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May 05. 2023

노인을 위한 공간은 없다

어린이날 생각, 부산어린이대공원에는 어린이가 없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안타깝게도 전국에 강풍, 강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어린이날을 기대했을 어린이와 어린이날 대목을 노렸던 상인들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다.


부산에는 부산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부산어린이대공원이 있다.

부산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부산어린이대공원의 어린이날은 엄청난 인파로 붐비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부산어린이대공원엔 어린이의 비중이 1퍼센트도 되지 않을 거다.

그나마 주말이면 5퍼센트 정도 될까 싶다.

타지인인 나는 부산에 내려와서 노인만 가득한 부산어린이대공원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됐을 수가 있나 싶었다.

60대 정도의 노인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부산어린이대공원이 그로서의 역할을 했던 이삼십 년 전엔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들이 키워낸, 부모가 된 아이들은 더 이상 그들의 아이들을 부산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은 이제 공원 이상의 역할 외엔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린이의 꿈과 희망이었던 부산어린이대공원은 사실상 노인정이 되었다고 봐도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울 지경인 거다.

타지인의 시선엔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



최근 부산어린이대공원의 추억을 담고 살아가는 부산사람에게서 다른 생각을 하는 계기를 만드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친구는 홀로 되신 후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아버지가 지인의 제안을 듣고 부산어린이대공원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날부터 거의 매일 부산어린이대공원에 다녀오신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또래의 노인들도 많아 모르는 사람에게도 편하게 말을 걸고 옛 추억 얘기도 나누며 하루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

나도 세월이 지나면 노인이 될 것이고 현재의 어린아이들도 때가 되면 노인이 될 거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노인들의 삶에 의미를 두게 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누리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실제 노인들을 위한 정책이 있는지 모르겠다.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

집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노인도 있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인도 있고, 자녀에게 불편을 주기 싫어 혼자 사는 노인도 있다.

원했든 원치 않든 독거노인이 된 노인들이 은근히 많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짝을 잃고 홀로 된 노인들은 원치 않았음에도 독거노인이 된다.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정신질환을 앓기도 하고 심지어는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라 하던 말이 맞다면 세상에 외로움보다 힘든 건 없을 거다.



난 부산어린이대공원이라는 타이틀이 현재의 모습과 다르다 하여 안타까워하거나 어린이를 위한 정책이 미진하고 부재하다고 핀잔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 부산어린이대공원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 싶다.

전국에서 노령화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부산, 게다가 부산 안에서도 노령화가 심한 부산진구 일대에 이런 엄청난 부지를 활용한 노인들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게 미래지향적인 정책이 아닐까 한다.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날을 보냈고, 학교 소풍을 다녔으며, 주말이면 조부모와 부모의 손을 잡고 소풍을 다녔던 현재 어린 자녀를 둔 부모조차 찾지 않는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난 그 공간을 새로운 문화공간 같은 것으로 바꿔볼 기획을 해 왔었지만 이제는 노인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는 부산어린이대공원을 기대해 보련다.


'YOUNG'이나 'RETRO' 같은 단어를 적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 좋지 않겠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이웃 '파란카피'님 글과 내 글이 동시에 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