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결산 보고서

어른이 되어가는 중간보고서

by 노래하는쌤

Ⅰ. 결산 개요

• 기간 : 만 30세 ~ 40세

• 결산 대상 : 삶, 일, 가족, 몸, 마음

• 특이사항 : 계획보다 사건이 많았음. 예산보다 감정이 초과됨.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서른은 정말 ‘어른’이었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책임을 알고, 도망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실제 서른이 된 나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고, 생각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도망과 책임 사이 어딘가에서 나 자신과 실랑이를 벌이며 응석을 달래 가며 살고 있다.

이 과정, 어른 맞는 건가? 아니면 어른 연습 중인가?


Ⅱ. 연도별 결산 내역

1. 서른 살

• 주요 사건 : 두 아이의 엄마 됨

• 부작용 : 산후우울증 동반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결과, 원치 않는 주말부부 성립.

1년 후 해인이는 외로움을 못 이기고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다.

결론 : 아기 둘, 어른 둘, 경제활동 0명.(백수 둘)


2. 서른하나

• 주요 사건 : 인생 최대 교통사고

리아오를 태우고 운전한 차가 사고가 났다.

우리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상대 운전자는 평생 장애를 갖게 되었다.

사고 처리는 보험사, 경찰, 해인이가 했다.

나는 그저 리아오를 진정시키는 역할만 담당했다.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리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반응하는 경보 시스템이 장착되어,

오토바이 소리만 들리면 사색이 되어 나의 품에 달려들었다.

결론 : 여전히 운전함. 오토바이 여전히 무서워함. 리오는 기억 못 함.


3. 서른둘

• 주요 사건 : 사회복지 재입문

졸업 후 첫 직업도 사회복지사였다.

현실은 교과서와 달랐고 “다시는 안 한다”를 외치며 퇴사했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와 보니 다시 사회복지를 하고 있었다.

전공은 역시 무섭다. 잠깐일 줄 알았는데 이 일을 한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결론 : 사회복지는 나의 운명.


4. 서른셋

• 주요 사건 : 갑상선암 수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암이라는 단어는 착하지 않았다.

삶의 질은 떨어졌고 목에서 나는 쇳소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마지막 병원에서 원인이 암이라는 설명을 듣고 수술을 결정했다.

결론 : 목소리 회복, 다행히 나의 정신도 살짝 돌아옴.


5. 서른넷

• 주요 사건 : 정착 결정 및 생애 첫 집

사회복지를 계속할지 말지, 고향을 떠날지 말지, 고민 끝에 남기로 했다.

마음을 붙이기로 하자 집이 생겼다. 은행에서 디딤돌로 친히 마련해 줌.

해인이는 사회복지를 공부했고 우리는 동료가 되었다. 부부 겸 동료.

결론 : 부부 겸 동료의 장단점은 아직도 분석 중.

- 부부 겸 동료의 장점 : 같이 일함.

- 부부 겸 동료의 단점 : 같이 일함.


6. 서른다섯

• 주요 사건 : 코로나

조금 안정되던 센터는 다시 흔들렸다. 회복까지 1년 이상 소요.

인간관계도 함께 정리되었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미니멀 라이프.

나의 인간성을 심히 의심하였으나, 의심이 맞는 것으로 잠정 결론.

결론 : 은행과 친해짐. 여전히 친함. 이자성실 납부 중.


7. 서른여섯

• 주요 사건 : 교회 떠남

가족 단위, 삼대가 함께 다니는 교회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떠났다.

리아가 정말 많이 울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결론 : 신은 있음. 죽었다가 깨어나도 신은 있음.


8. 서른일곱

• 주요 사건 : 두 번째 유럽여행

우리 가족 버킷리스트

- 해인 : 피사의 사탑에서 사진 찍기

- 나 : 파리에서 바게트 먹기

- 리아 :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먹기(리아와 나의 버킷은 늘 99프로 먹킷)

- 리오 : 디즈니랜드에서 해리포터 옷 입고 사진 찍기

결론 : 모든 버킷리스트 달성. 가족 만족도 매우 높음.


9. 서른여덟

• 주요 사건 : 복지부장관상 수상

사회복지사로 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정기평가 전국 TOP10. 인센티브 수령.

이 시점에서 ‘그래도 헛살진 않았구나’ 잠시 생각함.

결론 : 사회복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음.


10. 서른아홉

• 주요 사건 : 리아의 학교 중단

담임선생님이 반년 동안 여러 번 바뀌었다.

리아는 초등학교졸업 6개월을 남기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올해 초등 검정고시를 봤다. 아이도, 나도 생각보다 단단했다.

결론 : 다른 집 자녀는 가르쳐도 리아오는 못 가르침. 아무튼 못 가르침.


(부록) 마흔

• 주요 사건 : 브런치를 만남

뜨거운 여름, 그대들을 만나서 함께 글을 쓴다.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에도 글을 쓴다.

지금 쓰고 있는 소주제는 겨울의 ‘연말결산’이다.


Ⅲ. 종합 의견

나는 여전히 어른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어른답지 않은 행동도 하곤 한다.

아직도 어른이 되는 중인지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리아오가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엄마, 엄마는 진짜 어른이었어.”


올해 말 10년간 함께 했던 나의 직장이 문을 닫는다.

새로운 해가 열리고, 새로운 문이 열린다. 나의 인생의 결산은 감사함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이 글에 머물다 간 모두의 인생결산도 그러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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