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냉삼이 은근히 유행한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일산에 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냉삼 맛집 간판을 목격하고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일까?
기억에 녹아 있던 냉삼은 식당에 차려진 것과 현격하게 달랐다.
그런데 갑자기 추억 여행에 빠져들고 말았다.
냉삼이란 녀석은 묵은 기억을 하나둘 소환하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거실 바닥에 신문지 넓게 깔아 두고 휴대용 버너에 넓은 프라이팬을 올려 냉삼겹살을 구워 먹던 기억이다.
온 집안이 비린 돼지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이웃집에 돼지 굽는 냄새가 퍼져나가는 걸 누구는 불편해 했고 누구는 되려 즐거워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프라이팬의 자리를 전기그릴이 대체했다.
삼겹살 기름을 받아내는 그릇을 엎어 바닥을 돼지기름으로 코팅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당시 쌈채소라 해봐야 기껏 상추와 깻잎 정도였고 청양고추나 풋고추를 직접 담근 된장 혹은 쌈장을 담뿍 찍어서 먹었다.
요즘과는 달리 썰지 않은 통마늘을 우걱우걱 씹어먹었고 가끔은 구워서 먹기도 했다.
세월이 좀 더 흘러 기름이 덜 튀고 연기가 덜 나는 용기가 입양된 후 좀 더 산뜻한 환경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것이 기억도 난다.
그 무렵엔 매실장아찌, 마늘장아찌, 명이장아찌 등 다양한 부대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쌈채소의 종류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냉동삼겹살보다는 생삼겹이 인기를 누리며 냉삼은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육류 유통이 원활해지며 삶에서 냉삼이 축출된 것이다.
불과 이삼십 년 전부터였던가?
펜션 문화가 꽃을 피우면서 야외에서 숯불을 피워 직화로 고기를 굽기도 했다.
아마 그때쯤엔 집에서 고기를 굽는 일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던 것 같다.
집보다는 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캠핑이 유행을 하기 시작할 무렵엔 야외에서 장작을 피워 숯을 만들고 거기에다 3센티를 넘기는 두터운 목살을 굽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는 물론 소고기, 햄도 굽고 심지어는 새우나 조개 같은 해산물도 구워 먹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돌아 이 시점에서 냉삼이라는 녀석이 다시 고개를 내밀게 된 건 아마도 기억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더듬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식은 추억이다.
맛있는 음식을 판단하는 기준은 입도 아니고, 혀도 아니고, 귀도 아니다.
내 안에 각인된 추억 속의 음식이 바로 가장 맛있는 음식인 것이다.
추억이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맛난 음식과 함께 했던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내게 냉삼이 추억이 된 이유는 아버지와의 얼마 남지 않은 기억 중 하나였기 때문인 것 같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보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는 모습이 나온다.
그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많은 기억들 밑에 꾹 눌려 있었던 오랜 추억들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요즘 들어 냉삼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바로 존재조차 잊혀갔던 가족들과의 만찬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맛있는 음식들......
함께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아버지, 한동안 당신이 이토록 그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