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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Mar 03. 2020

스물세 살이오 삼월이요 각혈이다

결핵과 전염병 이야기

“스물세 살이오 삼월이요 각혈이다” 1936년 발표된 이상의 자전적 소설 「봉별기」의 첫 구절이다. 그는 만 스물셋 되던 해인 1933년 폐결핵을 진단받는다. 요양 중 기생 ‘금홍’과 만났고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봉별기」에 그려 넣었다. 결국 이상은 폐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하는데, 이뿐만 아니라 그 무렵의 많은 문학가들이 결핵에 걸린 모양이다. 이상뿐 아니라 김유정, 나도향, 채만식 등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자신이 천재라고 굳게 믿었던 이상


일부 작가들은 결핵에 걸린 것을 일종의 훈장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결핵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 정도로 여겼다. 덕분에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결핵은 치명적이지만 아주 부정적이지만은 않게 그려지는 특색이 있었다. 비운의 천재 캐릭터를 그려낼 때 피를 토하는 결핵환자 클리셰(Cliché, 주:판에 박은, 진부한 이란 뜻으로 작품 등에 나오는 진부한 표현을 가리킨다)는 이때에도 찾아볼 수 있다. 천재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결핵에 걸리면 예뻐진다는 속설이 돌기도 했다. 다만 소설가 김유정은 그의 작품 「만무방」에서 결핵을 ‘돈만 있으면야 뇌점이고 염병이고 알바가 못 될 거로되’라고 묘사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정도에 따른 위생 격차가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잘생긴 바이런, 얼굴값 엄청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결핵 애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원조는 따로 있었다. 서구사회에서도 결핵은 무언가 ‘천재의 질병’ 정도로 여겨졌다. 낭만주의 시대(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의 유럽 주요 사조. 이성을 표방한 계몽주의가 불합리한 모습을 비추자 자아의 욕구와 감정을 중시하고 그 근원을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찾으려 했다)가 오면서 이 증상은 더 심해진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 등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는 그의 회고록에서 “1823년에는 폐병이 유행했다. 시인들은 피를 토하며 30세 이전에 죽어갔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영국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나는 결핵에 걸려 죽고 싶다. 여자들이 보기에 얼마나 멋있을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바이런은 어마어마한 여성편력을 자랑했으며, 실제로도 상당한 미남이었다고 전해진다. 폴란드의 음악가 쇼팽도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인 조르드 상드는 지인에게 편지로 ‘신의 은총으로 쇼팽이 계속 기침을 한다’라고 썼다. 아무래도 결핵이 창의력이 원천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외에도 결핵으로 죽어간 유명인들은 셀 수 없는데, 대표적으로 루소, 볼테르, 도스토예프스키, 칸트, 에드거 앨런 포 등이 있다. 유명인이 되면 결핵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결핵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중 제일 잘생겼던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주: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 벌였던 전쟁(1821~1829). 고대 그리스를 강조했던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많은 유럽 젊은이들이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한다)에 참전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말라리아도 여자들이 보기에 멋진 전염병인지는 잘 모르겠다.



몽골 군의 카파공격, 화학공격의 모습이 보인다


결핵과 같은 전염병은 문학작품 등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특징이 있지만 사실 굉장히 인류 생존에 있어 매우 치명적인 위협이라 할 수 있다. 백신과 항생제, 위생관념이 발달되기 전 인간사회는 전염병에 있어서 속수무책이었다. 역사상 발생한 많은 사건들이 전염병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다수의 문명이 전염병과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한 원인은 좁은 도시국가에서 발생한 전염병으로 인하여 지도자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인구 4분의 1이 사망한 데서 기인한다. 또 13세기 몽골군이 크림반도의 제노바 도시 카파(오늘날의 우크라이나 페오도시야)를 공격하며 쏘아 올린 시체들에서 발생한 페스트(흑사병)는 중세 유럽 인구의 최소 3분의 1을 사라지게 했다. 이 전염병은 장원 위주의 경제였던 중세의 경제 체질을 바꿔놓았다. 급감한 노동력으로 인하여 노동자의 임금 가치가 상승하고, 장원의 주인이었던 영주들은 파산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도시가 발달하며 교역이 활발해지고 초기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며 천연두도 함께 퍼트린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을 손쉽게 무너뜨린 것은 이 전염병에 대하여 원주민들의 면역이 없었던 이유가 크다. 천연두로 인하여 원주민의 80%가 사망하며 외부 침입자들에 대한 저항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신대륙은 나름의 복수를 하게 되는데, 바로 매독(주: 유행성 강한 성병. 아메리카 대륙의 풍토병이었는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성관계를 맺고 유럽으로 돌아와서 전파시켰다는 설이 유력하다)이다. 100% 정확한 원인은 아니지만 신대륙을 거쳐 온 뱃사람들에 의하여 유럽에 매독이 창궐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 병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재밌는 점은 매독이란 이름이 정해지기 전의 이 병을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 병, 영국인들은 프랑스 병, 이탈리아인들은 스페인 병이나 프랑스 병, 아랍인들은 기독교 병이라 불렀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병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외에도 원·명 교체, 준가르 칸국에 대한 청의 정복으로 인한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크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퇴 모두가 전염병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이것만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의 사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로베르트 코흐



다른 전염병은 차치하고 아무튼 결핵은 1882년 독일의 의사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에 의해 발견된다. 결핵 시료가 든 통을 난로 옆에 두고 졸았는데, 그 사이 열을 받은 결핵균이 염색이 되어 찾은 것이다. 이 공로로 코흐는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이후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의 X-선 발견, 1921년 프랑스 과학자들에 의한 BCG 백신 발명 등으로 결핵에 대한 예방법도 생겨난다. 이 BCG는 이를 발명한 칼메트(Calmette)와 게랭(Guérin)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다음에는 1943년 미국의 생물학자 왁스먼(Selman A. Waksman, 1888~1973)에 의해서 항결핵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며 결핵에 대한 치료법도 완성에 이르게 된다.


3월에는 결핵의 날이 있다. 결핵이 이제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지만 아직도 수많은 변종 결핵균은 살아있다고 한다. 영양소가 부족하고 피곤하면 걸리기 쉽다고 하니 환절기에는 푹 쉬면서 미리미리 이런저런 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모두 힘내서 이 위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들어오고 나가고 할 때는 꼭 손을 깨끗이 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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