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의 결혼식 아침 생각
아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웨딩 숍 로비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에 김도근은 지금이라도 도망치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하지만 이미 난 이정옥 신부님의 신랑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숍에는 피아노 연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전에도 종종 방문했기에 음악들이 이젠 귀에 익었다.
아무래도 몇 곡을 돌려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the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가 흘러나왔다.
문득 옛 러시아 사람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전쟁에 나갈 때는 기도 한 번, 바다에 나갈 때는 기도 두 번, 결혼할 때는 기도를 세 번하라고 했다지.
난 아예 안 한 것 같아서 급히 기도를 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남자들은 우두커니 서로의 눈을 피한 채 전화기만 보고 있었다.
그때 저번에 결혼식 상담하면서 뵈었던 선생님 한 분이 다가오셨다.
인사를 드리자 ‘잠시 기다리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한 시간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관심이 좀 필요했다.
내 호칭은 말머리에 말한 것처럼 ‘이정옥 신부님의 신랑님’이었다.
객체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참 잉여스럽게 만들었다.
문득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상우 엄마로 인생의 반을 넘게 사신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부터라도 다정하게 조현훈 씨라고 불러드려야겠다.
영상 촬영 작가님이 오셨다.
신부가 화장하고 있는 모습을 찍고 오셨다고 했다.
나도 몰랐던 신부의 행방을 그분은 알고 계셨다.
날 지속적으로 찍으셨다.
클래시 로열을 하다가 아이씨를 외치는 것도 찍힌 것 같았다.
급하게 전화기 화면을 카메라 쪽으로 돌리며 bbc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원하신 화면을 찾으셨는지 나에게 등을 돌린 채 물을 마시고 계셨다.
아마 난 편집본이 나오면 폰 게임 중독자로 영상에 나올 것이다.
bbc 첫 화면에는 트럼프가 나왔다.
잘은 모르지만 김정은에게 험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제주에 살면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욕지거리를 해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어서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작가님들도 여럿 와 계셨다.
사진이나 영상 작가님들은 각자의 장비에 대해 칭찬하며 어디에서 샀는지 얼마 주고 샀는지를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2천만 원짜리 렌즈를 들고 다니며 매일 ‘be the reds’ 티셔츠만 입고 다녀서 별명이 붉은 악마였던 대학 선배 하나가 생각났다.
그분은 잘 사시고 계실 런지.
작가님은 다시 신부에게 가버리셨다.
안부 전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나마 아까 그 선생님이 오셔서 ‘이정옥 신부님의 신랑님’ 옷 갈아입으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시작하려나 보다 여기고 얼른 갈아입고 나왔더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천천히 갈아입을 걸 그랬다.
그 와중에 오늘 신부의 ‘부 신부’ 역할을 해 줄 현지희 씨가 오셨다.
여기서 잠깐 제주의 혼인 풍습에 대해 부연 설명을 좀 해야겠다.
제주 사람들은 상당히 경조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알던 최고의 경조사 애호가는 이민우였는데 여기 오면 한낱 귀요미 정도 일 것이다.
만약 제주 원주민끼리 인연을 맺게 되면 사흘간 결혼식을 한다.
하루는 돼지를 잡고, 그다음 날은 신랑 신부 전날 잔치를 하고, 마지막 날은 본식 이런 식이다.
행사 진행 중에 당사자들의 친한 지인들이 손님을 안내하고 자리를 지켜주는 ‘청객’을 해 준다.
입구에서 축의금을 받으며 식권을 나눠주거나 이런 문화도 없다.
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랑, 신부에게 직접적으로 축의금은 전달하는 편인데, 이때 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봉투를 맡아두는 사람들을 부신랑, 부 신부 이런 식으로 부른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와서 밥을 먹어도 알 수도 없고 또 약간은 무방한(?) 그런 분위기이다.
포틀래치가 궁금하다면 제주 결혼 문화를 경험해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모습의 변형도 존재한다.
원주민과 이방인이 결혼하면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피로연을 하고, 우리 같이 이방인끼리 단순 제주에서 식을 올리면 12시부터 5시까지로 칼 같이 끊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제주와 육지의 혼종, 키메라 같은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현지희 씨는 그런 일을 해주러 일찍부터 오신 것이었다.
영상 촬영 작가님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다시 오셨다.
정옥이와 같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뗘보라고 하셨다.
서산 마애삼존불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걸까?
난 예전부터 그 얼굴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쉽지 않았다.
포즈도 계속 요구하셨다.
난 이제 아이돌 배우들을 까지 않기로 했다.
장수원 님은 정말 메서드 연기를 하시는 거였구나.
나중에 신부에게 한 마디 할 인터뷰도 한다고 준비하라고 하셨다.
무슨 말을 해야 시간이 가도 질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웃길까를 먼저 생각하는 날 보며 난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화장을 하러 갔다.
얼굴에 분을 칠하자 화랑이 된 것 같았다.
결혼이라는 전장에 관창처럼 뛰어들어야 하는지.
도근이의 문자가 불현듯 생각났다.
메이크업 선생님이 내 피부를 칭찬해주시자 관심이 고팠던 나는 그런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신부보다 피부가 좋다고 하셨다.
난 입가에 머무는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작가님이 이 표정을 찍으셔야 했는데.
사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물 많이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하기에는 입술을 칠하고 있어서 대답하기 어려웠다.
눈썹을 정리한다고 했다.
내 얼굴에서 유일하게 자신 있는 곳이 눈썹이라 거부하려고 했는데 이미 모터는 돌아가고 있었다.
단발령 때 조상님들의 기분을 조금은 느꼈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 보고 나니 내 모습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동안 외모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나를 소홀하게 여긴 것 같아서 앞으로는 신경 써야지라고 생각하다 잘 보일 사람도 없어서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다.
역시 내면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턱시도를 순식간에 입었다.
내 준비는 끝났다.
정말 할 게 없었다.
신부는 신발만 해도 네다섯 개 가져온 데 비해서 나는 아무거나 하나 주는 거 신었다.
나의 준비 시간을 합쳐봤자 옷 입는데 3분, 화장하고 머리 하는데 십분, 신발 신는데 15초 정도 걸렸다.
마네킹이랑 웨딩 사진 찍고, 식장 들어가도 사람들은 모를 거고 알아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유부남들이 그랬는데 정말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 이정옥 님도 드디어 자태를 드러내셨다.
못 보던 모습이었다.
엊그제 씻기 싫다고 안방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잔소리를 듣고 잉잉거리며 욕실로 가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영상작가님이 또 어디서 귀신같이 나타나셔서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을 해보라고 하셨다.
난 현대 대한민국의 선진적인 화장법으로 처리한 정옥이의 얼굴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신부에게 멱살을 잡혔다.
무슨 의도로 그런 표정을 지었냐며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덕분에 매는데 30초나 걸렸던 보타이가 삐뚤어져서 도우미 선생님이 3초 만에 바로 잡아 주셨다.
셀카 찍는 모습도 영상에 담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막말로 사진 고자에 가깝다.
서로 약 올릴 때나 사진을 찍는다.
표정이 이게 뭐냐며 확대해서 놀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우리에게 시키니 곱게 화장하고 오묘한 표정이나 짓고 있었다.
정말 체질에 안 맞았다.
이런 건 돈 쓰면서 하는 게 아니라 돈 받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여하간 신부님은 옷과 화장이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는지 도우미님께서 준비 한 신발 중 가장 높은 것에 올라타셨다.
이건 ‘구두를 신었다’라는 개념보다 ‘발을 신발 위에 얹었다’라는 것이 더 잘 어울렸다.
강제 전족을 한 셈이었다.
아장아장 정옥이는 걸음마를 떼었다.
다른 부 신부 고희선 씨도 오셨다.
신부 양 옆에 부 신부들이 팔을 붙들고 가는 것이 꼭 연행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장면 같았다.
웨딩 카 운전은 정옥이의 직장 동료이신 이정주 선생님이 해주셨다.
자동차에 리본들이 달려있는 것을 보시고 내 차에 이런 것들이 달렸다고 한탄하시며 얼른 가서 떼어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웨딩 카는 후진을 하면 안 되고 오로지 전진뿐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속도를 높이셨다.
멈추면 안 된다는 말씀도 하시며 끼어들기도 하셨다.
무언가 해병대 구호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서 부 신부를 해주신 고희선, 현지희 님과 차량 운전 해 주신 이정주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