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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Oct 18. 2020

승리의 날

각국의 군대 기념일에 대한 이야기

어릴 적에는 10월이 좋았다. 휴일이 많아서였다. 국군의 날과 개천절, 한글날로 이어지는 황금주간은 명절 부럽지 않았다. 다만 쉬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높은 분들의 뜻에 따라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길던 가을방학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다시금 국군의 날이 살포시 내 곁에 찾아온 것은 군 복무를 할 때였다. 10월 1일에 군인들은 과자세트 같은 약소한 선물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국군의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었던 날에 칸쵸를 얻어먹은 죄로 우리는 국군의 날 기념식을 보고 대통령의 연설이 얼마나 마음을 울렸는지에 대해 하루 종일 감상문을 써야 했다.


바스티유 데이에서의 열병식


프랑스의 군대 기념일(7월 14일)은 국가의 가장 큰 축제이다. 이 날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로 창군 행사도 겸사겸사 치러진다.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 공식 명칭은 Fête nationale française)로도 불리는 이 날은 프랑스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요새 함락을 기리는 날이다. 프랑스혁명정부는 1790년 혁명 1주년을 기념하며 파리 한가운데에서 군대 퍼레이드를 벌이고 며칠 동안 불꽃놀이를 했다. 혁명을 지지하는 것은 군대, 즉 시민의 물리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집권세력에 계속 바뀌며 서서히 잊혀가다가 1880년 되살아난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1870) 그 여파로 제정과 공화정을 오락가락하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산업화가 진행되며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계급갈등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균열을 봉합하고 하나의 국가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정치인들에 의해 ‘혁명기념일’이 되살아난다. 다만 날짜에 대해서는 논쟁이 조금 있기도 했다. 후보로 삼부회의 소집일, 왕정 종식일, 루이 16세의 처형 일등이 있었지만 혁명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요새 공격일인 7월 14일이 낙점되었다. 그리고 또 군대 퍼레이드를 벌이고 폭죽을 하늘로 쐈다. 이 때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프랑스는 그 이후로 ‘쇼비니즘’(chauvinism, 애국광신주의)이 퍼지며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소수를 차별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도 함께 확산되어간다. 아무튼 이후 7월 14일은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로 자리 잡는다. 바스티유 데이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인들의 행사가 열리며 2019년에는 한강에서 불꽃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서울에서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서래마을에 가면 과자를 공짜로 나누어주는 빵집들도 있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상대적으로 조촐한(?) 퍼레이드를 한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 시기만 제외하면 매해 이 날 파리 한가운데서는 프랑스군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속칭 ‘자유진영’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크게 하는 나라는 프랑스와 대한민국만이 거의 손꼽힌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같은 날 소규모 퍼레이드를 하긴 하지만 사실 거의 열리지 않는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민해방군 사열로 화제가 되었던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이후 미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미국은 왜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피터 쿡(Peter Cook) 대변인에게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대변인은 ‘그건 우리 스타일이 아닌데?(not our style) 미군은 세계 최강이고...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The US military is the world's foremost military... we don't need to display it at parades)라는 위엄 넘치는 대답을 한 일도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인 것이 대형 열병식은 권위주의적 전체주의가 강한 집단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집권세력의 물리력을 과시하여 당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끌어내는 내부 결속을 위한 행위라서 그런 모양이다. 이에 반해 자유진영은 선거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굳이 힘자랑을 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군대 사열을 좋아했고, 그들의 주적이었던 스탈린도 열병식을 사랑했다. 중국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1년에 대여섯 번씩 한다. 며칠 전에도 했다. 당 창건일, 수령 탄생일, 국가 탄생일, 군대 창설일 등등. 군대가 나라를 지키는 건지 열병을 하려고 있는 건지. 아마 군인들 무릎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러시아 내전


러시아는 아직 열병식을 가끔 하곤 한다. 소련 시기에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한 날인 ‘10월 혁명기념일’(11월 7일)이 가장 큰 행사였다. 이날의 열병식에는 신무기가 매번 등장해서 미국을 비롯한 NATO 관련국들을 긴장시켰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은 5월 9일, ‘대조국 전쟁 전승절’(Victory Day)에 군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10월 혁명기념일은 사회주의 노선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러시아 정부의 방침에 따라 꽤나 축소된 날이 되었다. 그 날에는 옛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노병들, 러시아 야당인 러시아 공산당,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운동가들, 그리고 성지순례를 온 중국인들이 모여 행사를 한다. 사실 러시아 군 기념일은 따로 있다. 2월 23일이 그날인데, 이 날은 10월 혁명이 일어난 이후 러시아에서 내전이 터지자 혁명을 지키기 위한 ‘붉은 군대’가 창설된 날이다. 이 ‘붉은 군대의 날’은 현재 ‘조국수호의 날’(Defender of the Fatherland Day)로 기념되고 있다. 소련의 색채가 묻어 있음에도 이 날은 살아남았다. ‘붉은 군대’에 반대했던 ‘백군’(White Army)에는 공산혁명 확대를 염려했던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등의 지원이 있었기에 조국수호라는 측면에서 나름 의미가 있어서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명칭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푸틴이 지어줘서 그렇다. 한 마디 더 붙이자면 구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은 위에 언급한 세 날을 취사선택해서 기념한다. 세 개 다 지키는 나라, 두 개나 하나만 골라 행사하는 나라, 날짜는 조금씩 바꾸는 나라 등 다양하다.



폴란드의 독립영웅 요제프 피우수트스키, 그러나 후에 독재자로 전락한다


폴란드는 이런 러시아에 대해 승리한 날을 군대 기념일로 삼았다. 10월 혁명으로 집권한 레닌은 내전이 발발하자 이를 먼저 해결하려 당시 벌이고 있던 독일과의 전쟁을 종료시키려 한다. 독일은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에게 동유럽의 광대한 영토 할양을 요구하고 레닌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이라 한다. 이미 폴란드는 18세기 후반부터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게 분할되어 지배받고 있기도 했다. 러시아령 폴란드는 독일의 세력으로 편입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으로 인하여 독립하게 된다. 독립 폴란드는 과거 영토의 회복을 위해 소비에트와 전쟁을 벌이고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독립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1867~1935)가 이끄는 군대가 비스와(Wisła) 강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유리한 강화를 맺는데 성공한다. 이 전투가 벌어진 8월 15일이 바로 폴란드의 군대 기념일이다. 원래 이 둘은 서로에게 감정이 워낙 안 좋았다. 18세기 이후 러시아가 폴란드를 괴롭힌 건 사실이지만 16~17세기 때는 잘 나가던 폴란드가 모스크바 점령도 하면서 러시아를 털어버린 적도 있다. 문학에도 그 분위기가 이어진다. 러시아 작가 고골(Nikolai Gogol, 1809~1852)은 「타라스 불바(Taras Bulba)」 에서 폴란드를 세상없는 야만인들로 그렸고,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는 「쿠오바디스(Quo Vadis)」에서 폭군 네로에 빗대어 러시아를 깐다. 개인적으로는 「쿠오바디스」가 훨씬 재미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한 번 보시기를. 아무튼 이런 역사의 여파인지 폴란드는 여전히 러시아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육군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쿠바의 그랜마 기념일(?)


생각해보면 군대라는 독점적 물리력은 한 나라의 독립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저항이 일어난 날을 군대 기념일로 삼는 경우들이 많다. 미얀마의 경우 일본제국에 맞서 봉기가 일어난 1945년 3월 27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세르비아는 오랜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에 대항하여 투쟁이 발생한 1815년 4월 23일이 기념일이다. 쿠바의 경우 1956년 친미정권 타도를 위해 ‘Granma’라는 보트를 타고 쿠바에 올라선 80여 명을 기리며, 그들이 상륙한 12월 2일을 군대 기념일로 삼았다. 이게 상당히 감격스러웠는지 쿠바 공산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쿠바 공산당 기관지의 이름을 ‘Granma’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한 날이자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1948년 5월 14일(그레고리우스력 기준)을 군 기념일로 삼는다. 날짜는 히브리력을 기준을 하므로 매년 바뀐다. 반면에 팔레스타인인들은 5월 15일을 ‘재앙의 날’(Yawm an-Nakba)로 부르며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을 기린다. 한술 더 떠 이집트의 경우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10월 6일을 군대 기념일로 삼는다. 제4차 중동전쟁(1973)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절반이나마 되찾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후에 협상을 통해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전체를 돌려받는다).



38선 돌파 기념사진


이렇듯 군대는 정치와 굉장히 밀접하기 때문에 정치적 상징이 있는 날에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 나라의 군대 기념일을 살펴보면 그 나라의 국시(國是)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의 유래는 보통 6.25 전쟁에서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로 알려져 있다. 제일 마지막에 생긴 공군의 날로 그냥 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하간 원래는 육해공군의 날이 각각 따로 있었지만 국군 제3사단의 북진도 기념하고,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남북화해 분위기가 도래하자 통일한국의 군대 기념일을 38선 넘어간 날로 삼는 것이 어울리느냐라는 의견이 확대되었다. 이에 발맞춰 1940년 9월 17일 광복군 창설일로 국군의 날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대한민국 국방부도 의병에서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의 계승으로 국군의 시작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아예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일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광복군이 자신들의 뿌리를 이날로 삼고 있어서 그렇다.



평화를 지킨다는 군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보상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군인은 멋도 함께 먹고 산다. 자신들이 왜 총을 들고 있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확실히 안다면 군의 사기와 전투력은 배가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 나라의 군대 기념일은 군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예비역의 한 사람으로서 모쪼록 국군의 날이 현상유지가 되든, 변경이 되든 국민과 국군이 모두 긍정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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