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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23. 2022

15.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그림 심리 검사와 자기 수용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그림 심리 검사를 신청했다. 그룹으로 진행하는 검사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개별로 그림을 그리고, 서로 간 설명과 질문시간을 가진 뒤에, 최종적으로 전문가가 정리를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날의 그림 주제는 '비 오는 날의 모습'이었다. 주어진 5분의 시간 동안 위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질문이 이어졌다. 우산이 왜 남자를 제대로 가리지 않는지, 비가 오는데 계속 앞을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림을 그릴 때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계속해서 대답하다 보니 스스로가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음을 알아쳐렸다. '비가 와도, 역경이 닥쳐도 나는 버텨내고 앞으로 가야 해요'. 질의응답이 끝나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전문가님께서 정리를 해 주신 후 한 마디 조언을 덧붙였다. 


"돌아가는 길도 있고,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어요.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으시셨으면 해요" 


그림 검사는 물론이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무의식에 있는 나의 감정을 살펴보았다. '초자아' 혹은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이 무의식은 끝없이 스스로를 비하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욕망은 억제하는, 예민함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문득 이 무의식이라는 존재가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내면의 어린아이는 끝없이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성적인 모습만을 사회로부터 요구받았기에, 감정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은 갈수록 무뎌졌다.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쳐버린 어린아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이 아픔이 바로 지금 앓고 있는 우울증의 진정한 정체라고 느꼈다. 


언젠가부터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했던 상상이 있다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면, 이를 바탕으로 훨씬 성장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꼭 안아주리라는 생각. 그런데 왜 상상만 하고 실제로 돌보지 않았을까? 왕따를 당해 외로워하던 초등학교의 나도. 동네 도서관에 앉아 미친 듯이 수학 문제를 풀며 고독을 곱씹어야 했던 재수생 시절의 나도. 불면증 때문에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던 대학시절의 나도.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에 치여가며 무너져가고 있던 반년 전의 나도. 모든 시절의 내가 도움받길 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이제야 어린아이를 앉아주며 용서를 해본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더 잘해야 한다는 말 대신 따듯한 응원과 위로를 건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그림 검사의 마지막은 그렸던 그림을 더 자기 마음에 들도록 고치는 시간이었다. 우산의 크기를 키우고, 장화를 신겼다. 돌아가는 길을 표시한 표지판도 그렸다. 마지막으로, 우산을 같이 들어줄 수 있는 동반자를 그렸다.


문득, 말로는 외치고 있었지만 실천을 소홀히 하고 있었던 쌍칼파가 생각이 난다. 마음속으로 다시 문장을 되뇌면서 그림을 마무리지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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