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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도 '트렌치' 하다구요?

빛과 그림자로 갈아입는 가을의 옷

by 플루토씨

가을은 트렌치코트 입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사실 지구도 가을마다 자기만의 트렌치를 꺼내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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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구도 트렌치 한다고요? 맞습니다.
다만 원단은 햇살과 그림자, 바람으로 짜여 있죠.


태양을 중심으로 23.5도 기울어진 채 공전하는 지구는 계절마다 다른 빛의 각도를 받습니다. 여름 내내 직선으로 꽂히던 햇살은 가을이 되면 사선으로 비껴 들고, 낮은 조금씩 짧아지죠. 그 작은 차이가 숲을 물들이고, 곡식을 황금빛으로 익게 만듭니다.




#지구의 옷차림이 바뀌는 이유는 단순히 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자전을 하면서 낮과 밤을 만들고, 1년에 한 바퀴 태양을 공전하며 계절을 만듭니다. 이 두 움직임이 합쳐져, 계절은 지구의 가장 정교한 패션쇼가 되죠.


가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낮아집니다. 같은 시간에도 여름보다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오고, 받는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낮이 짧아지고, 기온은 내려가고, 서늘한 공기가 옷깃을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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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이 변화를 24절기로 기록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추분에는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집니다. 상강에 이르면 서리가 맺히죠. 마치 지구가 트렌치코트의 단추를 하나씩 잠가가는 듯, 계절은 질서 정연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숲 속에서는 엽록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가 채우며 단풍을 붉게 물들입니다. 논밭의 곡식도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리듬 속에서 익어가며 결실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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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년 봄이면 운동장에서 벚꽃 잎을 주워 교과서에 끼워 책갈피를 만듭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낙엽을 주워 아이들과 함께 눌러 말리죠. 책장 사이사이에서 계절이 눌려 남아 있는 걸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지구가 갈아입은 옷의 무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장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 아래서 낙엽을 줍는 그 순간, 저는 아이들과 함께 지구의 패션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관객이 됩니다. 누군가는 멋진 트렌치코트로 가을을 맞이하지만, 교실 속 우리는 늘 작은 질문과 작은 추억으로 계절을 입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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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가워지고 해가 짧아질수록,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오히려 더 깊어지죠.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가을은 지구가 가장 멋지게 차려입는 계절이고,

교실은 그 패션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등석이라고요.


… 물론 저는 트렌치를 잘 안 입습니다.

키도 작고 영 안 어울리거든요.


지구는 매년 멋지게 트렌치를 차려입지만, 저는 그냥 운동장에서 낙엽 줍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게 제 가을의 패션이니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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