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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an 05. 2020

2020년 한국의 그냥 아저씨

SF물에서 그렸던 미래 사회

1989년 KBS에서 「2020 우주의 원더 키디」라는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적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배경은 바야흐로 우주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2020년(?!)이다. 한 우주인이 탐사를 하다 실종되고 그 우주인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가 출동한다. 사건 장소로 향하던 우주선에는 실종 우주인의 13살짜리 아들이 몰래 탑승하였고, 구조대의 일원이 된 그 소년은 외계인과 싸워서 아버지를 구출하고 지구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한창 만화를 좋아하던 필자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봤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6학년쯤 되면 저렇게 용감할 수도 있구나 라는 감탄도 하고, 2020년에는 달나라로 여행을 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진짜 2020년이 된 지금, 원더 키디를 열심히 보던 어린이는 그냥 아저씨가 되었고, 그 아저씨는 ‘우리 딸은 달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겠지’란 생각이나 하고 있다. 원더 키디뿐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곧 과거소년이 될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은 2028년이다. 그리고 코난에서 지구는 2008년에 핵전쟁으로 거의 멸망한 상태이다. 이렇게 보면 미래를 그린 작품은 배경을 너무 가까운 시간에 하지 말고 「은하철도 999」처럼 시간을 서기 2221년쯤으로 잡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그 이름도 유명한 쥘 베른


공상과학(Science Fiction, 이하 SF) 소설의 창시자로 꼽히는 사람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이다.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일주」, 「15 소년 표류기」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이다. 현대의 수많은 SF작품에게 영감을 준 그의 작품들은 상상력과 모험담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지구에서 달까지(De la terre à la lune, 1865)」는 대포에 사람을 쏴서 달까지 보내는 내용인데, 발사할 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 위도가 낮은 미국 남부에 발사대를 설치하는 모습은 상상력뿐 아니라 당시의 물리적 지식도 참고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잠수함을 타고 아틀란티스(각주: 플라톤이 말년의 저작 「티마이오스」에서 언급한 전설의 대륙. 대서양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린 원동력의 하나로 평가된다)가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바다 밑을 구경하고,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하여 마젤란(각주: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 포르투갈의 탐험가. 1519년 몰루카 제도의 향료를 찾기 위해 탐험을 떠났으나 1521년 필리핀의 세부 인근에서 원주민과 전투를 벌이다 사망한다. 그의 함대는 1522년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포르투갈로 귀환한다)이 3년 걸렸던 세계 일주를 80일 만에 해내는 그의 소설에 동시대 사람들은 열광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표지


특히 당시 서구 사회는 인간의 진보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바탕이 되는 이성은 서구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으며 사회 진화론적 사고를 통해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 비평가들이 쥘 베른의 작품을 비판하는 주요 이유도 그 시대에 발생하던 문제점들, 식민지 문제, 빈부격차, 인간 소외 등의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다만 쥘 베른의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다지 긍정적으로만 사회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후기 작품인 「20세기 파리」를 보면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문학을 전공한 청년인데, 인문학 전공자들이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지금 시대를 한 번 보고 간 건지란 생각도 들게 한다. 여담으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창작되는 SF물을 '스팀펑크'라 부르기도 한다. 밑에 언급할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사이버펑크'와는 다르게 작품 내의 분위기가 대체로 밝은 것이 특징이다.



1870년 보불전쟁(각주:독일을 통일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간의 벌어진 전쟁. 프로이센은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을 선언한다)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을 가리키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각주: 유럽에서 거의 전쟁이 없었던 평화로운 시대를 가리킨다), 즉 쥘 베른의 시대를 지나게 되면 미래를 그린 작품들에서 긍정적 요소는 많이 사라진다. 디스토피아(Dystopia) 작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은 발달하지만 그게 꼭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사회적인 공감을 얻기 시작한 시기였다. 양자 세계대전으로 인해 수천만의 사람이 죽어나가며 인간성은 파괴되었다. 핵이라는 인류 공멸의 무기도 탄생했다. 그리고 세계 중심부와 주변부,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전통과 혁신의 대립도 본격화되었다. 이 균열들이 궤도에 오른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통해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지각색의 갈등을 보며 이제 인류는 그들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헉슬리의 '멋진 신셰계' 표지


이런 시대에서 인간의 앞날을 그려본 대표적인 작품은 예브게니 자먀틴(1884~1934)의 우리들(1920),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멋진 신세계(1934),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1949)이다. 이 세 작품은 디스토피아 3대 소설로도 꼽힌다. 여건은 약간씩 다르지만 표현하는 모습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독재자의 치하에서 상상력을 빼앗기고 살아가거나(우리들), 마약과 쾌락 거리들에 둘러싸여 세뇌당하고(멋진 신세계), 빅브라더의 철저한 감시 속에 언어와 문자도 빼앗기게 되는(1984) 그런 모습들이다. 세 작품의 공통적인 상황은 개개인의 인격이 말살된 전체주의 속에서 인류가 살아간다는 것이며 기술과학의 진보가 결국 인간을 옥죄게 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 명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모습을 보거나(예브게니 자먀틴), 경제 대공황과 같은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타인을 증오하는 전체주의의 발흥을 겪거나(올더스 헉슬리), 핵전쟁의 공포와 극단에 치닫는 양 쪽 진영의 냉전을 경험하며(조지 오웰) 이들은 인간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대중문화의 시대가 개막하며 이들이 우려했던 사회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개성이 사라진 천편일률적인 옷을 입고, 지적 탐구를 하기보다는 TV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생각을 하고, 강력한 다국적 회사나 국가기관에 의해 군중이 파편화되는 그런 현상들이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지나 인터넷이 보급되며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대체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활성화, 전자기기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해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 유튜브와 같이 개개인이 직접 제작하여 보급하는 영상 플랫폼이 출현하게 되는 장점도 생겨났다. 인간을 억압하리라 여겼던 진보된 과학기술을 현재의 인류는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었던 책과 같은 문자 매체들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소외되고 있는 것은 맞다. 이런 행태들이 영상매체가 지식의 전달 매개체가 되는 과정인지, 아니면 조지 오웰이 지적한 것처럼 생각을 빼앗기게 되는 전조(前兆)인지는 지켜봐야 될 일이다.     



블래이드 러너의 포스터, 젊디 젊었던 해리슨 포드...


이제는 문학보다는 주로 영상매체에서 차후의 세상을 그리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라든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The Matrix, 1999)」가 그 대표적이다. 세계관은 위에서 살짝 언급한 조금은 암울하고 비인간적인 면모들이 보이는 '사이퍼펑크' 장르일 때가 많다. 이 작품들은 인간이 정한 규율을 어기는 인조인간과 싸우거나(블레이드 러너) 인간을 지배하려는 인공지능과 투쟁하는(매트릭스)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요소들과 인간이 잘 지낼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레플리칸트(Replicant)’라 불리는 복제 인조인간을 생명체로 인정할 수 있느냐(블레이드 러너), 또 ‘인공지능(AI)’이 구현하는 세상을 또 다른 현실로 봐야 하느냐(매트릭스) 라는 질문을 시청자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시뮐라시옹(Simulation, 모사)’(각주:실제가 아닌 대체물(시뮐라르크)들이 실제를 대신하는 과정. 현대의 대중들이 실제 경험이 아닌 매스미디어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며 고안된 개념이다)에 관한 책을 베스트셀러로 올리게 했다. 이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읽지는 않고 책장에 잘 모셔놓고는 했다. 




아무튼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은 오래 살아야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건강관리부터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모두들 새해에는 더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아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다. 1년은 지났지만 혹시 우리 주변에 레플리칸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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