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새 Oct 23. 2022

23. 내가 기억하면 되는거지

이 글을 몇 개만 읽어봐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초임이던 2019년 나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미쳐있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평일에 찍은 사진을 보고 평일에는 아이들과 놀이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집에서는 기절했다. 퇴근 이후의 삶? 그런 것은 없었다. 야근이 있거나해서가 아니라 이미 일하고 애들과 노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서 다른 무엇인가를 할 에너지가 없었다.


당시의 내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도 내 친구들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들과 이야기하면 항상 주제는 '우리반 아이들은 얼마나 예쁜가'였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미쳐있던 나에게 내 친구가 장난스레 물은 적이 있었다.


"어차피 얘네들은 너 기억도 못해. 고작 3살인데"

"괜찮아 내가 기억하니까. 나는 걔네들 마음 한구석에 그냥 옛날에 누가 나를 되게 좋아했다는 그 느낌으로만 남아있으면 돼."


정말 그 질문과 동시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 대답이 순식간에 나온 이유는 그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이었는데 내가 초.중.고 선생님이었다면 제자들이 찾아오고 기억할텐데 너무 어린 아이들이라 기억을 못하니 날 기억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속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고 생활하면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졌다. 저 아이들이 날 기억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내가 저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으니 된다고 그냥 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그 자체만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한가지 기대라면 마음 깊은 곳에 누가 날 진짜 좋아했다는 느낌만 남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가 , 외가 양쪽 모두에서 친척 통틀어 제일 막내였고 질투도 많고 사랑에 기브앤 테이크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면 나도 안준다 내가 사랑을 주는데 사랑은 왜 안주냐!!라고 따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이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못받아도 괜찮다고 기억을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진짜 사랑하면 주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그 말이 무엇인지 일하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받지 않은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주는 그 순수한 사랑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전 23화 22. 이것도..가르쳐야하는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