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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Nov 28. 2023

손맛 좋은 친구가 반찬가게를 열었다

어느 날 전라도 김치가 당겼다.

그리고 친구 생각이 났다.

녀석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본능 같은 전라도 특유의 손맛을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김치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의 뇌는 그 김치를 기억하고 있었던가 보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내가 갑자기 김치 타령하는 게 어색해서 녀석과 가까운 친구에게 김치 부탁을 했는데 웬걸, 반찬가게를 연다는 말에 김치를 얻어먹겠다는 생각을 접고 말았다.

나는 초심의 김치를 기대하며 가게를 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기를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반찬가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과 함께 가게를 향했다.

하지만 쇼케이스에 나열된 반찬을 기대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달랑 주방만 운영하는 녀석의 영업장을 만났다.

알고 보니 주문제작(?)형 반찬공장인 셈이었다.

게다가 오픈 열흘인데 주문이 밀려 허덕이고 있었다.

당장 김치 30kg 주문에 힘겨워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얻어먹겠다며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아준 게 고맙기만 했다.

우린 녀석을 '숙자'라는 별명 아닌 애칭으로 부르며 지냈는데 '숙자네 반찬가게'는 충청도에 있긴 하더라는...



김장김치 30kg을 주문받았다며 작업에 한창인 친구의 김치를 들여다보았다.

이거 완전 보쌈 감인데 몇 포기 얻어가야 하나 사가야 하나 싶었는데 주문량을 채우지 못했다 하여 구경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외국인들이냐 모르겠지만 김치의 향긋함이 침샘을 자극했다.

머릿속에서 돼지 수육이 오가고 있는데 "수육 줄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헛 걸 들은 걸까 싶었는데 친구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럼 막걸리가 필요한데...

영업장에서 술을 마시기도 그렇고 다음날 오전 약속도 있고 해서 고민스러웠다.

잠시 후 친구 한 명이 합류했고 김치에 보쌈이 차려지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갓 담은 김장김치와 두툼한 보쌈에 막걸리 한 잔.

난 막걸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고욕이었지만 다음 주를 기약하고 난 끝까지 버텼다.



처음엔 괜찮다며 사양하던 난 누구보다 배가 부르도록 열심히 먹었다.

전라도식 맛난 김치에 수육이 빠졌다면 엄청 아쉬웠을 것 같았는데 어쩜 수육까지 미리 준비해 뒀던지 고맙기 그지없었다.

아무튼 다음 출격 땐 막걸리가 동반이다.

반찬가게 숙자는 친구들 동네 참새방앗간 될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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