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아이들이 축구공처럼 발길에 차이고 있다.

2026, ‘독서 국가 선포식’에 즈음하여

by 김노하 Norway


가끔 세속에 물든 나를 꺼내 정화시키고 싶을 때 권정생 작가의 산문집을 꺼내 든다. 오늘 펼친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그치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다그치고, 그래서 아이들은 축구공처럼 발길에 차이고 있다.”


작가는 이 글을 1988년에 썼다. 1988년이면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다. '그 시절에도 아이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었구나.' 책을 덮고난 후에도 마음에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다그침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커서 잘 되려면 공부를 해야한다거나, 반대로 여자아이가 공부해서 뭐 하느냐는 말을 하시지 않았다. 내가 워낙 고분고분했던 아이이기도 했다. 앉으라면 앉고, 일어나라면 일어났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숙제는 해야하고,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왕 할 거면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하게 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고분고분함이 조금 아쉽다. 좀 더 엇나가 보고, 쓸데없는 짓도 해보고, 괜히 딴 길로 새어 봤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건, 책을 좋아하면서도 더 깊이 읽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한국 단편소설 전집을 빌린 적이 있다. 까만 표지의 세 권짜리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던 곳은 침대와 책상 사이, 애매하게 남은 방바닥이었고 나는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두 손 꼭 쥐고 먹듯, 나는 그렇게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 속 인물들과 놀다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또 다른 인물들과 놀다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의 독서는 더 멀리 가지 못했다. 학교 성적, 시험, 입시. 그 울타리를 넘어서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몰랐다.


20년 넘게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는 하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탐독했다는 이들이다. 만약 그때 나도 책을 마구 읽었더라면 지금 나는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 되었거나, 더 도전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쉽다.


그래서 한 달 내내 책만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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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노르웨이 거주 중, 교사, 글작가를 돕는 작가, <노르웨이 엄마의 힘>, <아티스트 웨이, 우리 함께>, <노르웨이 사계절과 문화 여행>, 전자책 <글쓰기 셀프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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