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9일 목요일 오전
2009년 2월 16일 월요일 오전 / 나주, 세희의 할머니 만례씨집
세희가 만례씨집에 내려와 지낸 지 벌써 두 해가 흘러갔다.
나주 만례씨 집은 여전히 평온했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마당의 풀냄새와 꽃향기로 하루를 채웠다.
세희는 매일 아침, 마당의 텃밭에서 흙을 만졌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대부분 마당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오늘, 우편 오는 날이지.’
세희는 몸을 일으키며 혼잣말을 했다.
해인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빠짐없이 매주 편지를 보냈다.
세희야, 결국 교수님들의 끈질긴 설득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주천문학과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어…
편지는 언제나 길지 않았지만, 해인의 문장은 늘 따뜻했고, 마지막 장에는 늘 직접 찍은 별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은 밤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 갔다.
세희야, 생일 축하해. 지인이한테 네 소식 들었어. 잘 지내고 있다며?
내년 생일엔 꼭 얼굴 보고 축하해주고 싶어.
이번 주엔 보현산에서 별을 관측했어. 은하수 사진을 찍는 순간에 별똥별이 같이 찍혔더라.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세희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해인아.”
입술 사이로 맴도는 혼잣말이 바람에 섞여 흩어졌다.
세희는 서랍 속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먼저 답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세희의 마음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해인아, 나 잘 지내. 여전히 글 쓰고, 가끔 시나리오도 써. 요즘은 텃밭에 상추가 잘 자라서 그거 보는 재미가 있어…
펜 끝이 멈추고, 잠시 숨이 고였다.
세희는 다시 펜을 들어, 천천히 한 줄을 더 적었다.
해인아… 우리, 만날래?
봉투를 닫는 손이 떨렸다.
세희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쳤다.
편지가 떨어져 우체통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심장도 함께 내려앉는 듯했다.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오전 11시
라디오에서 잔잔한 찬양이 흐르는 만례씨의 부엌.
바람이 문틈으로 살짝 들어와 거실 하얀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아침부터 세희는 유난히 만례씨의 수제비가 생각났다.
그리움은 때때로 아주 사소한 음식 냄새처럼 찾아왔다.
세희는 슈퍼에서 밀가루 한 봉지를 사 들고 돌아와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육수를 끓였다.
감자, 호박, 양파를 채 썰고, 손바닥으로 밀가루 반죽을 꾹꾹 눌러 힘을 줬다.
오늘은 이상하게 양 조절이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이 만들었지…”
끓는 냄비에 반죽을 뜯어 넣고 대접에 담아 상 위에 올려놓으려는 순간.
마당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세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향했다.
“세희야, 나야.”
문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그 한 마디에 세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문을 열자, 해인이 보라색 수국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살짝 수줍은 얼굴이었다.
“해인아… 왔어? 밥 먹자.”
“응.”
잠시 고요가 흘렀다.
세희는 꽃을 받으며, 아주 오래 고민한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해인아… 나랑 오늘 결혼할래?”
해인은 놀라 눈을 깜빡였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보다 깊은 웃음을 오래도록 나눴다.
마치 그 순간, 기다림의 긴 터널 끝에 햇빛이 비추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