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사랑은 스트레스를 누른다
구하라 사망 기사를 접하고......
은근히 쌓이던 스트레스는 언젠가 예고 없이 폭발한다.
그것도 갑자기 터진다.
꾹꾹 눌러대던 장치가 통제를 잃고 순간적으로 해제되는 것이다.
문제는 터진 것을 터진 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그것이 만들어낸 부산물을 주워 모아야 한다.
썩은 것은 치우고 그 자리를 잘 닦아내야 한다.
쓸만한 것은 잘 챙겨야 한다.
그래야 재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때론 치우지 말아야 하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그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TV 자체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 연예계에는 1도 관심이 없고 연예뉴스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 이름도 잘 모르는 편인데 어찌 된 일인지 구하라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
어제 인터넷 기사 1면에 그녀의 사망 소식이 올라왔다.
얼마 전 설리라는 이름을 알게 됐는데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후였다.
기사 내용을 보니 구하라는 설리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나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기에 여지없이 울컥하고 말았다.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오전 일찍 강원도 출장이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가 넘은 이 시간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 간의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기사와 추모하는 댓글들을 보니 설리의 자살과 구하라의 사망에는 연관성이 있는 듯 보였다.
약 3년 전에 쓴 차도살인이라는 소설 속에서 나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았었다.
촌철살인의 복수로 차도살인을 실현하는 내용이다.
당시 글을 쓰면서 캐릭터에 몰입하며 촌철살인의 피해자의 입장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터라 일련의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듯하다.
구하라의 사망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는 통제 수위를 벗어났을 것 같다.
차도살인을 쓰며 중독증과 의존증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었다.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힘들 때면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누구나 한두 번 이상 경험했겠지만 시끌벅적한 파티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인간이란 단어 뜻 그대로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외로울 때에는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줄 한 사람, 한 마디면 충분하다.
설리의 자살 후 구하라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구하라의 사망은 설리의 스트레스가 폭발했을 때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 그녀를 이해하고 챙겨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충분히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차가워진 마음을 꼭 안아줄 누군가 필요했을 것 같다.
대개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아픔을 공유하는데 익숙지 않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쉽게 마음을 열고 간, 쓸개 다 내어주어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손길은 꼭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좀 더 세심한 관심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인 거다.
의존했던 무언가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공허함을 다시 채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죽도록 힘들 때,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준 친구가 있다.
정작 힘든 건 난데 말도 못하고 버티던 나를 보다 못해 울어버린 친구도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내 생명이 숨 쉬고 있는 이유는 그런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 그녀들의 주변인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났으니까 사고다.
힘들 때 의존할 곳이 없으면 의존할 곳을 찾아 헤매게 된다.
마침 목표를 이루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지금 당장 주변을 돌아보라!
관심과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 공허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저 손등 위에 손만 포개어 올려주어도 차가웠던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