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은 오해에서 시작된다
“또 시작이군. 이거 원~ 이사를 가던 해야지, 신고를 할 수도 없고,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으이구~”
경태는 투덜거리며 이불을 당겨 머리까지 푹 뒤집어썼다. 여봇~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아내의 신경질 역시 시작되었다.
“아~ 또~ 왜?”
경태는 아내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아내의 신경질에 수준을 조금 더한 신경질을 토해냈다. 사실, 아내의 신경질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태가 이불을 뒤집어쓴다는 게 너무 세게 이불을 당기는 바람에 아내가 덮었던 부위까지 몽땅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경태는 머뭇거리며 사과하는 것으로 위태로웠던 다툼이 종료되었다.
“미안해! 에잇! 정말 잠이 다 깨어버렸잖아. 여보~ 옆집 근호 엄마한테 전화라도 해봐. 제발~ 잠 좀 자자고 그래. 제발! 이거 매주 치르는 행사도 아니고, 걸핏하면 부부싸움이야? 지들이 잉꼬야? 어휴~ 젠장~ 썩을~ 젠장~ 젠장!”
경태는 더 심한 욕지기가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화를 꾹 눌어 앉혔다. 하지만 경태의 아내는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다. 지난번에도 옆집 근호네 부부싸움에 지쳐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웃들의 불편한 시선뿐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경찰이 직접 출동해서 중재가 되기는 했지만, 결과는 동네의 해프닝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경태는 그 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정작, 본인 부부의 싸움에서만큼은 칼로 물 베기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었지만 근호네 부부싸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이웃끼리 그깟 소음 문제를 가지고 신고까지 하느냐며 손가락질했다. 경태의 아내는 한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려야 했고,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에게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었다. 경태는 한동안 동네 골목길에서 이웃들의 시선을 피해 다녔고, 전에 없던 축지법을 시전 해야만 했다. 경태 부부는 근호네 소음을 그저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부부싸움이 뜸한 것이 그들의 관계가 꽤 개선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그들 부부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얼마 전부터 근호네 집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부부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개선된 것은 관계가 아니고 부부싸움의 수위였다. 그 전에는 그저 말싸움 수준이었다면, 요즘에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림살이를 던지고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경태의 아내는 그들 부부싸움보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근호의 심리적인 충격이 더 걱정이었다. 경태의 아내는 근호 엄마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지난번에 고성방가를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했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근호는 경태의 아들 명철이와 같은 나이인 데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사이다. 벌써 이 년째 붙어 다니며 지들끼리는 제일 친한 친구라고 했다. 하지만 근호 엄마와 경태의 아내 명철 엄마는 아이들처럼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지낼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날 밤, 경태의 아내는 경태의 신경질에 견디다 못해 근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 전화연결이 되지도 않는 상황이 되었고 명철 엄마는 근호 엄마의 비명소리에 놀라 근호네 집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여자들끼리는 근호 엄마의 비명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 큰일 났어! 근호 아빠가 근호 엄마를 때리나 봐~ 여보! 어떻게 해? 와서 도와줘야 할 것 같아.”
경태의 아내는 전화를 통해 경태에게 소리쳤다. 경태는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가정폭력>까지는 좀 무리라 싶었던 경태는 <부부싸움으로 인한 고성방가>로 신고하면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 같다>며 부연설명을 했다. 경찰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근호네 집에 도착했고, 근호네 부부는 태연하게 대문을 열어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 부부는 몸 어디에도 다치거나 맞은 흔적은 없었다. 경태의 아내는 경찰의 등 뒤에서 경찰들 사이로 근호네 집 안쪽을 유심히 살폈다. 근호는 보이지 않았다. 집안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다. 어느 부부나 마찬가지겠지만 근호네 부부 역시 시시한 문제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냥 그저 그런 부부싸움의 레퍼토리다. <니가 언제 돈이나 많이 벌어온 적이 있냐>에서부터 <그래 니 잘났다. 어휴~ 내가 집을 나가던 해야지>까지 가며 마지막에는 <야! 이혼해! 도장 찍어!>로 끝이 나는 진부한 스토리다. 그들의 부부싸움이 시작된 것은 불과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삼 년 전 처음 그들 가족이 옆집 이층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들 부부는 동네에서 인정받는 잉꼬부부였다. 적어도 그때는 허구한 날 싸우는 잉꼬들이 아니었다. 둘 다 젊은 나이에다 인물도 좋고, 특히 근호 아빠는 키도 크고 잘 생겨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기 남편과 비교하는 잣대가 되었다. 게다가 근호 엄마는 미스코리아 뺨치는 얼굴에다 애를 낳은 게 아니라 입양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잘 관리된 에스라인 몸매였다. 동네 남편들은 근호 엄마의 몸매를 감상하다가 마누라들에게 귓불이 잡혀 끌려들어 간 게 한두 명은 아닐 것이었다. 그들 부부 때문에 오히려 동네의 다른 가정들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야! 니 몸매는 그게 뭐냐? 근호 엄마 좀 봐라! 운동 좀 해라!> 이건 남편들의 공통적인 대사였고 <어휴! 내가 이리도 못생긴 남자를 뭐에 꽂혀서 시집을 왔나? 그날 밤만 아니었어도!> 이건 아내들의 공통적인 푸념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부부싸움에서 근호네 집은 단골로 거론되는 비교대상이었다. 그랬던 근호네 집은 약 일 년 전 부부싸움이 시작되었고 그 무렵부터는 다른 집의 부부싸움 단골 메뉴에서 사라져 버렸다. 요즘, 동네에서는 그들 부부를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예쁘면 뭐하냐? 성격이 어떤지는 몰라도 매일 매 맞고 사는데. 불쌍하기도 하지만 오죽하면 매 맞고 살겠어? 만약에 내가 근호 엄마처럼 예쁜 마누라 데리고 살면 떠받들고 살 텐데. 안 그래 마누라? 제발 살 좀 빼지?> <잘 생긴 것만 보고 결혼했다가, 저런 막되어 먹은 인간인 줄 알고는 얼마나 마음 아프겠어. 그나저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크는 근호가 너무 불쌍해. 하여튼 남자라는 동물들은 너무 폭력적이야. 당신은 나도 때릴 거야?> 근호네 부부싸움이 시작된 후부터는 동네 사람들의 부부싸움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여보! 그냥 참고 자자. 오늘도 어지간히 하다가 자겠지 뭐. 별다른 큰일이야 있겠어?”
경태의 아내는 이번만큼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물론, 경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
다음날 오전, 경태가 출근한 후 경태의 아내는 아들인 명철이 유치원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호 엄마가 오늘따라 좀 늦는 것 같다.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가 어젯밤 부부싸움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가 싶었다. ‘내가 왜 근호 엄마 걱정이람!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한마디 해야겠어. 짜증 나서 살 수가 있나?’ 경태 아내는 은근히 근호 엄마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근호야. 하이고~ 하여튼 너는 왜 그런 것까지 아빠를 닮아서 어리바리한 거야! 칠칠치 못하게 정말~”
드디어 근호 엄마가 일곱 살 근호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경태 아내는 이 참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다짐을 하며 거의 열 걸음 앞까지 근호 엄마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근호 엄마!”
경태 아내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심호흡을 했다. 속으로 준비를 하던 찰나 골목 모퉁이에 샛별유치원이라고 유치 찬란한 유치원 상호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승합차가 그르렁거리는 거친 디젤엔진 소리를 울려댔다. 허구한 날 골목길만 누비고 다닌 승합차는 검은 매연을 뿜어댔다.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에게 한마디 하려던 것을 금세 잊고서는 유치원 승합차의 매연 문제를 따질 궁리를 했다.
“네! 언니! 왜 부르셨어요?”
두 엄마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몸에 밴 듯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에게 한 소리 하려던 것이 기억났다.
“으응~ 그게~”
경태 아내는 떠나가는 승합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대는 명철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그리고는 근호 엄마를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으려 했다.
“그~ 그게 말이지… 근호야~ 얼굴이 왜 그래?”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의 이마에 이 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얕게 패인 상처가 살구색 반창고 사이로 흐릿하고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요? 그냥…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근호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 말을 둘러댔다. 이제는 시선마저 피하려는 듯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게 뭐야. 예쁜 얼굴에~ 근호 아빠가 그런 거야?”
경태 아내는 따지듯이 물으며 상처를 자세히 보려는 듯 근호 엄마 이마로 달려들었다.
“언니! 괜찮아요. 별 거 아니에요!”
“아니! 이게 어떻게 별 게 아니야? 근호 아빠,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대화로 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럼 못써~ 남자들이 무식하게 힘만 세다고 약한 여자에게 정말 이럼 안돼!”
“괜찮아요. 자주 있는 일인걸요.”
경태 아내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근호 엄마의 말에 경악했다.
“우리 집 양반은 아무리 싸워도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는데, 어쩜 여자에게 이럴 수가 있어? 연약한 여자에게 말이야. 이건 범죄야! 근호 엄마. 이건 절대 참으면 안 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런 일은 또 생길 거야. 뭐든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에는 마음 놓고 때릴 거야. 근호 엄마! 안 되겠다.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엄마들 불러서~”
경태 아내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거렸다.
“아녜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근호 아빠, 좋은 사람이에요. 이 상처는 제가 실수로 넘어져서 생긴 상처지, 근호 아빠 잘못이 아녜요! 언니.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괜히 이상한 생각 마세요.”
근호 엄마는 경태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듯 집으로 돌아갔다. 이층 계단을 오르는 근호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예쁘고 착한 와이프를 때리다니. 근호 아빠는 생긴 것 같지 않게 성격이나 성질이나… 너무 보기하고 달라.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경태 아내는 현관을 들어서며 아무래도 동네 엄마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혼 때와 결혼 후 2~3년 즈음의 부부싸움을 떠올렸다. 사실, 경태 아내는 부부싸움을 하면서 경태에게 따귀를 맞은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경태에게 맞은 것이 너무 억울하고 어이없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지나서인지 그렇게까지 나쁜 감정으로 남아 있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어떤 이유로 인해 싸움을 한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싸웠고, 따귀를 맞았고, 아팠을 것이고 어쨌든 화해는 했으니까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경태에게 맞은 적이 두 번 있었다는 기억. 그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근호 엄마 역시 자기처럼 잊게 되겠지만 적어도 자기처럼 맞고 울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경태 아내는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모바일 메신저를 열어 단체방을 만들고 은서 엄마, 기수 엄마, 호준 엄마, 영미 엄마, 태희 엄마를 초청했다.
명철맘 : 방금, 명철이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는데 근호 엄마가 근호 아빠에게 맞아서 이마가 엄청나게 많이 찢어진 걸 봤어요. 성형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던 걸요.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호준맘 : 뭐라고요? 어쩜 좋아요 ㅠ ㅠ
태희맘 : 예쁜 얼굴인데. 어쩜~
기수맘 : ㅠ ㅠ
은서맘 : 그런 남편은 혼이 나야 해요. 어떻게 약한 여자를 때릴 수가 있어요?
영미맘 : 신고했어요?
기수맘 : 내가 언제고 그 집 그럴 줄 알았어요.
명철맘 : 기수 엄마. 그게 무슨 소리에요?
기수맘 : 그게~ 말하지 말랬는데…
명철맘 : 뭔데요?
영미맘 : 그러게요. 그게 뭐길래 그래요?
태희맘 : 공개하세요. 이런 일은 까발려야 해요.
호준맘 : 우리 동네에 여자를 때리는 남편이 있어선 안돼요.
은서맘 : 호준 엄마도 작년에 호준 아빠에게 맞았다고 울고 그랬잖아. 너무 그러지 마~
호준맘 : 언니!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녜요? 저희는 그때, 오해였다 고요. 지금은 잘 살잖아요.
은서맘 : 미안해. 정말! ^^;
기수맘 : 말하지 말랬는데… 우리끼리만 알아야 해요. 절대 소문내지 마세요.
영미맘 : 당근! 찌익- 입 봉했음!
태희맘, 호준맘, 명철맘, 은서맘, 영미맘 : 나두!
기수맘 : 우리 기수 아빠 회사예요. 근호 아빠하고 같은 고향에서 올라온 사람이 있는데요.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다가 우연히 근호 아빠를 만났거든요. 기수 아빠한테 이야기해 준 건데요. 근호 아빠는 폭력전과가 있대요. 그걸로 두 번이나 감방에 다녀왔다나 봐요. 그래서 소문이 없는 서울까지 이사 온 걸 거래요. 어릴 때부터 거의 깡패나 마찬가지였대요. 근호 엄마도 같은 고향사람인데 근호 아빠가 강제로 거시기해서 애가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거래요. 그래서 저희는 근호네 부부싸움 나도 무서워서 그냥 조용히 사는 거예요.
호준맘 : 아~ 그래서 그랬구나?
기수맘 : 뭐가요?
호준맘 : 지난번에 경찰이 왔을 때, 근호 엄마가 경찰들을 억지로 보내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무래도 남편이고 애기 아빠인데 잡혀가면 어떻게 해요.
명철맘 : 기수 엄마네는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바로 옆집이라 우리 집보다 더 시끄러웠을 텐데.
기수맘 : ㅠ ㅠ 주룩주룩이에요.
은서맘 : 그랬군요. 우리 동네에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나저나 근호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기수맘 : 요즘 따라 부부싸움이 잦아졌는데, 근호 엄마는 매일 맞고 사는 거 아닐까요?
All : 그러게요~ 큰일이네요.
*
경태 아내는 단체방에서 들었던 정보에 치가 떨렸다. 경태 아내는 거의 십 년 가까이 살아왔던 동네를 떠나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경태가 어젯밤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 이사를 갈까?’ 경태 아내는 명철이 교육 문제도 걱정이 되었다. 같은 동네에 폭력배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경태 아내는 집에서 나왔다. 명철이 유치원 차량을 기다리러 나가는 길이다. 그런데 근호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자살?’ 경태 아내는 자신의 상상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흔들어댔다. 까만 매연을 일으키며 다시 나타난 유치원 승합차가 보였다. 그런데 경태 아내는 근호 엄마를 볼 수 없었다. 끼이익! 다 닳아 빠진 브레이크 밀리는 소리가 났다. 사고방지용 안전 막대가 튀어나오고 승합차 바닥에서 발판이 미끄러지듯이 밀려 나왔다. 명철이는 발판도 밟지 않고 승합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런데 몇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승합차 안에는 근호가 보이지 않았다.
“명철아! 안녕~ 우리 몇 밤 자고 월요일에 예쁜 모습으로 만나요~”
곱상하게 생긴 유치원 선생님이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손 인사를 했다. 그리곤 경태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 근호 찾으세요?”
“네~ 근호가 안 보여서~”
경태 아내는 아직도 승합차 안을 기웃거렸다.
“근호는 오늘 부모님이 먼저 데리고 갔어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셨던데요.”
“아~ 네~”
경태 아내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멀어져 가는 노란 승합차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매연 문제! 또 이야길 못했네~ 월요일에는 꼭 말해야지. 그나저나 혹시 근호 아빠가 근호를 납치해서 어디론가 가버린 건 아닐까?’ 경태 아내의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졌다. 경태 아내는 명철이를 끌다시피 잡아채고 집 안으로 데리고 온 후 명철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하나를 틀어주었다. 그리곤 곧장 경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굉장히 짧은 반응이다. 경태 아내는 갑자기 괜한 신경질이 났다. 아무래도 남편과 상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니. 그냥! 오늘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경태 아내는 그냥 말을 둘러댔다.
“회식이야. 늦으니까 먼저 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알았어!”
경태 아내는 맥이 풀린 듯 답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경태는 이제야 뭔가 눈치를 챈 듯했다. 아내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니! 없어! 그냥 잘 놀다 와! 됐어!”
“노는 거 아~”
경태 아내는 경태의 대답도 마저 듣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경태의 전화는 끝내 걸려오지 않았다. 경태 아내는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몇 분이 지났지만 경태에게선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따위도 없었다. 경태 아내는 포기하고 근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는 가는데 전화 연결은 되지 않았다. 경태 아내는 걱정이 되어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연락 부탁해! - 명철맘> 경태 아내는 다시 메신저를 열어 근호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 좀 해 줘!> 경태 아내는 이 사건을 논의했던 동네 엄마들의 단체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
명철맘 : 근호 엄마가 사라졌어요. 전화도 받지 않아요. 근호는 근호 아빠가 느닷없이 유치원에 나타나서 데리고 갔대요. 우리~ 대책회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저희 집 비었어요. 저희 집으로 오세요.
All : 네! 바로 갈게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엄마들이 경태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여섯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지금 근호네 집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요. 저희 집에서 근호네 집이 바로 보이거든요. 여기서 근호네를 감시도 하고 여차하면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경태 아내는 엄마들에게 말했다. 경태 아내는 벌써부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있다가 캠핑가요.”
영미 엄마였다.
“그래서, 참여 못하신다는 건가요?”
경태 아내는 영미 엄마에게 부러운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경태 아내는 단 한 번도 캠핑이라는 것을 가자고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영미네는 거의 매주 캠핑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영미네랑 같이 캠핑 가는데~ 우리 집도 안 되겠다.”
“은서 언니! 아~ 정말~”
경태 아내는 은서 엄마도 빠져버린다 해서, 그것도 영미네와 캠핑을 간다고 하니 짜증이 나려 했다.
“저희는 이따 시집엘 가야 돼요. 아버님 생신이시라~”
“우리는 여행가요.”
이제는 기수 엄마만 남았다. 경태 아내는 기수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의 도와달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눈빛을 담았다.
“어~ 우리 집은~ 음. 아이 정말~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근호네 집 일에 끼고 싶지 않아요. 모르면 하겠지만 솔직히 무서워요. 사실 우리 집은 이사까지 가려고 준비하는 중인데, 근호네 집 일에 끼고 싶지도 않아요.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가 보복이라도 당할까 봐 무서워요!”
경태 아내는 다들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수 엄마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회피하려 하는 것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래도, 그건 아니죠. 같은 여자 입장으로서 어떻게~”
“저는 우리 가족을 담보로 우리와 관계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요. 꼭 하고 싶거들랑, 언니 혼자 하세요. 다른 사람까지 말려들게 하지 마시고요.”
경태 엄마의 호출에 나섰던 엄마들은 각자의 이유로 모두 돌아가 버렸다. 몇몇 엄마들은 무안한 지 쭈뼛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기수 엄마는 거의 도망이라도 치는 듯 꽁무니를 빼며 사라져 버렸다.
“엄마! 배고파~”
명철이는 벌써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벌써? 경태 아내는 잠시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러는 사이 벌써 해는 져버렸고 시계는 일곱 시 삼십 분이 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미안해~ 명철아.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경태 아내는 식사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게 귀찮았다.
“피자!”
명철이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밥 하기가 귀찮았던 경태 아내는 피자를 주문하고 근호네 집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실내등이 켜져 있지 않았다.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근호 엄마에게서는 전화도 문자메시지도 없다. 모바일 메신저는 수신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경태 아내는 기수 엄마가 했던 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한 걸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아~ 우리 집에 보복을 하면 어쩌지?’ 경태 아내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공포는 증폭되기 시작했다. 딩동~ 경태 아내는 현관 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명철이는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입을 벌린 채 눈만 말똥말똥 뜬 상태로 올려다보고 있다.
“명철아. 피자 왔나 보다!”
경태 아내는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어 현관으로 향했다. 생전 하지도 않던 행동을 한다. 문에 달린 구멍으로 바깥의 사람을 확인했다. 오래된 주택이라 아파트에는 어디나 있는 흔한 비디오폰도 없다. 경태 아내는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피자 배달이 맞다. 하지만 다시 확인한다.
“누구세요?”
“피자 시키셨죠?”
그제야 경태 아내는 문을 열어주고 말했다.
“죄송해요. 요즘 하도 세상이 험해서. 확인하느라고~”
“아뇨~ 그게 정상입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하하하~”
사십 대 초반의 배달원은 상황에 적절하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고 멋 적은 듯이 웃었다. 소박한 모습에 신뢰가 보였다.
“아저씨~ 만약에요. 매 맞고 사는 여자가, 아니 아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태 아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런 놈은 그냥~ 확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죠. 때려서라도 말이죠.”
그는 경태 아내의 얼굴을 확인했다. 경태 아내는 그의 눈빛을 이해했다.
“아니!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아는 엄마가~”
경태 아내는 사래질을 하며 말했다.
“안되면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죠. 요즘 4대 악에 가정폭력도 들어 있다고 하잖아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신고하세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배달원은 문을 닫고 잠금 상태까지 확인해 준 후에야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갔다. 아무래도 경태 아내의 표정에서 불안한 기색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저런 친절한 사람도 있구나~”
명철이는 9시가 안 되어 잠들어버렸다. 경태 아내는 아이 씻기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 뭐 하루쯤 씻지 않아도 괜찮아.’ 경태 아내는 경태가 오늘도 새벽에나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자려고 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화가 나서다. 어떻게 같은 여자 입장에서 이런 일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 새벽까지 기다려서라도 미주알고주알 전부 말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경태는 뻔할 뻔자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잘 게 뻔했다. 술김에 자신의 몸을 더듬고 덮치려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기분만 좋다면 술 냄새 팍팍 풍기며 허우적거리는 남편의 몸을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절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경태 아내는 커튼을 살짝 밀어 근호네 집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근호네 집은 역시 불이 켜져 있지 않다. 이제 막 시곗바늘은 열두 시가 넘어갔다. 그냥 적막해서 켜 둔 텔레비전에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경태 아내는 사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다.
*
언제 잠이 들었는지 경태 아내는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잠시 눈을 떴지만 아직 남편은 귀가하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다. 해 뜨고 들어오지나 않으면 그나마 용서해 줄만 하다. 딩동~ 분명 남편일 것이다. 이 시간에 버튼을 누를 강심장을 사람은… 그래도 그녀는 문 밖을 살폈다. 경태는 문을 짚은 채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다. 경태 아내는 저런 몸으로 집을 잘 찾아오는 경태가 신기할 따름이다.
“야~ 이 인간아!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경태 아내는 MP3 녹음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매번 하는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뱉어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유명한 희극의 명대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경태는 그 말을 제정신에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 후 골백 번은 들었어도 그의 기억에는 없는 대사다. 그녀는 경태를 부축해 손님방에 눕혀두고 큰 대자로 뻗어버린 남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모자란 인간은 그래도 나를 사랑해 주기는 하지. 그래! 우리 집은 행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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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명철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잠옷으로 온 집안을 쓸고 다닌다. 명철이는 제 아빠가 아주 정상적인 생활패턴대로 역시 고주망태가 되어 늦잠을 잘 것이고, 점심께나 되어서야 간신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손님방에서 기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점심때가 지나서야 아빠가 자신과 놀아 줄 준비가 된다는 것을 수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명철이는 토요일 오전에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한 지 오래다. 아빠가 일어나면 엄마는 목욕탕에 간다. 그럼 명철이는 아빠를 독차지한다. 그것도 엄마의 쉬지 않는 잔소리에서 잠시라도 해방된다는 것을 두 부자는 오랜 경험으로 체득했다. 하지만 엄마가 오늘만큼은 평소와 같지 않음을 눈치챘다. 온 집안을 감싸고도는 이상한 기운과 평소와는 다른 주말의 패턴을 느낀 것이다. 물론, 아빠는 원래의 패턴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명철이의 예상대로 경태는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그리곤, “밥 줘!”라고 말할 것도 역시 명철은 알고 있었다. 명철은 왠지 오늘은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되기가 힘들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직감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아보면 안다. 명철이는 그런 경험에서 나온 직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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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호네 집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이미, 참다못한 경태 아내는 큼 마음을 먹고 근호네 집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그것도 벌써 세 번째다. 근호 엄마의 전화는 아직 없었다. 모바일 메신저 역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걱정은 이미 산이 된 지 오래였다. 경태 아내는 경태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경태의 대답은 간결했다.
“뭐 한다고 남의 집 일에 신경을 써? 그리고, 어차피 잘 된 건지도 모르잖아. 이 참에 아예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
그녀는 오늘따라 경태, 남편이 처음 보는 다른 남자 같았다. 그래도 다정다감하고 정의로운 사람인 줄 알았던 남편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다. 저녁이 되자 경태 아내는 남편이 창가를 기웃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시로 근호네 집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 거인데~’ 경태 아내는 자기 소유인 경태를 다시 인정하려 했다. 그날 밤도 역시 근호네 집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남편이 자기가 사랑했던 그 남자라는 것을 침대 위에서 한번, 차가운 맨바닥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물론 딱딱한 맨바닥보다는 푹신한 침대에서 확인하는 게 더 좋았다. 일요일 점심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돌아왔고, 저녁은 텔레비전 앞에서 두 부자가 배꼽을 잡고 있다. 경태는 이미 모든 근심 걱정을 잊은 듯했다. 근호네 집에는 있어야 할 세 명의 배꼽이 종적을 감췄다. 벌써 삼 일째다. 경태 아내는 걱정의 수위가 한계에 달했다.
“여보,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무 불안해!”
경태 아내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버티다 못한 경태는 동네 지구대로 향했다. 경태 아내는 그저 기도했다. 딱히 믿는 신은 없었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근호네 가족을 보살펴 달라는 기도였다. 두어 시간 만에 경태는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경태 아내는 그런 남편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래? 왜 웃으면서 들어오는 거야?”
경태 아내는 아무래도 남편이 실성한 것 아닌가 하는 농담 같은 생각도 했다.
“당신! 그거~ 당신 그 아줌마들 메신저 내놔봐!”
경태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경태 아내는 놀란 토끼처럼 물었다.
“그거~ 아줌마들끼리 했다는 단체방 대화 좀 보여줘 봐!”
경태 아내는 스마트폰을 열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경태는 메시지들을 훑어보고는 다시 그녀에게 한 구절을 보여 주었다.
“여기, 이거 봐봐!”
경태 아내는 스마트폰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별다른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경태는 손가락으로 기수맘의 메시지를 가리켰다. <근호 아빠는 폭력전과가 있대요> 부분이었다.
“이게 왜?”
경태 아내는 물었다. 경태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줌마! 정신 좀 차려! 이런 게 세상에서 제일 못난 짓이야. 알아?”
“내가 뭘?”
경태 아내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근호 아빠가 폭력 전과가 있는 건 맞아. 그런데 그게 왜?”
경태가 다시 물었다.
“그런 사람은 위험하잖아.”
“맞아. 아무것도, 사연도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내가 지구대 갔다가 우연히 근호 아빠 그 폭력사건에 관해 아는 사람을 만났어. 우리 지구대에 근무하다가 지난번 우리가 신고했을 때 출동했던 사람이고 말이야. 그런데 근호 아빠는 어릴 때, 그러니까 이십 대 초반에 동네 형들이 사고를 쳐서 덤터기를 쓴 적이 있대. 두 번이나. 그것도 같은 선배들에게 말이야.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정신 차리고 잘 사는데 동네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더란다. 결혼을 하고, 착실히 직장 다니면서 잘 살고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 이 동네까지 와서 살았던 거야. 그런데 이놈의 대한민국은 정말 좁아터진 나라인 거지. 여기서 아는 사람을 두 명이나 만났으니까 말이야.”
“아니~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일과 무슨 상관이야? 근호 엄마가 맞고 사는 게~”
경태 아내는 도무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이 답답했다. ‘어휴~ 저 바보 같은 인간. 저런 답답한 남자를 어떻게 믿고 산 거지?’ 경태 아내는 속으로 끙끙댔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말 끊지 마! 그런데 아줌마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매를 맞고 사는 게 왜 근호 엄마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매 맞는 건 근호 엄마가 아니고 근호 아빠였어. 이 화상아!”
경태는 그의 아내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물론, 그녀의 표정은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멍하게 경태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보구만? 그 지구대 그 양반이 근호네 부부에 대해서 잘 알더라고. 고향에서 아주 소문난 잉꼬부부였대. 남자가 매 맞고 사는~ 이사 온 게 사실 그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대요~ 고향에서 말이야. 근호 엄마는 태권도 공인 5단이래. 원래 근호 아빠가 사고만 안 쳤어도 국가대표 나갈 상비군이었는데, 덜컥 애가 생기는 바람에 급하게 결혼하고 운동을 접었대.”
경태의 자세한 설명 후에야 경태 아내는 상황판단이 되기 시작했다.
“알겠지?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한 것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괜한 사람을 가정폭력범으로 만들 뻔했잖아. 아무튼 근호 아빠는 맞고 살지만 여전히 근호 엄마를 사랑한다고 하더라. 뭐 하는 자식인지 정말 마누라한테 매나 맞고 말이지. 한심한 자식~”
경태 아내는 무엇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제야 다 알 것 같았다. 잘 생각해보니 유치원 선생님도 <부모님이 미리 오셔서 근호를 데리고 갔다>고 했지만 자신은 <근호 아빠가 데리고 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아! 정말 정보란 것은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한 거구나. 그나저나 근호 엄마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경태 아내는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전달된 정보 하나 때문에 얼마나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금요일 아침. 근호 엄마가 괜찮다며 도망치듯 사라진 것은 근호 아빠가 오해받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제! 아줌마들 만나서 쓸데없는 루머나 생산하지 말고, 차라리 교양이나 쌓고 살아. 제발!”
경태의 비웃음 섞인 꾸중에 경태 아내는 단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