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일까?
대체로 세다고 보이는 사람일수록 심성이 유하다.
강한 척하지만 알면 알수록 여린 심정이 드러난다.
무협소설에서 흔히 쓰는 내유외강, 내유외강 같은 표현이 적합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잘게 자른 조각들을 하나씩 던지곤 한다.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곁을 지킨 사람은 그 자잘한 조각들을 모을 수 있다.
수만 피스 퍼즐보다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라 완벽한 조각모음이 될 순 없겠지만 오래될수록 퍼즐의 맞춤은 완성도가 높다.
군데군데 구멍 난 곳도 있을 것이고 절대 채울 수 없는 공간도 있을 거다.
그게 사람이니까 말이다.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흔히 '솔직'이라는 단어로 위장된 위선들은 조각모음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할지라도 나를 까발려 보여줄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래도 그나마 많이 공유되었을 때 우린 '친하다'는 표현을 한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강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나 스스로 상처받지 않고 싶어서다.
스스로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믿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런 과정이 이어지는 건 그런 고민이 켜켜이 쌓여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자기도 모르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사람들 중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대개 마음이 여린 편이다.
그들은 자신의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어기제를 펼치곤 한다.
쉽게 표현해서 '강한 척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여린 그들은 쉽게 감동하고 쉽고 믿고 쉽게 인정한다.
더불어 고집이 세다.
그것 역시 방어기제가 작용한 덕이다.
당장은 부딪치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금세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솔직함보다 앞선 뭔가 작용할 땐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우격다짐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이해할 때, 우린 그를 친구라 말한다.
한국 사회에선 나이 한두 살만 많아도 형동생, 선후배 등 위계질서를 따지곤 하지만 그런 질서를 지우고 나면 결국 '친구'만 남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