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May 17. 2023

141. 부산 동네 할매표 치킨집에서 매워 죽을 뻔했다

월요일부터 술이 생각난다는 건 주정뱅이?

퇴근하다 말고 한잔 생각에 찾아간 초읍동 꼬꼬아찌.

근처 맛집들을 다니며 몇 번이나 봤던 곳인데 부산 경남 지역에서 꼬꼬아찌는 깨나 유명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라고 했다.

그런데 간판을 봐도 그렇고 영 맘이 동하지 않는 곳이었는데 실패하면 책임지겠다는 맛집백과사전 설 모씨의 제안에 꼬꼬아찌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미 주문까지 해 놓은 상황.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어딜 보나 노포식당인 건 맞는 것 같다.



내가 이곳을 꺼려했던 이유는 오른쪽 입간판 때문이었다.

치킨집인데 순대는 무엇이며 냉커피는 뭐란 말인가?

생닭이야 팔 수도 있지만 순대라니...

초읍동이라는 지역이 동네가 동네인지라 노인들이 많이 다녀서 생긴 메뉴인가 싶었다.

꼬꼬아찌는 70세 넘은 할머니가 홀로 운영하고 계셨는데 주방도 그렇고 건물 외관과 달리 깔끔했다.

간판에 걸린 메뉴에 대한 사연을 들어보니 원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시작했다가 영 아니라는 판단에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걸로 마음이 놓은 건 뭔지...

우리는 평상에 자리를 잡았고 골목을 오가는 동네 사람들을 풍경 삼기로 했다.



주문과 동시에 생닭을 꺼내 손질을 시작하고 꼬지를 끼워 오븐에 넣는다.

할머니 왈, 미리 구워두거나 하면 닭이 맛이 없어서 좀 기다리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맛있다는 거다.

나름의 요리 철학이 있으신 할머니의 손놀림을 보노라니 내공이 장난 아니다.

막걸리를 먹겠다 했더니 길 건너 정육점으로 향하시는 할머니는 막걸리 세 병을 들고 길을 건너오신다.

정육점은 친언니 가게라고 한다.



할머니는 세 살 된 강아지와 열 살 넘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흔하디 흔한 고양이 이름인 나비.

수컷인데 세 살 때 가출했다가 육 년 만에 경찰한테 잡혀 중성화 수술 후 할머니에게 돌아왔다고 하는데 애교가 철철 넘쳐흐른다.

어떻게 보면 젊은 시절 미지의 세상을 향해 떠났다가 늙어 마음이 편한 고향으로 돌아온 모험가 같지 않나?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고양이 나이로는 할아버지인데 그런 애교는 좀 그렇지 않나? ㅋㅋ



주문한 음식이 나오려면 오래 걸린다며 이것저것 갖다 주시는 할머니.

비닐봉지 안에서 꺼낸 팝콘은 습기를 먹어 좀 그렇지만 오이는 방금 잘라 수분이 가득하다.

옥수수 콘도 주셨지만 딱히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라 거의 손도 안 댔다.

매운 양념이 된 마른 어포와 오이를 막걸리 안주 삼아 수다를 안주 삼아 술자리는 시작됐다.



할머니는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음에도 분주하다.

연신 뭔가를 자꾸 갖다 주시는데 입도 짧은 우리가 다 먹을 수 없는 양이다.

겨우 두 사람인데 양은 아들손주 주듯 손이 크다.

고추장을 보니 직접 만드신 것 같아 물었더니 고향이 청송이시라며 달기약수 자랑이 이어졌다.

청송에서 어쩌다 부산 남자를 만나 영도, 부산항을 거쳐 43년 전 초읍으로 이사와 정착했다고 한다.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초읍동엔 인가도 몇 채 없었고 죄다 초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부산어린이대공원이 생기며 초읍동이 변화하는 걸 모두 지켜보며 살았을 할머니의 기억을 꺼내보고 싶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매운 숯불치킨이 나왔다.

메뉴명 맞나 모르겠다.

아무튼 떡도 한가득인데 이걸 다 먹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돈은 다 받더라도 반만 주시라고 할 것을 그랬다.

마침 길 건너편 배돈 사장님이 지나간다.

댁이 근처인 거다.

인사를 나누고 결국 2차를 배돈으로 가게 됐고... ㅋㅋ



치킨과 떡을 들고 사진도 찍고 맛도 보는데 영 매운 것 같지 않다고 했더니...

주방으로 사라진 할머니...



청양고추를 몇 개나 썰어 올려주셨는지 모른다.

대수롭지 않게 청양고추와 치킨을 베어 물었는데 죽음에 이르는 매운맛을 보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매운 치킨양념에 파우더를 쓰신다 했는데 아마도 캅사이신인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청양고추가 훨씬 맵다.

아무튼 너무 매워서 연거푸 막걸리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먹고 남은 건 포장을 부탁했고...



할배 고양이 나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포장해 주신 치킨을 들고 길 건너 배돈으로 향했다.

원래 예정엔 2차 계획이 없었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40. 제주시 한림항 한림칼국수 보말칼국수 보말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