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이야기 18
만례씨가 하루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검은 털 사이사이로 하얀 얼룩이 번져 있는, 꼭 희미한 달빛 같은 강아지였다.
“할머이, 어서 데꼬 왔능가?”
“혜덕이네서 한 마리 주드랑깨. 니기 짝은큰애비가 집은 지서준다항께 지달려봐라이.”
“글믄 인자… 우리가 길르는 거여?”
“니가 쩌참에 갱아지 길르고 자프담서.”
내 심장이 콩 하고 뛰었다.
“차말로… 우리 갱아지여? 근디 이름이… 머여?”
“이름도 여적 읍시야. 니가 함 지서봐라이.”
그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연필만 굴렸다.
이 작은 생명이 내게로 온 일이 자꾸만 믿기지 않아서, 한참을 고민했다.
“할머이, 내가 찬찬히 생각해 봤는디… 복댕이로 할라네.”
“그래브러라. 니가 복댕인디, 자도 복댕이여야.”
나는 복댕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복댕아, 밥 묵자아.”
그날 이후로 만례씨는 내 밥을 차리면서 복댕이 밥도 꼭 같이 차렸다.
복댕이에게 하얀 밥 위에 따끈한 고깃국을 얹어주는 만례씨의 손길이,
어쩌면 복댕이보다 내 마음을 더 살찌웠다.
“복댕아, 언니 핵교 댕겨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라이.”
“멍멍.(언니, 잘 댕겨와.)”
복댕이는 금세 가족이 되어 내 삶에 스며들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복댕아, 언니 왔어. 마이 심심했재?”
“멍멍멍.(응, 많이 보고 싶었어.)”
“내가 쩐번에 글짓기항거 상 받았시야.”
“멍멍!(언니, 최고!)”
“복댕이 니가 차말로 복댕이여야.”
그렇게 두 계절이 무르익어 갔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도 꺾일 무렵,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복댕이가 없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만례씨가 있는 밭으로 뛰었다.
“할머이, 복댕이가… 복댕이가 집에 읍당깨.”
만례씨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내가 요 며칠 가려워한다며, 혜덕언니네 집에 다시 보냈다는 것이다.
“할머이… 미워어… 왜 나한티 묻도 안 허고… 흑흑…”
“미안하다이…”
“얼렁… 따시 데꼬와… 어?”
“혜덕어매가 먼디 사는 친척한티로… 뽈써 줘븟시야.”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 밤, 나는 밥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한 채 울다 지쳐 잠들었다.
며칠 동안 기운 하나 없는 내 손을 잡고 만례씨는 당숙아저씨네 보양탕집으로 데려갔다.
“오메, 쌤이 왔냐잉.”
조용한 자리에서 나는 흑염소 보양탕 국물만 겨우 삼켰다.
“나가 쌤이 묵으라고 탕수육으로 만들어 봤는디 맛 좀 봐라이.”
“머시로 맹글었능가?”
“개고기로 맹글어써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뒤집혔다. 화장실로 뛰어가 모조리 쏟아냈다.
만례씨가 내 등을 쓸어주는데, 당숙아저씨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아따, 큰고모님 먼 말을 못 허겄소. 그란디 죽은 개는 어찌고 해븟쏘?”
순간 만례씨의 얼굴이 굳어갔다.
나는 그 표정에서 이미 모든 답을 읽어버렸다.
“할머이…? 복댕이… 죽었어?”
만례씨는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눈물이 났다. 눈물 젖은 뺨에 바람이 닿아 베는 듯이 아파왔다.
집에 도착 한 만례씨는 나를 앉혀 놓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3일 전, 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집 가까이 오자 복댕이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마당 철문을 열자, 개장수가 복댕이 목줄을 자르고 끌고 가려다 만례씨와 마주쳤다.
그놈은 혼비백산 도망쳤고, 복댕이는 그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개장수의 트럭에 부딪힌 복댕이는……
“미안허다이… 나가 잘 붙잡았어야 한디…”
“흑… 할머이… 미안혀… 나는 것도 몰르고… 할머이 밉다혀서… 미안혀…”
“니가 머시 미안혀야이…”
“그럼… 복댕이는… 어디… 어쩌코롬 했어…”
만례씨는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질로 좋아허는… 상사화 옆짝에다가… 묻어줬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한복판이 꺼져내리는 소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렸다.
나의 울음소리에 만례씨의 마음 한복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꺼져 내려갔다.
‘복댕아, 잘가. 안녕.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