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Dec 16. 2023

핵잠수함, 부상하다!

십수 년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어쩌면 친형제보다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산 게 십 년이 넘었다.

대차게 뒤통수를 맞고 사업을 접고 그 충격에 가깝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었던 거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여기저기 내 사정을 떠벌리고 다닐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지라 대부분 혼자 끙끙 앓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멀쩡히 잘 지내던 집단에서 두문불출하게 된 걸 아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얼마 전 한 기수 후배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고(내 번호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가 있으니 꼭 나오라고 했다.

그 후로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고 이번엔 나와서 형들 후배들 봐야 하지 않겠냐 했다.

형들이 살아 봐야 얼마나 더 살겠냐는 말에 나는 참석하겠노라며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오늘 오랜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나름 대형 행사라 컨벤션 홀까지 빌렸는데 입구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를 먼저 알아본 십 년 선배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어색하지 않았다.

그저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었다고 할까?

얼굴도 모르는 십 년 공백 사이의 후배들이 가득했다.

여러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던 후배들도 나왔는데 나름 인생의 고달픔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렇게 보게 되니 너무 좋다며 지나간 이야기를 이었다.

그간 암투병을 했던 후배도, 사고로 곁을 떠난 선배도 있었다.

나처럼 사업을 접은 선배도 있었고, 지겨워서 사업체를 매각한 선배도 있었다.

이혼 후 혼자 두 아이를 잘 키워낸 후배도 있었고, 나 같은 놈도 있었다.

생물학적 시간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노쇠함의 결에 올라탄 선배의 왜소해진 어깨를 봤다.

이미 학생 때부터 노안이었던 선배 몇 명은 십수 년 전의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얘기를 나누기엔 주어진 네 시간은 너무 짧았다.

동기가 있는 기수들이 마냥 부러웠다.

형제 없이 자란 아이들의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튼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년엔 후배를 기리는 원정등반을 꾸리고 있다며 당사자인 내가 함께 가줬으면 하는 선배가 있었다.

내가 죽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였던 사고였기에...

산...

공백이 몇 년이던가.

솔직히 자신이 없음에도 왜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고 있는 걸까?

난 이미 산을 버린 놈이었는데 말이다...




친구란...

십 년 후에 갑자기 만나도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반갑다고 했다.

친구를 동년배로 한정하는 우리네 문화적 편견을 벗어던지고 보면

오늘 함께 한 그들이 내 친구 아닌가 싶다.

선후배 중엔 성공한 사람도 있고, 아직 성공 중인 사람도 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다들 자기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난 내 짐의 무게가 버거워 한동안 숨어 지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개월 만에 13kg 감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