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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06. 2022

3. 인생의 또 다른 저점

질병휴직 6개월을 시작한 날



출근을 앞두고 시작된 가슴속 답답함은 멈추질 않았다. 하루 종일 가슴을 부여잡고 있으니 가족들은 우선 정신과에 연락해 보자고 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은 당황해하시면서, 다행히 오늘 오후에 여유가 있으니,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전했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을 몸이 이겨내지 못하여 통증을 일으킨 것 같다며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먹는 약에 더하여 긴장과 불안을 낮춰 주는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먹는 약은 아니고,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때 복용하면 도움을 주는 약이었다. 한편으로 혹시나 실제 몸의 통증일 수 있으니, 내과에서 별도의 진찰을 받을 것을 권유받았다. 진료를 마치자마자 맞은편에 있는 내과에서 검사를 받았고, 역시나 내과적으로 특별한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증상도 알고 처방도 받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몸을 아프게 했다.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휴직을 하고 싶어요..



고백하자면, 회사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할 때 부터 조금씩 휴직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직장인 번아웃에 대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휴직을 권했다. 휴직은 안정감을 유지하면서도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부서를 바꾼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고, 이미 지금 제대로 업무를 하기 힘들정도로 정신이 망가져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퇴사를 해버리는 것도 답은 아니다. 금전적 문제는 물론, 퇴사 후 닥칠 상실감과 후회를 감당할 힘이 있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휴직 역시 금전적인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서 자신을 돌보고 돌아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다만, 휴직은 결국 회사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휴직으로 방향을 결정하자마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회사에서 휴직을 받아줄까?' 이제서야 인사팀에서는 현재 어떤 상황도 알지 못한다는걸 생각해냈다. 멀쩡하게 회사를 잘 다니던 사람이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신청한다면 그들도 굉장히 당황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소 당황해했지만 한편으로 상황을 이해해주었고, 내부 논의 결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인사팀에서는 후임자 선정 등 후속 조치를 준비할 테니, 직속 상사에게 알리고 진단서와 같은 관련 서류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생각하지 못한 난관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일하기 싫다'는 말을 상사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차마 전화로는 전달하기가 힘들어 카톡을 한 시간 내내 쓰고 고쳤다. 어느덧 업무시간이 끝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심호흡과 함께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어떤 반응이 올지... 약을 먹었는데도 가슴의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그는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업무를 할 때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걱정되었다는 말과 함께, 회사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는 말을 전했다.


휴직이 큰 문제 없이 결정된 듯하기에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자리의 짐을 빼고, 휴직 절차를 끝내기 위해서는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다. 월요일 아침의 정신 상태는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던, 그야말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겨우겨우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한 때는 출근이 재미있을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곳. 이제는 근처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된 곳. 말로 표현하기 힘든 씁쓸함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필이면 부서 회의를 하는 도중이었다. 휴직과 관련한 내용들은 부서원들에게 다 전파된 상태였다. 다행히 원망하리라는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필자를 위로해 주었다. 많은 직원분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태가 점점 안좋아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기왕 이렇게 된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는 덕담을 받았다. 만약에 평소에 어려움을 주변에 솔직하게 토로했으면, 조금은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제는 의미 없는 후회 섞인 생각과 함께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개인 짐을 챙긴 후 인사팀을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였다. 휴직 원서를 쓰고, 진단서를 제출하니 절차가 끝났다.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해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에 번아웃으로 퇴직을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회사 측에서도 최대한 정신과 관련 문제에 대해서 배려해 주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바라본 하늘은 무척이나 화창했다. 문득 인생에서 저점을 찍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짝사랑 대상에게 고백 후 거절을 당했을 때, 원서 전략을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해야 했을 때...이 날이 인생에서 최악의 날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좋은 날이었다고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 속 없는 힘을 쥐어짜내며 '잘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피곤하지만 잠은 자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기에, 그저 누워 있고 싶을 뿐이었다. 


다음날, 인사팀장님께서 '커피 한잔하자'라는 연락이 왔다. 인사팀 입장에서는 불과 주말 사이에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던 직원 하나가 우울증으로 휴직을 신청했으니, 당연히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만남에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과도한 업무량'과 '달라진 업무에 대한 적응'문제 등 무난한 이유를 휴직 사유로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름 편안한 분위기에서,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라는 덕담으로 티타임이 끝났다.


그렇게 휴직과 관련된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가슴을 짓눌렀던 통증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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