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윤정과 연쇄살인

by 루파고

"이렇게 예쁜 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민경이 말했다.

"외모보다 흔히 말로만 듣던 뇌섹녀시죠. 물론 우리 민경 씨는 말할 것도 없지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오늘 두 뇌섹녀를 한 자리에 모시는 영광을 잡은 것 같습니다."

두 여자의 묘한 신경전을 눈치채고 있었던 호현은 의식적으로 크게 웃었다. 민경은 주변 눈동자들을 살폈다. 호현의 웃음소리가 아니라도 이미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화를 소재를 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야 이미 방송으로 충분히 알려졌으니 그렇다 쳐도, 여신급 윤정의 외모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바쁘신 분들이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낼 겁니까?"

호현이 분위기를 조정하려 들었다.

"제가 민경 씨보다 몇 살 많다고 들었는데, 맞죠?"

윤정이 손을 내밀었다.

"네~ 그렇긴 한데요. 어... 언니 시네요. 하하하~"

윤정의 의도를 파악한 민정 역시 손을 내밀어 가볍게 악수했다. 민경의 피부는 여지없이 보드랍고 촉촉했다. 전방위적으로 윤정을 누를 수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춘자를 도울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아서 벌써부터 긴장되네요."

윤정이 활짝 웃었다.

"무슨 말씀을요. 초면부터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기만 하네요. 언니! 우리 잘 지내요."

민경은 호현과 민정의 나이를 비교하며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다는 걸 우세하다 판단한 게 한심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젊은 나이에 그런 대단한 커리어를 갖추신 거죠? 정말 대단하세요."

"글쎄요, 그냥 열심히 했어요. 제가 딱히 누구보다 나은 게 없어서 공부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진 자의 오만인가?' 민경은 속이 부글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를 알아챈 호현이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좋지 않은 감정만 갖고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윤정 씨는 연쇄살인 트라우마를 겪고 계세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말이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패닉 상태로 사셨어요."

"제가 설명할게요."

윤정이 호현의 설명을 끊고 설명했다.

"혼자 계시던 엄마도 쇼크로 갑자기 돌아가신 데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보니 유산이라고는 몇백만 원 정도 되는 통장이 전부였어요. 사망보험금은 밀려있던 채무를 정리하기에도 빠듯했죠. 당시 먹고살려면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처음엔 우발적 살인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나중에 비슷한 사건이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지금까지 그 살인마는 잡히지 않았어요. 지금 이렇게 다닐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시간이 흘러서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요즘도 가끔 공황상태가 오기도 해요. 의사들은 상황에 따라 평생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독지가 한 분이 연락해 오셨어요. 한국에 머물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이겨낼 수 없을 테니 미국으로 건너가 있으라고 말이죠."

민경은 앞뒤 없는 설명에 연쇄살인과 윤정의 패닉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학이니 독지가니 하는 소설 같은 소리를 하는 윤정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 독지가라는 분이요. 혹시 누군지..."

민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뇨. 누군지도 몰라요. 처음 연락이 온 것도 서면으로 받은 거라 얼굴도 이름도 연락처도 몰라요. 사실 저에게 그런 혜택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았죠. 하지만 며칠 후에 통장에 큰돈이 입금됐고 항공편 티켓을 등기로 받아본 후에야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개인 신상정보를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글쎄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못 했었네요. 하지만 당시 제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심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마냥 고맙기만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분 말씀처럼 미국으로 가면 살인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긴......"

민경과 호현 둘 다 머리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자격지심인 거니까, 이해해 주셔요."

윤정의 얘기가 깊어지면서 경계가 풀린 민경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제가 보기에 민경 씨는 호현 씨를 맘에 두고 계신 것 같네요."

"아녜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세요. 절대 아녜요."

민경이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급히 당황에서 그랬지만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차라리 이쯤에서 호현을 맘에 두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저도 알아요. 우리야 뭐, 업무적으로 얽힌 관계라서요. 윤정 씨도 괜한 오해는 마세요."

호현은 약간 불편한 기색이 묻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민경은 차라리 호현이 한 발 다가와 주었으면 했다.

"그럼 제가 호현 씨 좋아해도 되는 건가요?"

윤정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한여름 땡볕에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흐물거릴 것 같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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