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준이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였다. 파트너 선생님이 원감님의 일을 했기에 바쁘셔서 아이들이 5명 오기 전까지 내가 반에서 아이들을 혼자 보곤 했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일찍 오는 아이가 영준이었다. 물론 은우나 윤이, 재율이도 늦게가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일대일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긴 것은 영준이었다.
영준이는 2월 생인데다가 엄마, 아빠가 다 키가 크셔서 그런지 등치가 좋은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덩치에 비해 예민한 아이어서 울음도 많고 낯도 많이 가렸다. 처음 9시에 나와 단둘이 있을때는 나와 한참을 거리를 두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야? 누군데 나를 보고 있어? 나 알아?'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준이에게 나는 조심 조심 다가갔다.
"영준아 안녕~? 선생님 안아줄래?"
영준이는 내 말에 의심을 거두지 않은 얼굴로 다가와 안겼다. 그 아이는 나를 그렇게 의심하면서 왜 안아주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나보다 생각했다. 두 번째로 은우가 등원하기 전까지 거의 30분 넘게 나는 영준이와 단둘이 놀이했다.
처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영준이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에게 안기며 "사랑해"하는 것이 아침 인사가 되었다. 아침에 영준이와 포옹 인사를 나누면 하루가 행복했고, 따뜻했다. 영준이도 나와 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했다. 영준이는 월생이 빨라 다른 아이들보다 말을 잘했는데 원에 등원해 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나에게 전날 엄마, 아빠랑 한 것들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 해주었다.
사실 아무리 말을 잘한다고 해도 만 1세이기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100프로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준이가 무슨 말을 하면 "아~ 그랬어?"라고 하면서 퉁치곤 했는데 영준이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더 신이 나서 이야기하곤 했다.
영준이가 워낙 예민한 아이라 대체 선생님이 오시면 더욱 힘들어했는데 그때면 큰 등치로 내 뒤에 숨어서 가만히 대체 선생님을 바라보곤 했다. 영준이는 잠투정이 매우 심했다. 자신이 애착을 가진 선생님하고만 자야했고, 애착 이불이 있어야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피곤한 날이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잠투정을 부렸다.
한번은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히는데 많이 졸렸는지 "싫어!"라고 하면서 울었다. 그래서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자자"했더니 "싫어!"라고 울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아이를 달래야해서 안았다. 그랬더니 "일어나!!!!일어나!!"라며 울었다. 일어나서 안자 더욱 몸부림 치며 "싫어!!"라고 울고 소리쳤다. 누가보면 내가 억지로 안아서 일어난 줄 오해할 정도였다. 영준이가 무거운 편인데 안긴채로 몸부림 치니 그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으려 온 몸에 긴장을 유지해야했다. 그렇게 안겨서 30분 가량을 울고 나서야 잠들었다.
그런 영준이의 애착 대상은 나였다. 나와 잠을 자야했고, 내가 옷을 갈아입혀야했다. 가끔 저렇게 잠투정을 부리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가장 많이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안아주는 아이가 영준이었기에 영준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렇게 영준이와 함께하던 어느 날 월요일이었다. 평소처럼 나는 영준이의 등원맞이를 하러 현관으로 갔다. 영준이는 나를 보자마자
"떤땐~~~"
하며 달려왔다 신발을 신고 있어서
"영준아 신발 벗고 와야지"
라고 하며 안아서 다시 현관으로 가 신발을 벗겼다. 그러자 어머님이 웃으시며
"선생님 때문에 제가 요즘 얼마나 난감한지 몰라요"
라고 하셨다. 순간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영준이가 마트 가려고 원을 지나가면 '@@선생님 보고싶다. 선생님 있어? 보고 갈까?'이렇게 이야기 해요. 그럴때마다 '선생님 바쁘셔.'라고 하는데 저번에는 주말에 지나가는데 '선생님 없어? 보고싶어'라고 이야기 하더라니까요?"
"아? 정말요? 영준이 그랬어?"
내가 말하며 영준이를 보자 영준이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영준이가 보고 싶어하던 선생님이니까 재미있게 놀아~"
라고 하시고 어머님은 출근하셨다. 반으로 들어온 나는
"영준이 선생님 보고 싶었어? 선생님도 영준이 보고 싶었는데~ "
라고 했다. 그러자 영준이의 얼굴에 웃음이 천천히 퍼졌다. 나는 그런 영준이를 꼭 안아주면서 사랑해~ 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26년을 살면서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열열히 보고 싶어하고 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경험이 없었는데 그 조그만 아이가 그랬다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아니 벅차올랐다. 그 동안의 모든 힘듦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그게 그 어린아이라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나를 나로서 사랑하게 했다. 그리고 나도 더욱 영준이를 사랑해주리라고 결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