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한 모든 계절에 이미 네가 있으니.
처음 만난 너는 그저 작고 귀여운 털뭉치였다.
샵 구석, 작은 철장 안에 홀로 갇혀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저마다 짖고, 철망을 긁고,
꼬리를 흔들며 자신을 보여주려 애썼지만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쟤는 잡종이라 안 팔아요.
얜 푸들인데 똑똑하고, 털도 많이 안 빠지고…”
직원의 말이 이어졌지만
내 눈에는 오직 네가 들어왔다.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던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나를 붙잡았다.
나는 결국 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꼬질꼬질하고 털 곳곳에 똥이 엉겨 붙어 있던 너를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기고
작은 그릇에 사료를 담아주었다.
그 순간부터 너는 나의 가족이 되었고,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똥꼬발랄하게 나를 따라다니던
네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나는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가온.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너를 처음 본 순간
너는 이미 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으니까.
가온이와 함께 보낸 며칠의 시간이
몇 년처럼 길고도 풍성하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추억으로 쌓여 갔고,
내 삶은 너로 인해 전혀 다른 일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너를 여동생에게 맡기고 병실에 누워 있던 어느 저녁,
동생에게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얘 이상해. 설사하고 토하고 힘이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병원복 차림 그대로
팔에 수액을 단 채 택시를 잡아탔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손끝이 덜덜 떨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동물병원에 도착했을 때 네 모습은 엉망이었다.
선천적으로 소장이 약해 영양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고,
그때는 바이러스 감염에 염증까지 겹쳐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전 재산을 걸고서라도 너를 살리고 싶었다.
너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부터
너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는 이미 내 삶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가족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내 20대의 모든 계절을, 너와 나란히 걸었다.
봄이면 꽃향기를 맡으며 함께 산책을 했고,
여름이면 푸른 바다를 거닐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즐겼고,
겨울에는 새하얀 눈밭을 함께 굴러다니며 웃었다.
너와 함께 보낸 모든 계절은 눈부신 기억으로 빛났다.
그렇게 쌓인 추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바래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마음 한가운데 아련히 남아
때때로 불쑥 찾아와 나를 웃게 하고, 또 눈물짓게 한다.
가끔은 문득 생각한다.
“너는, 나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어땠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너는 홀로 나를 기다리며 보냈을 테지.
내 시계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을 너의 시간 속에서
나는 과연 너에게 좋은 가족이었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람이 죽으면 키우던 강아지가 마중 나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바랐다.
가온이가 그러지 않기를.
“가온아, 제발 마중 나오지 마.
절대 나 마중 나오지 마.
내가 오기를 기다리지 마.”
너는 다시 태어나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넓은 세상을 누리며,
무엇보다 마음 가득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믿는다.
네가 어디선가 꽃밭을 뛰어다니며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만끽하며
그저 자유롭고 환하게 웃고 있으리라는 것을.
"보고 싶다, 가온아."
다른 어떤 말보다 이 말 하나.
유독 가을을 좋아하던 니가 생각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던
이 계절이 여전히 내 마음에 선명하기에,
오늘도 나는, 참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