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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pr 05. 2022

제주 남자와 귤 따러 가지 않을래

제주5박6일체류기-4

 아내가 롯데호텔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ACE체험프로그램이란 것 때문이기도 했다. 투숙객 대상으로 이런저런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시켜주는 서비스였다. 말도 타고(승마), 배도 탈 수 있었다(요트). 하지만 30개월인 재하가 할 수 있는 건 감귤 따기 정도였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듣자마자 머리 위에 물음표가 40개쯤 떠올랐다. 

「아니, 제주까지 가서, 호텔까지 가서, 굳이 귤을 딴다고?」

나에게 과실 채취와 같은 육체노동은 놀이기구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가를 받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 하느라 땀을 흘렸는데 돈까지 내는 건 자본주의 대명제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돈 내고 을질하는 건 대학원으로 충분했다. 내가 마뜩잖아 하자 아내는 재하에게 농장 구경 및 체험을 시켜주고 싶다 했다. 은근히 목가적인 그녀는 제주도를 딸에게 고향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며 섬에서 아이를 낳자한 사람이었다. 그랬다가는 그 수발을 몽땅 뒤집어쓸 것이었기 때문에 가족들 옆에서 키우자며 살살 구슬렸다. 그러면서 내 고향은 제기동인데 아주 학교까지 거기서 다녀 징글징글하고 떠올리기도 싫으니 고향 같은 건 아무 의미 없다는 논리적인 근거도 대면서 간신히 육지로 다시 올라온 것이었다. 그런 낭만병이 다시 도졌는지 귤 따러 가는 걸 강력히 밀어붙였다. 아니 그렇게 농사가 좋으면 전원주택 가자고 비아냥거렸더니 바퀴 때문에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 바선생 하나라도 나오면 세대주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하여 고강도 감찰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아무튼 식탁을 탕탕 치며 격노하고 있는 아내에게 눌려 사실 나도 귤 같은 거 한 번 따보고 싶었다며 감귤 따기 안건을 통과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귤 따기가 왜 바퀴벌레로 흘러가 혼났는지 의문이었지만 분위기 상 일단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9시에 출발하기로 했었기에 조식 뷔페는 가지 않았다. 12시부터 2시까지 하는 점심으로도 바꿀 수 있어서 그리 했다. 아침 식사는 우리의 친구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사 왔다. 중문 맥도날드는 해시포테이토가 아주 바삭하니 맛있었다. 나는 우유, 아내는 딸기쉐이크를 곁들였다. 재하는 핫케이크를 좀 먹다가 싫다며 도망 다녔다. 얘는 유아노동자가 된 자기 운명을 모르는지 끼니를 제대로 먹지 않았다. 감귤 따기 체험이라고 하니 72시간의 시간을 주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감귤 노예가 되었던 간밤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다!!


매니저님이 오라고 한 장소에 가니 참석인원이 우리 밖에 없었다. 이동차량으로 안내해 주셨다. 제네시스 G90이었다. 갑자기 흐뭇해졌다. 아니 G90 탑승체험 프로그램이라고 진작 얘기해주지, 그럼 어젯밤에 그렇게 울지 않았을 텐데.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졌다. 매니저님께 수줍게 원래 이런 차 타고 귤 따러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절하신 매니저님이 사람이 좀 있으면 봉고차를 타고 더 많으면 미니버스를 타는데 이번에는 고객님 가족뿐이라 특별히 좋은 차를 가져왔다고 하셨다. 자세가 된 호텔이었다. 칭찬합시다 고객 게시판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까먹고 쓰다 보니 이제 떠올랐다. 리뷰 이벤트가 있다면 별 다섯 개를 줄 답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귤농장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제주도 크기가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외지인들은 물론 이전의 나도 제주가 무슨 송파구만 한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는 서울 3배만 한 크기이다. 돌아다닐 때 동선을 잘 짜야지 아니면 두 곳 구경하고 해 떨어진다. 제주 살 때 지인 하나가 갑자기 밤중에 자기 성산에 있다고 놀러 오라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여기서(노형동) 거기까지 70km라고, 지금 가려면 시간을 달려서 가야 한다고 말했더니 못 믿는 눈치였다. 그건 진짜 살아봐야 안다. 크기와는 별개로 제주 사람들은 모든 걸 근거리에서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기는 하다. 예전에 동료 한 분이 자기 출퇴근길이 너무 멀어 직장 다니기 힘들다고 했었다. 알고 보니 그분 집과 회사는 6km 정도였다. 아니, 걸어도 다닐 거리인데 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민들은 통학이나 출근을 편도 한 시간 반씩 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내가 알기로 그분 서울에서 대학 다니셨는데 고향의 품에 취해 옛 일은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이런 케이스를 본 게 주변에 꽤 많다. 도민들은 제주에서 서귀포 발령이 나면 꼭 근처에 방을 잡았다. 가끔 운전 애호가들은 자차로 다니기도 한다. 그 사람 중 하나가 나에게 평화로 과속단속기는 3개라 알려 주었다.     



매니저님은 호텔에서 십 년도 넘게 근무하셨다고 했다. 코로나 걸릴까 봐 유행 이후 섬에서 나가지도 않으셨다 했다. 프로의식이 멋졌다. 말주변도 훌륭하셔서 분위기를 훈훈하게 잘 이끄셨다. 우리가 제주에 살았었다고 하니 더 반가워하셨다. 들어보니 그 희귀한 제주에서 출퇴근하는 분이었다. 평화로 몇 분에 끊으시냐고 은근하게 물으니 씨익 웃으시며 20분이면 충분하다 하셨다. 아 이분도 15분 클럽이시구나.

「아 매니저님 그럼 이 길도 사실 30분이면 가시겠어요」

「고객님 모실 때는 그러면 안 되죠. 60km 정속입니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매니저님은 멋진 제주 남자였다. 제주에서 적응 못했던 소심했던 나는 내심 부러워졌다. 예전에 나는 겸상은커녕 저런 분들 옆에 가지도 못했었다. 멋진 제주 남자로 살아가려면 3가지를 잘해야 하는데 나는 하나도 못했다. 첫 번째가 술이다. 술은 아무리 잘 마셔도 부족하다. 술은 제주 남자 인간관계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그 매개체를 통해 취업, 계약, 승진이 모두 해결된다. 돈 없어도 마실 수 있다. 누군가 낸다. 제주에서 술자리는 공공부조의 영역이다. 영화 「황비홍」 주제가가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強)’이라면 제주 남자들의 주제가는 ‘남아당주당(男兒當酒黨)’이라고 할 수 있다. 요새 말로 ‘알쓰(알코올 쓰레기)’인 나는 매번 1차 중간에 도망가다 욕을 먹었다. 식사부터 달리니 견딜 수 없었다. 나중에는 잡지도 않았다. 슬프게도 그건 무리에서 배제된다는 신호였다. 뭐 이렇게 술은 열심히 마셔서 인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제주에는 해장국 맛집이 많다. 다들 술 먹은 다음날에 해장국 집을 가면 그거면 좋아라 하면서 따라갔었다. 술은 안 먹고 해장국발만 세워서 욕을 먹었나 싶다. 직장 주변에 「수구레해장국」이라고 있었는데 별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맛집이다. 가끔 현지인처럼 해장하고 싶을 때 찾아가도 좋은 곳이다. 작년인가 제주 한 언론에서 도민 10명 중 3명이 일주일에 2번 이상 술 마신다는 기사를 봤었다. 그걸 보고 아내에게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아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먹었는데?」

「도민에 여자도 포함되었을 거 아냐」

아하 그렇구나. 제주 여자들도 잘 마시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두 번째는 축구이다. 축구는 제주 남자들의 자존심이다. 서울 같은 곳에서는 주변에 친한 사람들로 축구 인원을 채울 수 없기에 팀을 짜고 싶다면 일부러 따로 모아야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많은 남자들이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친구들끼리 축구팀은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꼽았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제주에서는 가능하다. 꿈이 아니다. 제주 사회를 구성하는 ‘괸당’은 기본 구성원 수가 꽤 많으니 그 안에서 얼마든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동창들과 늘 술 먹고 축구할 수 있는 곳이 제주이다. 어떤 의미로 제주는 연인들을 위한 꿈의 섬이 아니라 아저씨들의 섬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다. 친한 사람들이 편을 먹고 축구를 하니, 얼마나 외부에 대한 적개심이 클 것이며 우리 편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모여서 집단의식을 형성하니 덩달아 남성성이 폭발한다. 상승효과가 어마어마하다. 술 먹고 축구하고 뒤풀이도 화끈하게 한다. 오전부터 끝없이 마실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술은 못 먹으니 축구라도 해서 친구들 만들어 보려고 동호회에 나가봤었는데 점심부터 술 먹는 거에 놀라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내 유일한 친구였던 아내를 부여잡고 날 왕따 시키면 안 된다고 했더니 냉정한 아내는 일단 충성도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있는데 열린 마음이다. 이건 인간관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서로 수저 개수까지 공유가 된다. 어느 집단에 포함된다면 더 이상 비밀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간이 한정된 섬 특성상 만나는 사람도 장소도 시간도 다 비슷하다. 뭘 하든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되어 있다. 바로 전파된다. 탐라 근본주의 원주민들은 결혼식도 사흘 하고 장례도 열흘씩 할 때가 있다. 괸당들은 그 경조사에 대부분 참석한다. 그 괸당의 인원은 적지도 않다. 그러니 경조사가 365일 24시간 끊이지 않는다. 경사를 ‘잔치 간다’로 표현하는데 주말에는 잔칫집을 하루 세네 탕 뛸 때도 있다. 같은 날 별개의 잔치에서 두 번 나와 마주친 한 어르신은 「도민 되려고 노력한다」라고 칭찬해 주셨었다. 조사는 주로 밤에 모여있다. 밤에 남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할 게 뭐 없다. 상가에서 먹는 술은 한정되어 있고 남자들이 서로 칭찬해주며 공감해줄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필연적으로 도박판이 벌어진다. 이 열린 마음은 노름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제주에서 상가를 가보면 구석쯤에 작은 방이 있을 텐데 거진 100% 하우스다. 때론 옥상도 하우스가 된다. 밤새 친다. 그렇다고 누가 돈을 잃거나 따지도 않는다. 개평 문화가 확실해 옆에 얼쩡거리며 심부름을 해주면 두둑이 팁을 챙길 수 있다. 늘 새로운 친구를 어디서 주워오는 성격 좋은 아내는 그 도박판에서 쥐포를 구워주고 20만 원 받기도 했다며 나에게 종종 자랑했다. 또 한마디를 참지 못하고 그럼 공범 아니냐고 했다가 역으로 그 말의 의미가 뭐냐며 가혹한 취조만 받았지만 말이다. 판에서 돈을 잃어도 파장 즈음에 내 돈 다시 돌려달라고 딴 사람의 돈을 그냥 막 가져간다. 손목 날아가고 그런 거 없다. 그러니 노름이라 정의하기도 어렵다. 만남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운영하는 수단 정도이다.     



이런 모습들을 종합해 볼 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은 괸당을 결속하기 위한 장치이다. 제주 남자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 아니고 괸당이니 말이다. 그래서인가 지방선거를 하다 보면 무투표 당선도 상당히 많다. 선후배를 따져 사전에 미리 정리되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이렇게 똘똘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시대를 지나와서 그런 걸까라는 상상이 되기도 한다. 이 강력한 괸당에 몸을 던지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누군가 즐거우면 누군가는 당연히 힘들기에 굶지 않는 대신 배우자에게 맞아 죽는 수는 생긴다. 참고로 제주 조이혼율(천명당 이혼건수)은 서울의 1.5배이다. 제주 여성들 중에는 시원시원 한 장부 스타일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바깥일에 열중한 남편을 대신해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해녀가 있는 게 아니다. 배 타러 나가서 죽은 남편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라고 하지만 실제는 배 타러 나갔다가 죽은 사람의 상갓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또 쓰다 보니 삼천포로 갔지만 여하간 제주도는 태초의 남성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그런 곳이다. 나같이 남성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보기엔 꽤나 부러울 때도 많다. 정말로 그렇다. 그래서 제주 남자를 바라보는 내 시각엔 어이없음 반 부러움 반이 섞여 있다.    


누구냐 넌


감귤체험을 하려고 「최남단체험감귤농장」에 도착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었다. 최남단이라 하길래 아니 중문이 제주 최남단인데 왜 50분이나 걸리나 했었다. 그냥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뜻이었나 보다. 누군가의 이름을 딴 건가 했는데 대표님의 성은 ‘오 씨’였다. 체험농장은 별거 별거 다 겪어볼 수 있었다. 농장체험 종합선물세트였다. 돼지, 오리, 닭, 염소, 토끼, 알파카(?), 타조, 당나귀, 라쿤, 각종 곤충 및 파충류 일체 등등이 다 있었다. 대부분에게 먹이도 줄 수 있었다. 이동은 모노레일을 타고 한다. 바닥에 깔려 있는 궤도가 아니었다. 농장 전체의 귤나무들을 조망할 수 있는 충분히 높은 높이의 고가 레일 위를 달렸다. 속도도 느리지 않다.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속도였다. 내 수준에 딱 맞았다. 재하도 멍하니 모노레일 위에서 바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기 대표님은 스트레스 쌓이실 때 모노레일 타고 농장 드라이브하면서 스트레스 푸시는지 궁금해졌다. 새삼스럽지도 않게 우리 딸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때 내내 안겨 있었다. 과감히 먹을 것을 향해 돌진하던 돼지들이나 자기보다 더 큰 동물들이 부담스러웠나 싶었다. 그러더니 토끼 무리들을 보곤 당당하게 뛰어내렸다. 본인 마음에 드는 토끼도 있었나 보다. 왠지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얼룩무늬 토끼였다. 재하는 얼룩이에게 감정이입을 했는지 먹이들을 죄다 그 친구 앞에 몰아주고 먹으라며 강요했다. 오래간만에 손주를 본 할머니 흉내내기 놀이를 하는 듯했다. 토끼가 싫다고 도망가자 아빠에게 잡아오라며 호통을 쳤다. ‘빨리빨리’라고 소리쳤다. 어리지만 한국 사람이 맞는지 발음이 아주 찰졌다. 토끼대장이던 재하는 라쿤 앞에서 다시 작아졌다. 안아달라고 하더니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얼룩이도 밥 줘야해


귤은 이제 노지 귤 시절은 지나고 하우스 귤 철이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귤을 땄다. 꽤 커다란 봉지 하나와 귤 가위를 받았다. 매니저님이 귤 따는 방법을 알려주려 하자 아내가 자기 안다고 잘한다고 했다. 예전에 몇 번 해봤다고 했다. 자신감 있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진짜 잘했다. 순식간에 봉지를 채웠다. 맛있는 귤 판별법도 설명해줬다. 겉이 오돌토돌하고 꽉 찬 귤이 맛있다고 했다. 귤 농장 딸에게 들었다나. 아는 사람도 많다 싶었다. 이렇게 발도 넓고 손재주도 좋은 사람이라 제주 시절 아내는 ‘요망지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똘똘하고 야무지다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가끔 너무 잔머리 굴리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제주에서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요망진 옥 선생에게 장가가서 좋겠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얼마나 집에서 잘하냐고 했다. 과장 안 하고 오백 번은 들었을 거다. 제주의 친딸은 아니지만 수양딸 정도와 결혼한 죄였다. 어디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많이 그 말을 듣자 「아니, 걔가 시집을 잘 갔다는 생각은 왜 못해요?」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관찰카메라라도 해서 보여주고 싶었었다. 이렇게 밖에서 만큼은 요망 졌던 제주의 양녀가 따준 귤 맛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재하도 좋아했다.      


네 살 입니다


제주 하면 생각나는 것이 귤이지만 우리가 먹는 품종이 재배된 역사는 길지 않다. 고려나 조선시대 때 중앙에 진상하던 귤은 현재 우리가 먹는 종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귤은 중국 온주밀감이 일본에 전해졌다 다시 제주로 건너온 것이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 넘어온 여러 품종을 다시 개량해 천혜향이니 레드향이니 하는 신품종들이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토종 귤나무들은 몇 그루만 살아남아 원조 제주 꺼멍도새기들과 함께 연구원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왔지만 제주 땅이 귤 키우기 좋은 땅이긴 했나 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장려된 귤은 이제 제주, 특히 서귀포 전역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표작물이 되었다. 위상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60~70년대에 귤값은 금값이어서 귤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애 대학 보낼 수 있다고 했었다. 별명이 ‘대학나무’였다나. 영화 「건축학개론」의 여자 주인공인 ‘서연’은 제주 출신으로 나온다. 아마 서연의 아버지는 귤 따서 딸 서울로 유학 보내지 않았나 싶다.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이 드는 음대 보낸 것으로 보아 한 그루는 아니고 스무 그루쯤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서연이 왜 그렇게 서울 살고 싶어 했나 궁금했는데 카페 「서연의 집」을 가보고 그 의문이 풀렸다. 진짜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와 돌담, 귤나무만 있다. 가서 한 시간 정도 머리 식히기나 좋지 매일 파도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경질만 날 거였다. 서연, 아니 나보다 한참 연상이시니 서연 누나의 마음이 이제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서울 가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서연의 집 부근이 다 귤로 유명한 곳이다. 지도상 「서연의 집」 왼편에 있는 효돈동이 귤 생산의 메카이다. 그 위 편의 남원읍에서도 많이 난다. 예민한 사람들은 귤 맛만 보고도 출처를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열나게 먹느라 바빠 그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다. 여기는 귤 자체가 너무 흔해 덩달아 귤 인심도 후해진다. 제철에는 어디를 가도 한 봉지는 기본으로 선물로 받게 된다. 나도 직장에 남원읍 출신 선생님이 계셔 때 되면 두 박스 씩 받아왔었다. 그래서인지 육지로 돌아와서는 한동안 돈을 주고 귤을 사는 게 적응 안 되기도 했다. 다만 제주에서 나는 귤이라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지인이 출장을 다니다가 구좌읍(제주도 북동쪽) 쪽에서 귤을 한 상자 얻어온 적이 있었다. 혹시 부정청탁방지법에 걸리는 거 아닌가 하며 걱정하고 있길래 위로해주면서 몰래 하나를 빼먹었다. 그리고 안심하라 했다.

「경찰도 구좌귤이면 걍 받아도 된다고 이해해 줄 거예요」

난 귤을 엄청 좋아해 겨울이면 노란 피가 흐르는 사람이지만 구좌에서 만큼은 당근이 귤보다 맛있다고 생각한다.      



재하는 농장에서 나름 즐겁게 보낸 것 같았다. 안겨있기도 했지만 걷기도 해서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잘 기미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매니저님이 말씀하셨다.

「곧 잘 겁니다. 오일장 정도까지 가면 잘 거예요. 다 그러더라고요」

우리 재하는 자지 않았다. 매니저님이 당황하며 다시 말씀하셨다.

「승합차면 잤을 텐데...」

재하는 넓은 뒷자리를 뛰어다니며 엄마아빠도 졸렸던 50분을 견뎠다. 농장체험을 다녀와서 다음 차를 G90으로 사기로 결심했다. 평소에는 로또 천 원어치만 사는데 그 주에는 특별히 삼천 원을 걸었다.     


문제의 그 스테이크


점심을 먹으러 갔다. 또 재하는 파스타 나는 소시지에 탕수육을 먹었다. 아침에 맥모닝만 먹어 배가 고팠었는지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어느 정도 차고 나서야 아내가 좋은 것을 먹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내는 스테이크만 계속 가져다 먹고 있는 중이었다.

「어? 그런 게 있었어?」

「응. 스테이크만 먹어야지 하고 왔지. 블로그에도 이것만 먹었다는 이야기 많던데?」

아내는 스테이크 나오는 걸 미리 알았어서 작정하고 그것만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분이 나서 내가 소시지에 탕수육 먹고 있었던 거에 아무 감정 없었는지 따졌다.

「좋아서 먹는 줄 알았지」     


한창 공사중이던 호텔


숙소로 돌아와 재하는 웬일로 잠이 들었다. 우리는 호텔 와서 처음으로 여유롭게 환할 때의 방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창 새 정원과 수영장을 만드는 중이었다. 공사 중이긴 했지만 뷰가 워낙 좋았다. 아내가 말했다.  

「완성되면 예쁘겠다」

「그때는 우리가 못 오겠지...」

아내의 눈빛이 서늘해져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날 밤 슬그머니 천 원어치를 더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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