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랏!
1994년 가을 추석에 특집방영한 ‘포청천’으로 온 동네 아이들이 연탄으로 이마에 달문양을 그려 넣고, 입으로는 개작두 타령을 해댔다.
한동안 무슨 말만 하면 다들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랏!”을 외쳐댔다.
3년 전 가을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루는 남편에게 마음에도 없는 이런저런 말들을 미친 사람처럼 다 쏟아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그 순간 개작두가 생각 난 걸까?
나의 칼날 같은 말들이 개작두를 연상시켰다.
10대 때부터 나를 쫓아다니던 갑상선저하증, 이름도 생소했던 하시모토 갑상선염, 덤으로 따라온 갑상선암, 그것도 부족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공황장애까지, 이 녀석들은 나의 감정선을 SRT급 열차를 태워 작두 위로 가뿐히 올려주었다.
남들은 가을이면 살이 쪄 간다지만,
나는 가을이 되면 살기가 쩔어간다.
물론, 남편 한정으로……
남들에게는 한없이 온화한 가을여자지만 남편에게는 칼날 위의 여인으로 돌변한다. 지난주에도 남편한정 화끈하게 작두를 몇 번 타고 극적으로 화해했다는 건 이제 안 비밀!
“내가 요즘 가을이라서 좀 더 예민하지?”
라는 질문에 연애 때부터 사계절 늘 그랬다며 담담하게 남편은 대답했다. 전적으로 수긍하진 않지만, 어찌 됐든 우직하게 든든하게 서 있는 남편 덕분에 나의 감정선이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올 남은 가을엔 차가운 살기 말고, 따뜻한 훈기를 내뿜는 가을여인이 되기를 바라본다. 작두를 타는 여인이 아니라, 사랑을 타는 여인으로 거듭나 보겠다고 자신 없게 고백해 본다.
우리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