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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02. 2023

이 아름다운 곳에서 잠들 줄이야

드론이 잠수함 되며 가르쳐준 교훈

성산 일출봉 앞에서 드론이 추락했다.

단 한 가지 실수 때문이었다.

완충된 배터리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이 시작됐고 마침 날아간 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고 맞바람 때문에 드론이 복귀하는데 시간과 배터리 소모가 늘었으며 위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경고창을 승인해 강제 착륙을 시킨 것이다.

완전 실수였다.

다급한 나머지 잘못 판단한 순간의 오작동이 가져온 결과로 드론은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신호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정말 허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상상들...

- 보행자 머리 위로 떨어졌으면 어쩌지?

- 주행 중인 자동차에 충돌한 건 아닐까?

- 건물에 처박혔으면 어쩌지?

대략 이 정도 이슈가 가장 큰 문제였고 분실 같은 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껏 이백여만 원 정도의 손실은 인적 물적 사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한 시간 가까이 인근 골목까지 헤매고 다녔지만 드론으로 인한 사고는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추론한 결과 이 어딘가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종 추락지점 좌표를 찾아내 구글 맵에서 신호가 끊긴 지점 정보를 확보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였다.

그제야 마음이 안정됐고 조금은 아쉬움에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고는 났지만 피해는 나에게만 났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전에 두 번의 수장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든 찾아내 분해해 건조하면 재생이 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만조가 다가오는 시간이라 들어간다 해도 찾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간조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오밤중인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이른 아침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위성지도를 열어 GPS로 추락 지점과 내 위치를 비교하며 물속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바람에 물이 찰랑거려 물속 상황을 살피기 어려웠다.

십여 분 정도 무릎에서 허리 정도 되는 수심을 오가다 드디어 발견한 녀석.

물속에 배를 까고 뒤집어져 사망한 드론이 불쌍해 보였다.



집으로 가져와 물에 담가 짠물을 희석시킨 후 분해해 봤지만 예상했단 대로 이미 한창 부식이 진행된 상황이더라.

그래도 한동안 제주 항공촬영에 많은 기여를 했고 에어타임도 상당한 녀석이니 곱게 보내주기로 했다.

짧은 사고였지만 엄청난 충격을 줬던 기억이다.

인사사고가 아닌 걸 천만다행으로 안다.

사고는 한순간이다.

매사 조심해도 날 수 있으니 사고인 거다.

배터리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게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미연에 방지할 순 없어도 준비는 철저히 해야 사고에서 멀어질 거라는 교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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