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 9화-용의 눈물

by 루파고

남자아이는 머리카락을 귀에 걸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는 삽화를 머릿속에 그리며 영상을 생산할 준비를 마쳤다.



*



두 와이번은 크립티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와이번은 용 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둘이 힘을 합친다 해도 응룡 하나를 이길 수 없다.

크립티드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인간 세상의 픽트족, 웨일스인, 콘월인, 브루타뉴인, 게일인들의 역사 속에 간신히 숨어 살던 녀석이다.

전세가 불리해진 와이번은 양쪽에서 협공을 시도했다.

빠르고 날렵한 크립티드는 번번이 공격을 피했다.

와이번들은 하늘 위에서도 땅 위에서도 크립티드 하나를 어쩌지 못했다.

체력이 떨어진 와이번들은 위기를 느끼고 도망쳤다.

크립티드는 금세 그들을 따라왔다.

뒤처졌던 와이번은 크립티드가 휘두르는 꼬리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크립티드 꼬리에 난 몇 개의 뿔에는 스치기만 해도 죽음 앞에 이르게 하는 맹독이 흐르고 있었다.

인간 같은 생명체들은 냄새만 맡아도 살이 녹아내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독이다.

다른 와이번 역시 크립티드의 연속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추락했다.

최후의 공격을 가하기 위해 맹렬하게 쏘아 내려오던 크립티드는 파파의 공격을 받았다.

크립티드는 파파와 함께 스노우도니아 호수로 떨어졌다.

문제는 물 밖에서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놈이다.

크립티드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파파 역시 그 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그가 죽었을 거라는 와이번의 말을 믿지 못했다.)


......


나는 심장을 찔려 죽어가는 와이번과 함께 작전을 구상했다.

날이 밝으면 용 사냥꾼들이 몰려올 것이었다.

와이번이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많은 인간들을 몰고 올 게 뻔했다.

자칫하면 두 와이번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와이번을 구출해야만 했다.

예상했던 대로 동이 트자 인간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예측과 달리 인간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심장을 찔린 와이번과 전투 능력이 부족한 내가 많은 인간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이 상태로라면 용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투가 시작될 때쯤 되자 정신을 잃었던 와이번이 눈을 떴다.

녀석은 인간들을 보자 갑자기 불을 뿜어냈다.

앞쪽에 나섰던 용 사냥꾼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대개의 인간들은 재빨리 도망쳤다.

철로 몸을 감싼 무지렁이들은 생명의 존엄을 모르는 파리처럼 달려들었다.

심장을 다친 와이번은 무지렁이들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성한 와이번도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버거워 보였다.

죽어가던 와이번이 달아나라며 재촉했다.

아니, 부탁했다.

한참을 싸웠지만 인간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인간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심장을 다친 와이번은 불조차 뿜어내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는 파란 연기만 뿜어져 나왔다.

녀석이 인간 쪽으로 어렵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큰 날개를 활짝 폈다.

그 위세에 놀란 인간들이 잠시 주춤했지만 곧 창과 화살들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대부분 비늘에 튕겨 나갔지만 몇 개는 비늘 사이를 뚫고 관통했다.

왼쪽 눈에도 긴 창 하나가 박혔다.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온 천지를 흔들었다.

자신감이 생긴 인간들이 함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그는 다시 재촉했다. 형제로서 남아 달라며...

우리는 하늘로 떠올라 불을 뿜었다.

있는 힘껏 불을 뿜었다.

수백 명 정도 되는 인간들이 파란 불길 속에 비명을 질러댔다.

많은 인간들이 재로 변했다.

나를 등에 태운 와이번은 자신의 형제를 향해 불을 뿜었다.

녀석은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한쪽 눈엔 핏물을, 한쪽 눈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을 향해 다시 한 차례 불을 내뿜은 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그의 눈에서 굵은 비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저 아래 살아남은 인간들 중에는 용의 눈물을 맞은 자가 있었을 것이다.



*



남자아이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여자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네. 개미 너 지금 우는 거야?"


남자아이가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울긴, 그냥, 그냥..."


"그냥 뭐? 넌 대체 사람이 불쌍해서 우는 거니, 아니면 죽은 와이번이 불쌍해서 우는 거니? 그것도 아니면 여기 나오는 파파가 불쌍해서 우는 거니?"


남자아이의 질문에 여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눈을 째려보았다.


"너도 여기 나오는 파파처럼 확 죽는 수가 있어."


"어떻게? 개미한테 밟혀 죽으라고? 내가 그깟 개미한테 죽을 순 없지."


남자아이가 방을 뛰쳐나가자 여자아이가 한달음에 달려 나와 뒷덜미를 잡았다.

두 아이는 달려가던 힘에 미끄러졌다.

두 아이는 언제 다퉜냐는 듯이 그 상태로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저게 정말 소설이니 다행이지, 실제로 저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여자아이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보고 싶어. 얼마 안 걸린다더니 벌써 오 년이 넘었잖아. 책을 절반이나 읽었는데 말이야."


아이들의 눈에 멀리 독수리 같은 새가 그들 위로 선회하는 것이 보였다.

아주 높이 높이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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