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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Jan 26. 2023

일의 의미를 내려놓는다는 것

세 번째 심리상담

세 번째 심리상담.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프게 되기까지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지금의 상황,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고민을 풀어냈다. 가끔 가슴이 울컥하기까지 했던 가족이야기와 달리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었다.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신 상담사님이 몇 가지 소감을 말했다. 먼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많은 부분은 '원하던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업무의 종류보다는 업무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오는 괴리가 컸다. 그렇다고 해서 급여나 워라밸 같은 외적인 요소가 유의미한 상황도 아니다.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고점에 물린 상태'였다. 상담사님은 한 가지 화두를 던져주셨는데, 꼭 일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가족, 혹은 일이 끝난 후의 시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까. 큰 틀에서는 요즘 MZ 녀석들이 가진 문제적 생각이라는 '조용한 퇴사'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일의 의미를 내려놓는다는 것.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태도겠지만, 그것이 내 건강보다 우선할 순 없다.


다음으로는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화 도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사냥개와 같다고. 평소에는 어슬렁거리며 힘을 비축하다가, 목표가 생기면 전력으로 질주해서 물어버리는 모습.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님은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주셨다. 내가 인생을 대하는 속도는 시속 110km인데, 현재 상태는 제한속도 60km가 걸려있다고. 그러고 보니 최근에 부러웠던 친구들은 주로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큰 조직에서는 추구하기 어려운,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모습. 다만 이제는 의지를 태워가며 살아가는 것에 버거움을 느낀다. 천천히 가는 방법을 익힐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상담사님의 바람이었다. 본인의 경험담이기도 했는데, 원래 다른 일을 하다 상담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없애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방향을 잡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 재미있게도 상담사님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엇갈리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었다. 정신과 진료시간에 일 이야기를 하면, "그거 그만둔다고 죽지는 않아요"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아마 두 분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한 수비적인 상담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공격적인 상담의 차이랄까. 


편하게 회사 이야기(주로 나쁜 말)를 해서 그런지, 다음날 아침은 참으로 오랜만에 개운함을 느꼈다. 안타깝게도 전날 이야기를 복기하려고 하니, 생각의 크기가 회사 전체로 확장되면서  생각이 회사로 확장되면서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복잡하게 꼬인 마음의 실타래에서 이제 매듭 하나를 풀었달까. 답답하다고 칼로 전부 잘라버릴 순 없으니까, 하나씩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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