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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an 04. 2021

결혼반지의 유용함

나만 껴도 상관은 없지만...

나는 어디 가든지 결혼반지를 끼고 다닌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결혼 초창기에 피차 귀찮으니 빼고 다니자고 말했다가 경을 친 적이 있었다. 그럴 거면 반지 왜 맞췄냐고 호랑이 눈을 한 아내에게 대차게 혼났다. 차후 불시 검사하겠다는 말에 혼이 나가 덜덜 떨면서 끼고 다녔던 게 이제 습관이 되어 버렸다. 끼지 않으면 옷을 입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면 유용한 것도 많다. 첫째로 대충 입고 다녀도 된다는 점이다. 어차피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겠지만 까치머리에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나가도 반지와 함께라면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는 느낌이다. 둘째로 아내에게 혼나지 않는다. 안 그래도 혼날 거리가 넘치는데 하나 줄이는 것은 대단한 이득이다. 셋째로 뿌듯하다. 결혼이 뿌듯한 거라기보다는 나의 선견지명이 뿌듯하다. 처음에 반지를 제작할 때 약간 크게 맞췄었다. 일부러 헐렁하게 해서 잃어버리려는 게 아니냐는 아내의 추궁에 시간이 알려줄 것이란 대답만 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부부는 둘 다 살이 쪘다. 그리고 현재 나는 반지를 낄 수 있고 아내는 못 낀다.  

    

나는 반지를 껴야 하지만 아내에게는 물론 의무가 아니다. 그건 부부라면 말이 필요 없는 규칙이다. 친구 A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걔가 끼고 다니든 안 끼고 다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만 끼고 안 털리면 되지.” 우리는 서로 공감하며 반지를 공손히 쓰다듬었다. 그 훈훈한 광경을 보며 반지 끼지 않은 B는 읊조렸다. “우리 와이프는 집안 어딘가에 내 반지가 있을 거라 생각해.” B는 예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출근해서 야근한 후 술 먹고 퇴근하다 갑자기 화가 났는지 반지를 강물에 던져버렸었다. 이렇게 반지는 배우자를 종종 상징하기도 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말해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결혼반지를 끼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아내가 끼고 다니든 아니든 관계없다. 하지만 약간 골이 나서 그랬다. 바람을 말하기 전에 아내에게 나 예비군 끝난 기념으로 선물 안주냐고 했다가 민방위복 사주겠다는 대꾸나 들었기 때문이었다. 센 말을 질러놓고 덜덜 떨고 있었는데 아내는 선선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 웬일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나도 자기한테 바라는 게 있어,”

“뭔데?”

“글로 상 타는 거.”

아니 나도 당연히 공모전 되고 싶지. 반지 얘기 좀 했다고 치졸하게 뼈를 때리나 싶었다. 씩씩거리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승자의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올해 뭐 안 되면 연말에 내가 상을 줄게.”

플스 사달라고 해야겠다. 설마 그 상이 둘째는 아니겠지.


그 잘맞던 반지가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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