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명절에 제주도 집에 갔다가 눈폭탄에 항공편이 마비되어 하루 더 머물어야만 했다.
뉴스에선 3만 명 이상 고립됐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숙식 고민할 필요가 없는 난 이왕 이렇게 된 거 눈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생각에 패딩을 걸쳐 입고 산책에 나섰다.
바람이 너무 강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쌓일 여유도 없이 옆으로 날렸다.
돌아올 길이 걱정되긴 했지만 시작할 땐 뒷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풍경 감상하긴 딱 좋았다.
올레길 1번 코스인 두산봉 근처다.
아직 일러 수확하지 못한 무밭에 눈이 쌓였다.
설경이야 멋지지만 농사짓는 분들의 마음은 깨나 불편했을 날씨다.
그 풍경이 그 풍경 같지만 나름의 다름이 있다.
제주밭담에 옆으로 날린 눈이 들러붙어 운치를 더했다.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내친김에 두산봉으로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바람이 강해 포기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오조리 쪽 풍경이 궁금해져 오기 시작했다.
호기심의 싹은 이내 숲이 되어 이번엔 제대로 채비를 하고 나섰다.
등산화까지 장착한 거다.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보니 강품이 밀어낸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도 잠시 드러났다.
야자수와 강풍 그리고 눈과 제주 돌담이 상당히 이색적이다.
그렇게 자주 보는 풍경인데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도 신기하다.
종달리 해변길을 걸으며 성산 일출봉 쪽으로 향했다.
완전 등바람이라 패딩 모자까지 푹 뒤집어쓰고 걷는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길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지나다니는 차량들은 얼어붙은 바닥에 놀라 살살 기어갔다.
새로운 풍경 같다.
이 길은 수십 번을 다녔음에도 이런 풍경인 거다.
지금까지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종주만 세 번을 했다.
자전거길 표지판에 눈이 붙어 재밌어 보여 사진을 남겼다.
가끔 구름 사이로 빛이 스미면 오색 찬란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바람이 강해 손이 시리지만 사진을 남겨야만 했다.
성산일출봉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자꾸만 발걸음을 세우게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해변가 카페에는 기상 악화로 발이 묶인 관광객들이 창가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싶다.
그 강한 눈보라를 뒤집어쓴 채 바닷가를 걷는 나 역시 풍경의 일부 아니었을까?
오조리로 들어서니 눈에 덮인 문주란이 한 풍경했다.
강풍에 떨어진 열매를 쪼아 먹는 새가 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던가보다.
오조리에서 본 성산일출봉이다.
갯바위에 들러붙은 눈이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올레길 2코스에 있는 식산봉이다.
역시 사람 한 명 볼 수 없다.
홀로 길을 걸으니 으스스한 느낌도 없지 않다.
식산봉을 내려와 오조리 마을로 향하는 구간이다.
액자에 담을 만한 풍경이다.
오조리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다.
바다가 아닌 고인 물인데 파도가 칠 정도니 바람이 얼마나 강한가 싶다.
이제부터 맞바람을 맞으며 돌아가야 하는데 얼굴로 맞는 눈싸라기가 매섭다.
게처럼 옆으로 걷고 갈지자로 걸으며 눈바람을 피해 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니 걸어 다니는 동안 눈이 깨나 많이 쌓여 버렸다.
다음날 공항 갈 일이 걱정이었다. ㅎ
평소엔 소통량이 꽤 있는 길인데 차가 거의 다니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는데 제설 작업이 제대로 될까 싶었던 거다.
실제 걸은 거리는 3km 좀 더 넘긴 하지만 거기서 거기니까.
집으로 돌아와 명절 음식을 꺼내 고추장 비벼 소주 안주를 만들어 크어억~~~
그리곤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다음엔 눈 많이 왔을 때 한라산 둘레길이라도 좀 걸어봐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