을 융통해서 겨우 삼천 만원을 더 만들었고 드디어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에 하던 액세서리는 그대로 유지했다. 경철은 만식이들에게서 이미테이션 명품들을 제공받았다. 원래 경철이 만식이 노릇을 할 때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앞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물건만 주고는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경철의 새로운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예상했던 대로 기존 액세서리 장사만 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수익이 생겼다. 그 이상도 벌어들일 수는 있었지만 워낙 불법적인 일이다 보니 노점상 좌판에서 대놓고 팔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익은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액세서리 수익에다 이미테이션 명품 판매 수익까지 합하면 기존 벌이의 세 배 이상은 벌어야 정상이었다. 경철에게 생각지 못했던 변수였지만 그는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대박이라는 태명을 가지고 있던 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맞았다. 대성이는 팔 대째 가난에서 벗어나 태어나면서부터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일 세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풍요의 일 세대인 것이다. 대성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경철은 우려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상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미테이션 명품 때문이다. 경철은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벌금은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전과라는 것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풍요에 비하면 그깟 전과 몇 개쯤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남대문시장의 이미테이션 명품은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테이션 명품들이 판매되는 이유가 있었다. 지역의 경찰과 남대문시장 몇몇 상인들의 유착 관계 때문이었다. 이들은 불시에 단속을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다! 아예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불시에 단속을 뜨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시에 나오는 경우라면 본청에서 직접 나오는 경우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이 때문에 만식이를 운용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불시에 기습적인 단속을 하는 경찰들에 의해 두세 명 정도의 상인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단속된 상인들은 비상연락망을 통해 단속 사실을 알리게 된다. 그러면 불과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남대문시장의 만식이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이미테이션 명품들은 어디론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그래! 없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경철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미테이션 명품을 파는 상인들의 희생양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나서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오로지 운에 의한 것이었다. 그날은 하필 경철의 좌판에 이미테이션 명품 지갑이 몇 개 놓여 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구찌 이미테이션이었다. 일본인 여자 손님이 다녀간 지 불과 일분도 채 되지 않아 단속을 맞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 일본인 여자 고객이 단속을 나온 사복 경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인들 중 누군가는 벌써 그 일본인 여자의 사진을 촬영해 두었다. 그것이 남대문시장의 체계화된 단속 대응시스템이었다. 그들이 그런 단속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자행하는 이유는 큰돈이 벌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벌금 정도로 마무리되는 것을 누구나 쉽게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십만 원에서 백만 원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철은 대성이가 태어난 지 세 달 후 다시 한번 단속에 걸렸다. 이번에는 백만 원의 벌금을 맞았다. 어차피 벌금형이기 때문에 항상 약식 기소되어 벌금을 맞았고, 경철은 벌금 용지가 나오면 지체 없이 벌금을 납부해버렸다.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경철의 사업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했다. 그의 이미테이션 제품도 수준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수익도 높아졌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투자금 역시 더 들여야만 했다. 언젠가 경철은 아내에게 진짜 구찌 명품백을 선물했다. 언젠가 그는 결심이 있었다. 아내에게만큼은 진짜 명품을 사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부자 일 세대인 대성이를 낳아 준 아내였기 때문이다. 경철은 이제 일억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그는 곧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일 피곤했지만 일 자체가 즐거웠다. 명품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킨 후 경철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사업거리가 생겼다. 부가 수익이 생긴 것이다.


“아~ 저도 이거 사업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물건을 공급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딱 봐도 어수룩한 남자였다. 서울 사람이 아니었다. 경철은 자신이 남대문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철은 이미 노점상 좌판에서 닳고 닳은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물론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경철은 누구나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동료가 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경철은 어수룩한 남자에게 물건을 팔았다. 도매가격이라고 는 했지만, 경철은 자신이 구입한 가격의 두 배나 되는 가격에 판매했다. 원래 육 할 이상의 마진이 보장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이제 삼 할 정도의 수익만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어수룩해 보이던 남자는 한 번에 이천만 원의 물건을 가져갔다. 경철은 주말 내내 장사해서 벌어야 할 것을 한 번에 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경철은 또 한 번의 사건을 접하게 됐다. 일본인 여자 손님의 문제다. 치근덕거렸다. 일본어 해봐야 기껏 물건을 팔기 위해 배운 몇 가지 장사용 일본어를 구사하던 경철에게는 일본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땀 깨나 흘리던 경철에게 옆 자리의 노점상 형님이 다가와 속삭였다.


“달래는 거야!”


형님의 표정은 의아했다. 그는 무엇을 달라는지 알지 못했다.


“뭘 말입니까? 형님!”


“자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거 달라는 거야!”

형님은 경철의 바지 아래쪽을 넌지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경철은 이제야 형님의 뜻을 이해했다. 그걸 달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기는 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경철은 형님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다른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일본인 여자는 덧니를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경철은 대체 이 여자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명함 줘!”


형님은 경철을 쳐다보더니 답답한 지 소리쳐 말했다. 경철은 <럭셔리아 샵>이라는 상호의 매니저라는 직함이 쓰인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경 처 루!”


일본인 여자는 명함을 보며 경철의 이름을 불렀다. 일본식 발음이 어색했지만 일본인 여자의 목소리는 꽤 섹시했다. 일본인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였다. 일본인 여자가 떠나고 형님의 손님들이 모두 떠나길 기다렸다. 경철은 이 황당한 일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장사가 바빠졌기 때문에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겨우 물어볼 수 있었다.


“형님. 대체 이게 뭡니까?”


“니가 저 여자한테 꽂힌 거야! 너는 여기서 이 년이나 있었으면서 아직까지 이걸 몰랐다는 거야?”


형님의 말에 경철은 이런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은 경철에게 잘해보라고 말했다. 대체 뭘 잘해보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설명을 통해 일본인 여자의 쇼핑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경철은 오래전부터 일본인 여자들에게 있어 남대문시장은 이미테이션 명품과 함께 한국인 남자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자신도 일본인 여자의 남자 상품들 중 하나가 되어 간택된 것이었다. 그날 밤 경철 은 명동의 한 호텔에서 일본인 여자와 밤을 보냈다. 일본인 여자는 섹스를 잘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내보다 성적인 만족감을 더 주었다. 상품을 사용해본 여자는 경철에게 한국 돈으로 삼십만 원을 주었다. 경철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삼십만 원이라는 돈을 받으면 자신은 그냥 상품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여자는 경철에게 키스하며 십만 원을 더 보태 경철의 주머니에 넣었다. 호텔에서 쫓겨나듯 나온 경철은 주머니의 사십만 원을 꺼내 들었다. 빳빳한 오만 원짜리 신권이었다. 자신의 온기 때문인지, 방금 인쇄되어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철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은 장사꾼이 되고자 했지만 지난밤에는 장사꾼이 아닌 상품이 된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경철은 자신의 성을 사고 판 것이다. 두 번째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여자는 매달 한 번씩 경철을 찾아왔다. 여자는 침대에서 수십 번씩 경철을 찾아댔다

일본 여자는 <경 처 루! 아이 시떼루>를 연발했다.



*



경철의 사업은 활주로처럼 쭉 뻗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가 아마 경철이 이미테이션 명품 장사를 시작한 지 일 년째 되어 가던 날이었다. 경철은 세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경철은 자주 단속되었다. 만식이들은 역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엔 그냥 일반적인 단속이 아닌 것 같았다. 경철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냥 형식적인 것이 아님을 알았다. 단속 나온 경찰들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경철은 긴장했다. 첫 단속 때에도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었던 그다. 그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도 했었지만 기껏해야 벌금 조금 맞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철은 단속반에 단속되어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연행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단속반에 의해 끌려가던 경철은 주변 상인들의 눈빛을 보았다. 측은한 눈치였다. 옆자리의 형님은 단속반을 막아서며 잠시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그러마 하고 잠시 기다려 주기로 했고, 형님은 경 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경철아! 니가 타깃이란다! 이번에는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형님은 경철의 표정을 확인했고, 경철은 형님의 표정을 확인했다. 난감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형님! 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구속될 거야.”


형님의 말에 경철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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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철의 부모님이 유치장에 다녀갔다. 유치장에서 벌써 삼 일째다. 경철은 차마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릴 수 없었지만 실종을 염려할 것이 더 걱정되어 결국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었던 경철의 어머니 연락처를 찾아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시어머니와의 첫 통화가 아들의 구속에 대한 것이었으니 그 얼마나 암담했을까? 경철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십 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얼굴에서 자신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과 애틋한 표정 그리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만 말하는 아버지의 한탄에서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이 복받쳐 나왔다. 경철은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증오한 적은 없었다. 그저, 그의 가난이 싫었고,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선조로부터 물려 온 가난을 자신에게까지 대물림하려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경철은 처음으로 당신이라고 부르던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원망스럽기만 했던 아버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적어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지는 않았었다. 그것이 합당하다고 착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이 가난보다 더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경철의 대대적인 단속에 있어 누군가 총대를 메야한다고 생각했고, 가장 만만했던 노점상 경철이 그들의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경철 은 벌써부터 대성이가 보고 싶었다.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서야 자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지금의 상태라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가 자신과 대성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가출까지 해가면서 가족을 버렸던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가족은 돈으로 뭉쳐진 것이 아니고, 핏줄과 정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도 대성이와 교감 부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자신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해 본 적이 없었다. 월북을 해버린 할아버지 즉, 아버지의 아버지가 남긴 가난과 혹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그 얼마나 미친 듯이 발버둥 쳤던가를 단 한 번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경철은 그저 가난이라는 굴레가 싫었고 그깟 자존심 때문에 가족까지 버린 것이었다. 경철의 아버지는 뭐든 곧 될 것처럼 가족들을 안심시켰고, 언제나 희망에 부풀어 들게끔 했었다. 그러나 될 것 같으면서도 되지 않았고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행복이라는 것이 오직 부를 통해서만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곧 될 것이라며 각종 증거까지 제시하면서 사기 치듯 자신에게 행복한 미래를 제시해왔었다. 경철은 결국 그것이 가족을 분해시킨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성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자신과 가족을 지금의 이 상황까지 내몬 것은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닮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그들은 웃음 속에 무엇을 감추며 살아갈까?’ 경철은 생각했다. 언젠가 누군가 했던 말이 갑자기 기억났다. <부모님은 자식이 잘났든 못났든 그 자식 때문에 버티고 살았다>고 했다. 경철은 많은 생각을 했다. 태어난 이후로 부모 자식의 관계와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경철은 이제 부모로,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 새끼가 나 같은 삶을 살게 만든다면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고 경철은 이미 그의 그 마음이 자신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슬에 젖어 처음처럼 살고 싶어요!”


유치장에서 나온 경철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부자는 가벼운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근처의 허름한 포장마차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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