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책, 자전거 소설, 자전거 로맨스 소설
"그거 보여주면 안 되나요? 궁금한데."
밴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출발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잠원동 도로 역시 한적해서 회사까지 십 분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게 말이지, 너에게는 보여주지 말라는 부탁이 있었어. 궁금해도 그냥 참아. 사실 별 건 없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말이야. 대신 너에게 선물이 있어. 준흠이가 부탁하던데. 거기 포켓에 있으니까 열어봐."
"네? 네......"
이별하는 더 이상 고집을 피워봤자 헛수고라는 걸 알기에 호기심을 접기로 하고 포켓을 열었다. 새 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에 향수가 고이 퍼져 흘렀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선물상자 같은 걸 기대했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은 노트 하나가 포장도 없이 놓여 있었다. 인조가죽으로 보이는 표지는 세월이 흔적으로 보이는 트임이 몇 개 보였고 고정 고리 부분의 가죽은 조금 너덜거리고 있었다. 마치 일기장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걸 열어보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에 대한 이상한, 평소 같지 않은 기운을 최근 들어 가끔씩 느끼곤 했었으니 말이다. 이별하는 큰오빠 같은 김호현 사장이 스캔들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의 처분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이 쌓였던 준흠이 아무런 말도 없이 시 하나 달랑 남겨두고 떠난 것도 그렇고 그 후로 며칠 동안 문자메시지, 카톡 하나 없었던 것도 섭섭했다. 하지만 이별하는 먼저 연락을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시를 읽지 않은 상태였다면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는 포켓 안의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밴이 도로 위 요철을 넘으며 리드미컬하게 출렁이자 노트가 살짝 부양하는 듯 보였다.
"뭐야?"
박진수가 뒤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별 거 아니에요."
"별 거 아닌 건 아닌 거 같은데. 준흠이가 굿바이 선물을 남겼다면 말이지. 짜식! 하여튼 감수성은 있어."
"오빤 이거 봤어요?"
이별하도 노트 안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그가 먼저 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왕 선물로 남길 거였다면 간단하게라도 포장을 해두면 좋았을 것을, 왠지 배려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나오는데 만났지. 새벽부터 빨리도 나왔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던 거지. 준흠이가 너에게 줄 게 있다면서 거기다 넣어두겠다고 하더라고. 뭐 별 거 있겠나 싶어서 신경도 안 썼는데 뭔데 그래?"
"정말 별 거 아녜요. 그냥 나중에 보려고요."
"그래~ 회사 다 왔다. 사장님도 새벽에 출근하셨더라. 술냄새 폴폴 나던데. 어지간히 부지런하셔."
밴은 몇 달 전 새로 지은 사옥 지하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약간의 어둠이 차를 집어먹자 이별하의 손은 포켓 안으로 쑤욱 밀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포켓 안의 노트는 사라졌고 그녀의 핸드백 안으로 위치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