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이야기 17
요 며칠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결국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만례씨는 새벽같이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달아오른 열기 탓인지, 바로 옆에서 통화하는 만례씨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애비냐? 쌤이 열이 잔상시랍게 안 떨어자서, 병원 잠 데꼬 가야쓰겄시야.”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만례씨 집으로 오셨다.
아버지 등에 업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은 뒤, 1교시가 끝날 무렵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 문 앞까지 아버지 등에 업혀 들어오는 나를 본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머여? 누구여?”
“쌤이네 아빨껄?”
“쌤이 엄마랑 아빠 읍는 줄 알았는디?”
“몰러. 있다던디? 와, 겁나 잘 생기셨다잉.”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안 들릴 거라 생각하는 건지…
온 신경이 곤두서 작은 소리까지 머릿속에서 울렸다.
“쉿! 집중해라.”
선생님 말이 떨어지자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약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지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고,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었다.
잠결에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확 올라왔다.
‘우욱…!’
참아내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갈 겨를도 없이 책상 옆에 그대로 쏟아냈다.
다행히 고개를 순간적으로 돌려 옆자리 아이에게는 튀지 않았다.
창피함이 온몸을 덮치며 눈물이 뚝뚝 흘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인지, 아이들인지 미안한 대상이 누구인지…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청소함 쪽으로 가려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걸음을 떼지 못한 채 휘청거리다 책상을 붙잡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당번 누구니? 나와서 둘이서 좀 치워라.”
당번이 쭈뼛거리며 일어서는데, 그 순간 진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할게요.”
진수는 쓰레받기로 토사물을 모으고, 물걸레와 마른걸레로 말끔히 닦아냈다.
아파서 서러운 마음보다, 창피한 마음이 훨씬 컸다.
하교 종소리만 기다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맨 뒷자리 진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고마워.”
정신없이 집에 도착했다.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생선을 손질하는 만례씨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서러움이 북받쳐 만례씨 등에 거의 업히듯 기대었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만례씨 등에 붙은 파스 냄새가 그대로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그 냄새를 맡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오메, 인자 쪼까 살아나븟능갑네.”
만례씨도 훌쩍이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니 역서 더 아퍼블믄, 니기 이모할매 집으로 가야쓴담마다.”
“나 인자 암시랑토 안해. 개안해. 글고 나… 할머이랑 살꺼여.”
“오메, 내도 그러고 자픙게. 잘 묵기나 혀라.”
“근디 이거이 머여?”
“황시리여야. 이거이 그라고 몸에 좋다 허드랑깨.”
“나도 같이 혀.”
“아적 몸도 뜨시고만, 여말이 빠진 소리 허덜 말고 언능 방에 들가서 누워써.”
방에 들어가 잠시 누웠는데 이내 잠이 들어 반나절이 지났다.
마당에 나와보니 여전히 만례씨가 쪼그리고 앉아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근디 할머이, 황시리가 꼭 조구 맹키로 생겼네이.”
“와따마, 황시리가 조구새끼여야.”
“그랑깨 어쩐지 탁했드랑깨.”
“니가 머이든지 다 묵어블믄 질로 조은디 다 개워내븐께…”
만례씨가 말을 하다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랴도 내가 조구는 잘 묵어. 내가 난중에는 조구새끼 열 마리 묵을게.”
“조구고 머시고 간에 잘 묵고 안 아프믄 원이 읍겄다.”
만례씨는 빨간 다라이에 담긴 황시리를 한나절 내내 손질했다. 그렇지 않아도 굽은 만례씨 등이 더 많이 굽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이유 모를 눈물이 또 흐른다. 그런 나를 보고 만례씨도 눈물을 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