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Apr 24. 2023

45. 벚꽃 지니 유채꽃, 부산에서 밀양 왕복라이딩

가급적 안 가본 곳으로 라이딩을 가는 걸로 마음을 굳힌 후 지도를 살피며 온라인 코스 개척에 나섰다.

토요일엔 초미세먼지가 너무 강하고 바람도 세게 불어 포기하고 일요일 눈치작전에 나섰다.

새벽 5시쯤 일어나 빨갛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괜찮은 날씨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외로 기온이 낮아 느지막이 출발할 생각으로 잠시 눈을 붙였는데 역시 평소 일어나는 시간을 넘기진 못했다.

그 어렵다는 기상령을 넘고 후다닥 옷을 챙겨 입었으니 두 번째 고비인 환복령도 넘었다.

바퀴에 공기압도 체크하고 물통에 생수도 꾹꾹 눌러 담고 자전거를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마지막 남은 현관령이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

8시에 나왔는데 아직도 쌀쌀하다.

완벽한 여름 복장으로 나왔는데 실수한 기분이...

하지만 열심히 달리면 체온이 높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요일 오전 시내 도로엔 차가 별로 없어 부담 없이 달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으니 고속도로 방향으로 향하는 차량이 의외로 많아 조심스러웠다.

역시 부산의 공도는 위험천만이다.





밀양까지 가는 길엔 사진 한 장 촬영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맞바람이니 낙동강을 여러 번 달려본 경험상 라이딩 종료까지 맞바람 라이딩이 될 게 뻔했다.

체력을 안배하며 달릴 계획이었는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 추월하는 재미에 또 미친 듯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 심한 맞바람에 40km/h를 넘나들며 달렸으니 단 한 명도 나를 추월하는 라이더는 없었다.

(덕분에 월요일 아침부터 노곤함이...)



낙동강에서 밀양천을 따라 1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 밀양시를 만날 수 있다.

역시 언제나처럼 강력한 맞바람이 나를 반긴다.

버스로 왔을 법한 사십여 명 정도 되는 라이더가 줄지어 달리는데 그들 뒤에서 바람을 피할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몽땅 제치고 앞서 갔다.

제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여기까지 약 70km 정도 되는데 처음으로 자전거를 멈췄다.

처음 쉬는 거다.

여차 하면 한 번에 100km도 쉬지 않고 달리는 편이라 이 정도는 일도 아니어야 정상인데 맞바람을 맞고도 그리 미친 듯이 달렸으니 제정신이 아닌 거다.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았다.

경치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제치고 왔던 라이더들이 몰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밀양 시내를 어떻게 돌아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어 멀찍이 떨어져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들은 몇 킬로미터 못 가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려는지 모두 멈추어 섰고 난 에러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도로인 듯한 길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전거도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난 교량 하나를 건너 아무 데나 가볼 생각으로 자전거도로를 살폈고 하천을 따라 난 길을 발견했다.



강 건너에 암각화가 있다는 관광지가 보였고 난 여기서 맛집백과사전 설 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밀양맛집정보를 받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11km나 떨어져 있었지만 기껏 밀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아무거나 먹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싶어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나팔꽃이다. 강변으로 난 야생화도 예쁘다.

점점 여성호르몬이 많아지는 것인지 꽃이 예뻐지고 잡초 같은 들풀에도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건너편에는 덩치가 엄청 큰 검은 고양이 녀석이 어슬렁거리더니 내가 다가서자 수풀 사이로 숨어들었다.

사람 손을 안 탄 모양이다.



암각화 관광지가 있는 영남루 아래에서 이렇게 보는 걸로 만족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내 목표는 밀양돼지국밥이었으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곳이다 싶었더니 약 10년 전 밀양에 출장 왔다가 지나갔던 곳이다.

밀양관아지다.

저 위쪽에도 다녀왔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밀양아리랑시장인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다.



이건 정말 철거해 버리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구의 묘한 조화를 가진 건축이었다.

세월을 두고 나름의 개보수를 해온 건물인데 사진으로라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해천항일운동테마지라고 한다.

미처 사진은 촬영하진 못했는데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항일운동 관련 역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의열기념관도 있다.

난 여기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혼자 가면 뭐가 그리 급한지 멈추지 못한다.



밀양 상권이 말이 아니었다.

지역 상권이 도로 하나로 인해 이렇게 망가지는 걸 보니 안타깝기만 했다.

시장 인근인데...



다리 근육은 힘이 빠져 가는데 또 업힐이다.

길진 않지만 이것도 피곤한 상황이었다.

새로 뚫린 듯한 포장도로는 장판처럼 미끄러워 맞바람이라도 달리기 편했다.

차량 소통량이 많지 않아 다행이긴 했는데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다.



그렇게 달려 드디어 무안면에 도착!

사명대사 유적지라는 표충비각이 있다.

땀 흘리는 비석이라나...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동부돼지국밥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이면도로 안에 있으니 지도를 잘 보고 가야 한다.



식당 후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길... 

이건 어제 돌아오자마자 쓴 건데... 

아마 오늘도 다음 메인에 올라가겠지 싶다.

https://brunch.co.kr/@northalps/2178



식당 앞에 이런 건물이 폐허로 있다.

시골에 빈집이 많다더니 정말 그랬다.

안타까운 현장들을 너무 자주, 너무 흔하게 마주치게 되니 씁쓸한 느낌이었다.

인구절벽이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는 아주머니 한 분을 제치고 낙동강을 향했다.



하마터면 여기서 길을 잘못 들 뻔했는데 바로 요 지점이다.

http://kko.to/XVWS3L3_gB

낙동강자전거길은 이 지점에선 공도를 타고 조금 돌아가야 한다.



밥을 먹고 출발했음에도 다리에 힘이 없다.

이놈의 맞바람...

왜 난 맞바람만 쫓아다니는 걸까?

겨우 10km 정도 달리고 멈춰 섰다.



더러운 몸, 더러운 옷.

선크림이 녹아 흘러내린 게 옷에 흥건하다.



유채꽃이 만발해서 겸사겸사 쉬어간다.

그래 봐야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고 사진 몇 컷 찍고 바로 출발이다.



한참을 달리는데 또 우영우 팽나무 옆을 지났다.

이건 아침 7시에 글을 써서 올렸다.

https://brunch.co.kr/@northalps/2180



양산 황산공원을 지나 화명생태공원 쪽으로 가는 길에 MTB라이더 한 분을 봤다.

페달링 내공이 상당해 보였다.

마침 맞바람이 조금 줄어든 구간이 나와 가볍게 제치고 달렸는데 그새 내 뒤에 바짝 붙어 피를 빨고 계셨다. ㅋㅋ

알고도 속아준다는 셈으로 달리는데 이젠 허벅지에 경련도 나서 댄싱도 잘 안 된다.

일어나도 페달 열 번 밟고 도로 주저앉아야 하는 상황.

그런데 그분은 내가 사상에서 빠질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또 허벅지 터지게 타고 말았다.

또 20여 킬로미터를 못 쉬고 달린 셈이다. ㅠㅠ

아이고 내 허벅지야!

황산공원 매점에서 콜라라도 안 마시고 왔다면 못 달렸을 것 같다.

역시 라이더에겐 콜라지!



집에 와서 보니 166km 정도 달렸다고 나온다.

시내 구간을 달리다 가민을 꺼버리고 말았으니 좀 더 타긴 했을 거다.

아무튼 맞바람에 무식하게 타고 돌아왔다.

베란다에 있는 자전거는 실내용이 된 지 오래지만 타본 기억은 몇 달 전인가? ㅋ

이젠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다.

최애 하는 맥주, 레페 블론드를 마시며 허벅지 조립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4. 경남 고성 한국의 아름다운 길 라이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