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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삐삐

섭식장애 이야기 2

by 노래하는쌤

다들 학교에 오면 삼삼오오 짝지어 잘도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겉도는 것 같다. 대화를 해도 즐겁지가 않고 하루 종일 기운이 없고 하교시간만 기다렸다.


하교를 하면 텅 빈 집으로 돌아갈지, 동네 아이들을 따라 산으로 들로 쫓아다녀야 하는지 고민한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게 더 싫다. 오늘도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겠구나. 벌써부터 답답함에 가슴이 조여 온다.


하교종이 울린다. 마룻바닥에 가방만 던져 놓고 늘 만나는 고샅길로 향한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오늘은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시간은 왜 이리도 느리게 가는지 야속한 해는 오늘 안에 작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하염없이 돌아다니다가 효순이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 누군가가 삐삐를 먹자고 한다. 아이들이 먹어봤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한 번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다들 익숙한 듯이 쭉쭉 뽑아 먹기 시작한다. 누군가 나에게도 삐삐를 건네주자 일제히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정말 먹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익숙한 듯이 입속으로 삐삐를 가져간다.


‘이걸 도대체 왜 먹는 거지?’


내가 질겅질겅 씹는 모습을 보자 쏟아졌던 시선이 분산됐다. 몇몇 아이는 내가 삼킬 때까지 보고 있을 심산인가 보다. 꿀꺽 침을 삼키는 척 먹는 시늉을 했다. 드디어 모두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쿵쾅 뛰었다. 재빨리 혀 밑에 밀어 넣어 두었던 삐삐를 손바닥에 뱉어냈다. 자연스럽게 늘 맨 뒤에서 따라다녔기에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어가자 손에 쥐고 있던 삐삐를 땅바닥에 쥐도 새도 모르게 떨어뜨렸다.


‘누가 본건 아닐까?’


아이들 손에는 한 움큼 씩 삐삐가 들려 있었다. 내 손만 빈손이었다. 내 빈손을 보며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것만 같다. 삐삐를 손에 쥐고 있다가 먹는 척하고 한 개씩 몰래 버렸어야 됐나 하고 후회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씹고 싶지 않다. 속이 또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저녁밥 먹기는 글러 먹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대충 먹는 시늉만 하고 잠이 든다. 잠결에 만례씨의 푸념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엥간치 싸돌아 다니랑깨 오늘도 허벌라게 겨 댕겼는갑네. 저것을 머슬 맥여야 살 쪼마니 붙을랑가.”


투박하고 거친 만례씨의 손이 내 이마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 죄 많은… 이 미천한 것이 기도합니다. 이 어리디 어리고 무장 약하디 약한 쌤이 건강 단디 붙들어 주시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재단…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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